北인권법 저지가 자랑인가
2011.06.15 14:23
[이하원, “北인권법 저지가 자랑인가,” 조선일보, 2011. 5. 12, A38.]
퇴임하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10일 기자회견 기사를 읽다가 한참 동안 눈길이 멈춰진 단락이 있었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하다니…"라는 생각에 몇 차례 되풀이해서 읽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때로는 험한 인신공격과 별소리를 다 들으면서 북한인권법을 저지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 저지와 함께 북한인권법이 제정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민주당의 정체성과 원칙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후임에게도 '정체성과 원칙'을 지켜달라고 말함으로써 북한인권법 저지에 앞장서겠다는 뜻을 당당히 밝혔다.
박 원내대표가 제1야당의 원내대표로 활동했던 지난 1년간 정부․여당과 민주당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부심을 갖는 일로 '북한인권법 저지'를 내세운 것을 그냥 넘겨서는 곤란하다.
박지원 원내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이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국내에 정착한 2만여 명의 탈북자들이 자유를 빼앗긴 채 생활하는 북한 주민들의 삶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유엔과 미국에는 오래전부터 '북한인권'만을 전담하는 고위급 인사가 있다. 2004년에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미국에선 올 초 '탈북 고아(孤兒) 입양법안'이 의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박 원내대표가 '북한인권법 저지'를 민주당의 정체성과 연결시켜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운 것은 다(多)차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전에는 북한인권법 제정을 겸연쩍어하면서 반대했다면, 이제는 당당하게 '대표 상품'으로 내세우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북한인권법 제정을 주장하는 이들을 '전쟁론자'로 몰아붙이고, 천안함 폭침(爆沈) 이후에 재미를 봤던 자신들의 '화해세력'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박 원내대표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의 중요한 설계자였다. 차기 민주당 대표를 꿈꾸는 그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참 동안 정국의 주도권을 쥐었던 2000년대 초반 상황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김정일이나 김정은을 만나 "우리가 목숨 걸고 북한인권법을 막았다"며 '통큰 제안'을 하려는 계획의 일환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종북주의자(從北主義者)'라는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다른 측면에서 볼 때 그의 발언은 민주당이 북한인권법 제정 반대를 밀고 나갈 정도의 세력을 규합했다고도 볼 수 있다. 지난달 한 방송사 토론회에 나와 '반(反)북한인권법' 입장을 밝힌 사람들에게 충격을 받았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박 원내대표의 이 발언은 당권(黨權) 투쟁에 빠진 한나라당에서는 논란조차 되지 않았다. 그가 과반수 의석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법 제정에 실패한 한나라당을 비웃었지만, 여당의 누구에게서도 제대로 된 반박성명 하나 나오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북한인권법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중요한 기둥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 야당 원내대표가 조롱하는 대상이 됐다. 이런 집권여당에 실망하는 국민이 늘어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퇴임하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10일 기자회견 기사를 읽다가 한참 동안 눈길이 멈춰진 단락이 있었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하다니…"라는 생각에 몇 차례 되풀이해서 읽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때로는 험한 인신공격과 별소리를 다 들으면서 북한인권법을 저지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 저지와 함께 북한인권법이 제정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민주당의 정체성과 원칙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후임에게도 '정체성과 원칙'을 지켜달라고 말함으로써 북한인권법 저지에 앞장서겠다는 뜻을 당당히 밝혔다.
박 원내대표가 제1야당의 원내대표로 활동했던 지난 1년간 정부․여당과 민주당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부심을 갖는 일로 '북한인권법 저지'를 내세운 것을 그냥 넘겨서는 곤란하다.
박지원 원내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이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국내에 정착한 2만여 명의 탈북자들이 자유를 빼앗긴 채 생활하는 북한 주민들의 삶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유엔과 미국에는 오래전부터 '북한인권'만을 전담하는 고위급 인사가 있다. 2004년에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미국에선 올 초 '탈북 고아(孤兒) 입양법안'이 의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박 원내대표가 '북한인권법 저지'를 민주당의 정체성과 연결시켜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운 것은 다(多)차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전에는 북한인권법 제정을 겸연쩍어하면서 반대했다면, 이제는 당당하게 '대표 상품'으로 내세우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북한인권법 제정을 주장하는 이들을 '전쟁론자'로 몰아붙이고, 천안함 폭침(爆沈) 이후에 재미를 봤던 자신들의 '화해세력'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박 원내대표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의 중요한 설계자였다. 차기 민주당 대표를 꿈꾸는 그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참 동안 정국의 주도권을 쥐었던 2000년대 초반 상황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김정일이나 김정은을 만나 "우리가 목숨 걸고 북한인권법을 막았다"며 '통큰 제안'을 하려는 계획의 일환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종북주의자(從北主義者)'라는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다른 측면에서 볼 때 그의 발언은 민주당이 북한인권법 제정 반대를 밀고 나갈 정도의 세력을 규합했다고도 볼 수 있다. 지난달 한 방송사 토론회에 나와 '반(反)북한인권법' 입장을 밝힌 사람들에게 충격을 받았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박 원내대표의 이 발언은 당권(黨權) 투쟁에 빠진 한나라당에서는 논란조차 되지 않았다. 그가 과반수 의석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법 제정에 실패한 한나라당을 비웃었지만, 여당의 누구에게서도 제대로 된 반박성명 하나 나오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북한인권법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중요한 기둥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 야당 원내대표가 조롱하는 대상이 됐다. 이런 집권여당에 실망하는 국민이 늘어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