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 전략 외교는 실종, 내부 소란뿐인 한국 외교," 조선일보, 2020. 10. 6, A35쪽.]
미국과 일본·인도·호주 등 4국이 내일 도쿄에 모여 쿼드(Quad) 안보 회의를 개최한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아시아·태평양 동맹국들이 중국을 견제하는 연대를 강화하고 대응 전략을 논의하지만 이 자리에 한국은 없다. 한국이 빠진 채로 미국이 동맹 관계를 다지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쿼드 참석 후 한국을 방문하려던 계획도 국내 사정을 이유로 취소했다. 태평양 건너 방일(訪日)은 예정대로 진행하면서도 일본에서 2시간 거리인 한국은 건너뛰었다. 미국 외교 우선순위에서 한국이 뒤로 밀리는 ‘코리아 패싱’의 현주소다.
외교부는 “한·미 외교장관이 만날 기회를 계속 조율하겠다”고 했지만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나중에 만나도 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당장 미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확진으로 국제사회 질서는 물론이고 동북아 안보 정세도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중 갈등은 외교·안보·통상 모든 측면에서 일촉즉발 상태이고 북 김정은 정권은 이를 틈타 신형 잠수함과 ICBM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과 주변국 외교에 국가 역량을 모두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코앞에서 핵심국들이 모여 전략을 논의하는 것을 우리는 구경만 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남북 쇼와 중국 시진핑 방한에 목을 맨 우리 정부는 비핵화는 외면한 채 남북 대화 재개에만 집착했다. 동맹 전략보다 중국에 경사된 모습을 보여왔다. 8월 미·일 국방장관이 괌에서 북·중 위협과 대응 등 우리 안보와 직결된 이슈를 논의했는데 우리 국방장관은 코로나를 이유로 불참했다. 미국이 쿼드 확대를 추진하며 한국 참여를 촉구하자 우리 외교장관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폼페이오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방한을 취소한 것은 미국의 불편한 감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정권이 쇼에 정신이 팔려 있어도 외교 라인은 물밑에서 냉정하게 국가 전략적 현실을 진단하고 빈틈없이 동맹을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외교부는 청와대 뒤치다꺼리 기관으로 전락해 존재감이 없다. 없어도 되는 부처로 인식될 정도다. 외교는 실종 상태다. 북한의 우리 국민 총살과 관련한 청와대 회의에 강경화 외교장관이 부름도 받지 못하고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 전략을 세우는 데 배제된 외교장관이 다주택 보유, 가족의 외유 같은 내부 소란으로 연일 화제가 된다. 외교로 먹고 살아야 하는 나라가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