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식, 김은중, "韓美, 훈련 한번 못하고 동맹이라 할수있나,” 조선일보, 2020. 10. 6, A6쪽.]
한·미가 3년간 육·공군 제병 협동 훈련을 실시하지 않은 것에 대해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이 우리 정부에 공식적으로 불만을 제기한 것은 외교·국방·안보 전반에서 한·미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는 징후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독수리 훈련 등 대규모 연합 훈련이 폐지된 상황에서 한·미가 육·공군 제병 협동 훈련까지 하지 않는 것은 한·미 군사동맹에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에 따르면, 한·미 육군의 2017년 4월 제병 협동 훈련엔 우리 측 부대 8개, 미국 측 부대 3개가 참가했다. 전쟁의 전반적인 얼개를 익히는 대규모 연합 훈련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지형·지물을 익히며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한 의원 측은 “제병 협동 훈련을 하지 않는다는 건 한·미 군사동맹이 풀뿌리 단계에서부터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특히 주한미군 사령관이 공개·비공개 경로로 지속적으로 우리 측을 향해 불만을 제기한 건 전례 없는 일이다. 한·미 동맹이 국방·외교 전반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군사동맹의 기본은 훈련인데, 훈련도 못 하면 진정한 동맹이라 할 수 있겠나”라며 “그런 상황에서 전작권 전환에만 몰두하는 모습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한(訪韓)이 최근 무산된 것도 시사적이다. 양국은 “한·미 동맹이 기본(최종건 외교부 1차관)” “철통 같은 동맹(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이라며 기회가 될 때마다 동맹의 굳건함을 나타내는 수사를 쏟아내 왔다. 하지만 정작 공동 안보 체제를 가동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훈련까지도 못 하고 있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이 아시아 순방 일정을 축소하면서 일본은 방문하고 한국을 건너뛴 것을 두고 한·미 동맹이 퇴색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미국의 초당적 대외 정책인 인도·태평양 전략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달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미국이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전략 다자 안보 협의체 ‘쿼드(Quad)’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라고 했고, 이수혁 주미 대사도 “한·미 동맹 미래상에 ‘경제 파트너 중국’도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 외교 전략의 최우선 순위는 아시아 지역 반중 전선 구축에 있다”며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같은 한가한 소리를 해가며 즉답을 피할 게 아니라 원칙을 세워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한·미의 이견이 커지는 사이 최대 현안 중 하나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은 시한을 1년 가까이 넘긴 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당초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 주 강경화 장관을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방한이 무산되면서 연내 타결이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가에서는 ‘톱 다운(top down)’ 방식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기에만 의존해 남북 문제를 풀려 했던 우리 정부의 대미(對美) 외교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앞서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정상회담을 통한 극적 타결을 노려왔던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북한 문제에서 국무부 관리를 앞세워 실무 협상을 하는 전통적 ‘보텀 업(bottom up)’ 외교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면 미국의 대북 외교 정책 기조가 제재와 압박 위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는 바이든 후보 승리에 대비한 대응책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만 기대다 외교 안보 정책 전반이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