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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과 건국을 자랑스럽게 만들자

2006.10.13 14:53

관리자 조회 수:977 추천:184

[사설: “광복과 건국을 자랑스럽게 만들자,” 동아일보, 2006. 8. 15, 23쪽.]

유례없는 갈등과 혼란 속에서 광복 61주년, 건국 58주년을 맞는다.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이 공격당하고, 국가안보가 시험대에 올라 있다. 독립과 건국, 근대화와 민주화에 헌신한 선열들에게 부끄럽다. 어떻게 세우고 가꿔 온 나라인데 좌초를 걱정할 지경이 됐는가.

광복과 건국의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 우리는 독립의 열망을 태워 일제(日帝)의 사슬을 끊었고, 1945~48년 해방공간의 혼란을 딛고 대한민국을 세웠다. 유엔총회 결의와 유엔 참관하의 총선거를 통해 1948년 8월 15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의 선택은 옳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며, 불과 40여 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기적을 이루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이념적 갈등과 분열은 광복과 건국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비롯된다. 남(南)을 미국과 이승만이 세운 ‘분단 정권'으로, 북(北)을 항일 민족세력이 세운 합법 정부로 강변하는 뒤집힌 인식이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운동으로, 북한 미사일 발사 옹호로 이어지고 있다.

김일성은 남쪽보다 훨씬 빠른 1945년 9월 소련 스탈린의 지시를 받고 북한 단독 정권 수립에 착수했음이 사료(史料)를 통해 충분히 입증됐다. 대표적 수정주의자인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조차 6·25전쟁과 관련해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밀이 해제된 구(舊)소련 자료를 보면 당시 스탈린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이 (전쟁에) 개입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노무현 정권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가볍게 여기고 자랑스러운 성취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대통령부터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라며 '청산'을 다짐해 왔다. 이 정권 출범 후의 거의 모든 시위와 집단행동의 밑바닥에 ‘반미․자주'의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도 대통령의 역사인식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잘못된 이념을 주입하는 행태까지 공공연하다. 오죽하면 중진 원로 학자들이 고교생을 위한 ‘바른 역사책' 편찬에 나섰겠는가. 그런데도 대통령은 '반미면 어때' '미국은 오류가 없느냐'고 거칠게 되묻는다.

노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자주의 꽃'이라고 했지만 '자주'만으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북은 대화의 상대이자 대결의 상대다. 화해 협력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안보다. 한미동맹을 제쳐놓고 안보를 장담하는 것은 모험주의다.

대북(對北) 억지 차원을 넘어 통일 이후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를 내다보며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역할을 논의해야 한다. 중국의 급팽창과 일본의 재무장 속에서 한국의 안전과 동북아 평화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파트너는 누구인지 생각해야 한다. ‘민족공조'에 머리를 파묻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확신의 결여는 사회를 더 어지럽게 한다. 극심한 편가르기가 단적인 예다. 가진 자는 곧잘 수구 기득권 세력으로, ‘미국보다 더한 친미(親美)주의자'로 몰린다. 한미동맹의 이완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란 와중에서 그들은 '반(反)통일세력'으로까지 공격받는다. 핵심 친북세력조차 내심으로는 통일을 30~50년 뒤의 먼 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국민은 모르고 있다.

어떤 정책이나 법안도 좌우 이념의 눈으로 보니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치가 설자리를 잃는다. 민생을 위한 구체적 대안도, 선진화 비전도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다.

그 사이에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저성장이 만성화될 정도로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획기적 규제 완화가 이루어지고 친(親)기업적 환경이 조성돼야 경제를 살리고 소득격차를 줄일 수 있는데도, 시대착오적인 이념병(理念病)이 길을 막고 있다. 노조와 좌파 운동권은 갈수록 과격·방자해지는데, 법치를 지탱하고 국가 기강을 잡아야 할 공권력은 ‘눈치의 선수'가 돼 버렸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근대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뤄 낸 저력을 살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다시 꽃피워야 한다. ‘자주'에 갇혀 세계의 외톨이가 돼선 안 된다. 정치가 증폭시킨 증오와 적의(敵意)를 극복해야 한다. 국민의 지혜와 힘으로 대한민국의 위험한 변질을 중지시키고 국가와 사회의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 우리의 소명이자 광복과 건국의 정신을 되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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