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내가 북한 사람이었으면…
2005.11.16 11:13
[변용식, “차라리 내가 북한 사람이었으면…,” 조선일보, 2005. 10. 21, A34쪽.]
온 나라가 강정구 교수 사건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던 지난 17일 한 일간신문에는 납북자 가족이 쓴 편지 형식의 광고가 실렸다. “김정일 위원장님께. 저는 1987년 백령도 부근에서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치된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씨의 딸 최우영입니다. 이 편지가 위원장님께 부디 전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이 사회를 믿고 언제까지 죽어 가는 아버지를 기다릴 수만은 없을 것 같아 위원장님께 간청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최우영(35세)씨의 슬픈 사연은 이렇게 시작했다. 수신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었다. 최씨는 왜 우리 대통령이 아닌 김정일 위원장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일까. 편지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비전향 장기수 전원 북송(北送)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저는 북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년이 넘도록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위한 북한의 끈질긴 노력, 남한 내 인권단체와의 연대성, 자국민 보호를 남북한 협상에서 최우선 과제로 둔 김정일 위원장을 지켜보면서 제가 북한 사람이었으면 지금쯤 아버지를 모셔왔을 것이라는 부러움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최우영씨는 분명히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러나 최씨 가족에게는 기댈 정부가 없다. 납북자가족모임의 대표로서 노 대통령에게 두 번이나 면담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동안 세금을 바치며 살아온 대한민국은 무심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닌 북쪽의 김정일 위원장에게 호소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오는 10월 26일은 그녀 아버지의 환갑날이다. 납치된 후 아버지의 생일은 열여덟 번이나 속절없이 지나갔다. 최씨는 필자와의 전화에서 환갑 상을 차려드릴 돈으로 광고를 냈다고 울먹였다. “비전향 장기수 북송 얘기만 나오면 피눈물이 납니다. 왜 우리 정부는 북한이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요구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납북자 송환을 요구하지 못하나요." 우리 정부는 납북자 송환은커녕 그들의 생사 여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납북자 485명 중에서 생사가 확인된 사람은 불과 10명 안팎이다.
남쪽에 남아 있는 북한의 남파 간첩 출신들은 우리 납북자들에 비해 어떤가. “이곳에 남아 할 일이 있다" 고 겁을 주면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정부가 허가를 내주어 금강산도 구경하고 돌아왔다. 정부는 아무 조건 없이 이들을 북한에 보내줄 모양이다. 마침내 남한에서는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자는 대학교수를 정부가 감싸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납북자 가족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차라리 남한 정부를 쥐었다, 폈다 하는 북쪽 지도자에게 호소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판단했으리라. 나아가 "차라리 내가 북한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었으면…" 하고 대한민국 국민임을 후회하는 지경까지 간 것이다. 일본 정부도 납치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태도를 굽히지 않는데, 왜 우리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줄 것은 다 주면서 말도 제대로 못 하나. 최씨는 절규했다. '이미 일본인 납북자들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하시어 귀국시켜 준 사례가 있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남한 납북자 가족들의 아픔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계신지요.'
이 정부는 참혹한 처지에 있는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서도 시종일관 침묵해 왔다. 유럽 국가들이 북한인권결의안을 유엔에 제출할 때마다 한국 정부는 매번 기권표를 던졌다. 인권은 세계 어느 곳, 어느 인종, 어느 민족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가치인데, 유독 북한 주민 인권에 대해서만은 눈을 감는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북한 정권의 비위를 건드리면 안 되고, 때에 따라서는 우리가 추구하는 인권이라는 최고의 가치도 북한에 대해서만은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논리인가.
최우영씨는 이 정권에 물었다. “어떤 이념도 가족 이상으로 중요할 순 없잖아요." 최씨는 어떤 정치적․이념적 색깔도 갖고 있지 않은 착하고 평범한 여성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한 체제를 부정하는 강정구 살리기에 나설 일이 아니라, 이 억울한 백성들 구하기에 나서야 한다. 강 교수의 주장과 납북자 가족의 호소 중에 어느 것이 더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 한번 판단해 보라.
온 나라가 강정구 교수 사건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던 지난 17일 한 일간신문에는 납북자 가족이 쓴 편지 형식의 광고가 실렸다. “김정일 위원장님께. 저는 1987년 백령도 부근에서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치된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씨의 딸 최우영입니다. 이 편지가 위원장님께 부디 전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이 사회를 믿고 언제까지 죽어 가는 아버지를 기다릴 수만은 없을 것 같아 위원장님께 간청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최우영(35세)씨의 슬픈 사연은 이렇게 시작했다. 수신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었다. 최씨는 왜 우리 대통령이 아닌 김정일 위원장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일까. 편지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비전향 장기수 전원 북송(北送)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저는 북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년이 넘도록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위한 북한의 끈질긴 노력, 남한 내 인권단체와의 연대성, 자국민 보호를 남북한 협상에서 최우선 과제로 둔 김정일 위원장을 지켜보면서 제가 북한 사람이었으면 지금쯤 아버지를 모셔왔을 것이라는 부러움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최우영씨는 분명히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러나 최씨 가족에게는 기댈 정부가 없다. 납북자가족모임의 대표로서 노 대통령에게 두 번이나 면담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동안 세금을 바치며 살아온 대한민국은 무심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닌 북쪽의 김정일 위원장에게 호소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오는 10월 26일은 그녀 아버지의 환갑날이다. 납치된 후 아버지의 생일은 열여덟 번이나 속절없이 지나갔다. 최씨는 필자와의 전화에서 환갑 상을 차려드릴 돈으로 광고를 냈다고 울먹였다. “비전향 장기수 북송 얘기만 나오면 피눈물이 납니다. 왜 우리 정부는 북한이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요구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납북자 송환을 요구하지 못하나요." 우리 정부는 납북자 송환은커녕 그들의 생사 여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납북자 485명 중에서 생사가 확인된 사람은 불과 10명 안팎이다.
남쪽에 남아 있는 북한의 남파 간첩 출신들은 우리 납북자들에 비해 어떤가. “이곳에 남아 할 일이 있다" 고 겁을 주면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정부가 허가를 내주어 금강산도 구경하고 돌아왔다. 정부는 아무 조건 없이 이들을 북한에 보내줄 모양이다. 마침내 남한에서는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자는 대학교수를 정부가 감싸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납북자 가족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차라리 남한 정부를 쥐었다, 폈다 하는 북쪽 지도자에게 호소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판단했으리라. 나아가 "차라리 내가 북한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었으면…" 하고 대한민국 국민임을 후회하는 지경까지 간 것이다. 일본 정부도 납치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태도를 굽히지 않는데, 왜 우리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줄 것은 다 주면서 말도 제대로 못 하나. 최씨는 절규했다. '이미 일본인 납북자들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하시어 귀국시켜 준 사례가 있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남한 납북자 가족들의 아픔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계신지요.'
이 정부는 참혹한 처지에 있는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서도 시종일관 침묵해 왔다. 유럽 국가들이 북한인권결의안을 유엔에 제출할 때마다 한국 정부는 매번 기권표를 던졌다. 인권은 세계 어느 곳, 어느 인종, 어느 민족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가치인데, 유독 북한 주민 인권에 대해서만은 눈을 감는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북한 정권의 비위를 건드리면 안 되고, 때에 따라서는 우리가 추구하는 인권이라는 최고의 가치도 북한에 대해서만은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논리인가.
최우영씨는 이 정권에 물었다. “어떤 이념도 가족 이상으로 중요할 순 없잖아요." 최씨는 어떤 정치적․이념적 색깔도 갖고 있지 않은 착하고 평범한 여성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한 체제를 부정하는 강정구 살리기에 나설 일이 아니라, 이 억울한 백성들 구하기에 나서야 한다. 강 교수의 주장과 납북자 가족의 호소 중에 어느 것이 더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 한번 판단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