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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학자들의 역사 왜곡 막아야

2010.07.20 13:57

관리자 조회 수:1129 추천:126

[김미희, “좌파 학자들의 역사 왜곡 막아야,” 미래한국, 2010. 3. 17, 47쪽.]

“장병들 사상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 입대 전에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 논산훈련소에서 설문조사를 하면서 ‘우리의 적이 누구냐’고 하니까 74%가 미국이라고 답했다. 육사시험 합격생 중 34%도 ‘우리의 적은 미국’이라 답한다고 하니, 대체 이것을 어떻게 제대로 교육을 시켜야만 ‘우리 적은 인민군이다’ 할 것인가.

현대사 관련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선교 현대사포럼 대표(68)는 자리에 앉자마자 위와 같은 현실을 토로했다. 이 대표는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취임한 이상희 전 국방장관은 좌익사상을 지닌 장병에게 제대로 된 현대사 강의를 실시하고자 했고 이를 제가 맡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전국 각 부대를 돌며 현대사 강의를 하고 있는 이 대표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기에 우리 적은 미국이라 답하는가. 그것을 알아야 사실을 설명하고 이해시킬 것 아닌가. 그래서 원인을 짚어보니 전교조 교사들의 잘못된 교육이 문제였다”고 전했다.

“지난 좌파정권에서 전교조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좌익사상을 갖게 했다”고 밝힌 이 대표는 “결국 인민군에게 쏠 총을 미군에게 겨누는 꼴이 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내부 정보가 새어나갈 수도 있어 사태의 심각성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설명이다.

40년 넘게 6․25한국전 연구에만 몰두해온 이 대표는 “북한 인민군이 240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11만 대병으로 남침을 했는데도 좌파는 38선이 미국 때문이라고 허위주장을 하면서 미국을 철천지원수로 생각하게 한다”며 “우리의 적은 미군이라고 하면서 미군 철수를 외쳐 미군이 철수하는 즉시 남한을 적화시키려는 것이 좌파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의해 재평가된 ‘제주 4․3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 대표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 1월 제주 4․3사건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2003년에 당시 고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조사단이 조직됐다. 이후 제주 4․3사건에 대한 진상보고서가 대통령에게 보고됐지만 이는 폭동을 민중봉기로 둔갑시킨 가짜다.”

현대사 왜곡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

이에 2000년과 2004년에 4․3특별법 헌법소원을 냈지만 두 차례 모두 각하되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국군과 우익을 살해한 수많은 폭도들을 4․3희생자로 결정한 것은 잘못”이라 주장하며 2009년 4월 제주4․3사건 헌법재판소 탄원서를 다시 제출한 상태다. 제주 4․3사건을 진압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억울한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당시 폭동을 진압하지 않았으면 제주도는 공산화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제주 4․3사건은 5․10선거를 통한 대한민국의 건국을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남로당 제주도당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폭동이라고 한다.

제주4.3 평화공원에 있는 기념관

이 대표는 또 “제주시 봉개동 12만평에 583억 원을 들여 조성한 제주 4․3평화공원의 사료관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국군이 제주 양민을 학살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며 “1만 3,564명의 위패는 국군이 죽였다고 부각시켜 전시했고 군사재판에서 폭도들을 재판한 것도 불법이라고 선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욱이 폭도사령관 김달삼을 영웅같이 묘사한 사진을 전시하였고 좌익이 만든 영상물 ‘레드헌트’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어 “30분짜리 영상물은 국군이 폭도를 진압하는 장면만 보여줘 진압군을 증오하게 하고 있다”며 전면적인 개편을 요구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제주 4․3폭동 때 경찰과 국군이 미군정의 지도에 따라 8만여 명의 제주도 양민을 학살하였다”는 주장에 대해 이 대표는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기했다.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내릴 정도로 폭도들의 폭동이 심각했는데도 계엄령을 내린 이유와 폭동을 진압할 필요성 및 정당성 등은 제외하고 진압군이 아무 잘못 없는 제주 양민을 학살했으므로 이승만 전 대통령과 국군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 제주4․3사건 폭도들을 희생자로 결정한 것은 큰 잘못이다. 이는 곧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헌법을 파괴하는 행위로서 반드시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는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두 차례에 걸쳐 제주도민에게 사과하는 장면을 영상물로 만들어 사과 내용 중 ‘제주민중항쟁’이라는 말을 부각시켜 계속 방영하고 있다”며 “이 평화공원은 제주도 관광객과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에게 국군과 경찰을 증오와 타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반미․친북좌파 양성 학습장이자 연방제 적화통일의 학습장소”라고 전했다.

제주 4.3사건 위패 봉안실

또한 제주대에서는 교양과목으로 ‘제주 4․3의 이해’라는 정규과목을 개설하고 2학점을 배정하여 ‘제주 4․3 진상조사보고서’의 허위 및 좌편향적인 보고서를 진실인 양 배우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픔을 딛고 일어선 제주’라는 책자를 제주교육청에서 발간해 제주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배포해 가르치고 있으며 제주 4․3행사 때는 좌편향으로 만들어진 평화공원을 초․중․고 학생들에게 관람케 한 후 제주 4․3사건에 대한 감상 글짓기 대회를 열어 진압군을 규탄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대표는 “1948년 9월 20일 반민법이 국회를 통과해 친일파를 숙청 중에 있었으나 제주도 4․3폭동과 14연대 반란 때문에 친일파를 숙청하지 못했는데 좌익은 미군정이 이승만을 앞세워 친일파를 숙청하지 않았다고 허위주장을 하면서 미국에 대한 적대 감정을 갖게 하고 있다”며 “전교조 교사들과 좌파 학자들이 학생들과 젊은 계층에게 왜곡된 현대사를 가르쳐 학생들로 하여금 반미 데모를 하게 하고 이현상 남부군 빨치산이 활동했던 지리산 역사 탐방을 하면서 추모제를 하는 등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빨치산 만세를 부르게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좌파는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태극기에 경례도 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국민들은 이를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학생들과 청년들, 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 현대사를 제대로 알게 하여 좌파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왜곡된 현대사의 진실]

▶미군정이 이승만을 앞세워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아 남한은 정통성이 없다는 주장

1948년 9월 22일 국회에서는 친일파를 청산하기 위하여 ‘반민법’을 통과시켜 약 7,000여 명을 파악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좌익폭동이 더욱 심해져 결국 1948년 11월 17일 계엄령을 선포할 정도로 좌익 폭도들과 진압군의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1948년 10월 19일 육본에서는 여수 14연대에 ‘제주도 좌익 반란을 진압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14연대 안의 좌익인 지창수 상사 등 40여 명이 명령을 거역하고 반란을 일으켜 장교 20여 명과 하사관, 사병 43명을 죽이고 14연대 전체가 반란군이 되었다. 이들은 여수와 순천, 벌교, 광양 등지를 점령하며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뜨렸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파 숙청은 다음에 해도 되나 공산세력의 반란을 진압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망한다’고 설득하여 1949년 2월 24일 국회에서 ‘반민법’이 폐기되었다. 이후에도 북한은 10차례에 걸쳐 북한의 인민유격대를 침투시켰고 결국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을 도발하였다.

결국 미군정과 이승만 때문에 친일파를 처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좌익의 반란과 북한의 남침 도발 때문에 친일파 숙청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익은 미군정과 이승만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

▶ ‘제주 4․3폭동’ 때 경찰과 국군이 미군정의 지도에 따라 8만여 명의 제주도 양민을 학살 하였다는 주장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은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5․10선거를 반대하기 위하여 김달삼 등 500여 명이 무장을 하고 제주도내 12개 경찰지서를 공격하였다.

1948년 7월 말경 ‘4․3폭동’은 거의 진압된 듯 했는데 이덕구가 제2반란군 사령관이 되면서 지서를 공격하고 11월 3일에는 국군 9연대 6중대를 공격하여 중대장 이하 14명이 전사하였다. 이를 계기로 진압군과 반란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재개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진압군과 반란군은 물론 양측에 협조한 주민들과 무고한 양민 등 약 1만 3,564명이 사망하였다.

좌익이 제주도에서 폭동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제주도는 평화로운 섬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좌익들은 무장폭동을 일으켜 대한민국 경찰을 살해하며 혼란을 조성하였고 순박한 양민들을 부추겨 제주도를 무법천지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폭도와 양민을 구분할 수 없어 무고한 희생이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좌익은 국군이 아무 잘못 없는 양민 3만~8만 명을 학살하였다고 거짓 선동하고 있다.

[이선교 著,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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