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들은 6.25를 이렇게 말했다
2013.07.09 15:35
[김주년, “대통령들은 6․25를 이렇게 말했다,” 미래한국, 2013. 6. 24.]
건국 이후 대한민국에 가해진 가장 큰 만행은 김일성의 6․25 남침이었다. 전쟁 기간 동안 남북한 약 150만명의 사망자와 360만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약 10만명의 전쟁고아들과 1000만명의 이산가족이 생겼다.
그러나 6․25의 실체 및 책임 소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그리 확고하지 않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2008년 5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중․고교생 10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보․안전의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6․25 전쟁의 발발 연도가 1950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학생이 전체 응답자의 56.8%나 됐고,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도 48.7%에 불과했다.
6․25전쟁의 발발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응답자들은 먼저 전쟁을 일으킨 국가로 일본(13.5%), 미국(13.4%), 러시아(10.9%), 중국(3.4%)을 지목했고 심지어 2%는 ‘남한’이라고 답했다.
공교롭게도 2008년은 2007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된 후 첫해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의 6․25 관련 역사교육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DJ “6․25는 통일 시도”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6․25 관련 공식 발언 중에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들도 포함돼 있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대통령 본인 뿐 아니라 측근 인사들까지도 6․25 및 안보문제와 관련해 편향된 발언을 쏟아낸 경우가 적지 않다.
먼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4년째이던 2001년 10월에 “6․25 사변은 역사상 세 번째 통일시도”라며 김일성의 불법 남침에 면죄부를 주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또 김대중 정부는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돌아온 후 6․25 전쟁 50주년 기념사업 가운데 시가행진이나 당시 전투를 재연하는 행사를 모두 취소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
뒤이어 집권한 노무현 정부의 6․25관은 더 충격적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11월 “6․25는 내전”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6․25는 소련 붕괴 이후 공개된 극비문서를 통해 스탈린이 주도한 전쟁이었음이 밝혀진 바 있다.
6․25 남침 당시 유엔군 사령관으로서 남한의 공산화를 저지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 대해서도 노무현 정부의 평가는 가혹했다.
2005년 9월 한총련 등 종북단체들이 맥아더 동상 철거를 위해 인천 자유공원에서 폭력시위를 거듭 벌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동상을 그대로 두고 역사로서 존중하고 나쁜 건 나쁜 대로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이은 공산군 격퇴를 ‘나쁜 역사’라고 규정한 것이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6․25 당시 인민해방군을 대거 참전시켜 김일성의 남침을 지원한 중국 모택동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03년 7월 중국을 방문해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모택동은 6․25 남침 외에도 1970년대 문화대혁명을 통해 약 1000만명의 국민들을 학살한 장본인이다.
‘모택동 존경’ 盧, 미군은 ‘외세 상징’
맥아더 장군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적대적인 입장은 주한미군 관련 발언에서도 재확인됐다. 그는 2004년 3․1절 축사에서 용산 미군기지를 “간섭과 외세와 의존의 상징”이라고 규정했다. 노 전 대통령은 80년대 국회의원 시절부터 주한미군 철수 운동에 앞장선 바 있다.
또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를 통해 6․25 당시 빨치산과 남파간첩으로 활동한 인사들을 ‘민주화공헌자’로 대거 승격시켰다. 이에 야당과 일부 언론의 비난이 이어지자 “대통령을 공격하려고 의문사위를 이용한다”는 협박성 발언으로 응수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도중 북한의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다가 두 차례나 기립박수를 친 사실도 있다. 아리랑 공연은 6․25 남침을 정당화시키려는 목적으로 북한이 기획․제작한 대남 선동물이다. 참고로 노 전 대통령의 장인 권오석은 6․25 당시 민간인 학살에 연루된 바 있다.
당시 권 씨는 1950년 9월 창원군 노동당 부위원장 겸 ‘반동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변백섭 진전면장 등 11명을 학살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 사건은 ‘창원군 진전면 양민학살 사건’으로 유명하다.
YS-MB의 6․25 관련 언행은 달랐다
반면 타 대통령들의 6․25 관련 언행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180도 달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2년 6월까지 6․25 전쟁 참전 16개국을 모두 방문해 참전용사들을 위로한 바 있다.
또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 미국을 방문해 “6․25 전쟁 당시 미군의 희생이 없었으면 오늘날 대한민국도 없을 것”이라면서 “지난 몇 년간 한․미 관계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것은 한․미 관계가 장기적인 동맹의 관점이 아니라 이념과 정치논리에 의해서 잠시 왜곡됐기 때문”이라며 이전 정권의 대북․대미 정책을 넌지시 비판하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6․25에 대해서는 확고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영삼 정부는 김일성 사망 직후인 1994년 7월 20일에 “김일성은 6․25전범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북한 평양방송은 “김영삼 정상배집단이 감히 미국이 불질한 6․25전쟁을 놓고 이북을 시비한 것은 히스테리적인 망발이며 망동”이라고 맹비난했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에 가해진 가장 큰 만행은 김일성의 6․25 남침이었다. 전쟁 기간 동안 남북한 약 150만명의 사망자와 360만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약 10만명의 전쟁고아들과 1000만명의 이산가족이 생겼다.
그러나 6․25의 실체 및 책임 소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그리 확고하지 않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2008년 5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중․고교생 10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보․안전의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6․25 전쟁의 발발 연도가 1950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학생이 전체 응답자의 56.8%나 됐고,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도 48.7%에 불과했다.
6․25전쟁의 발발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응답자들은 먼저 전쟁을 일으킨 국가로 일본(13.5%), 미국(13.4%), 러시아(10.9%), 중국(3.4%)을 지목했고 심지어 2%는 ‘남한’이라고 답했다.
공교롭게도 2008년은 2007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된 후 첫해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의 6․25 관련 역사교육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DJ “6․25는 통일 시도”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6․25 관련 공식 발언 중에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들도 포함돼 있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대통령 본인 뿐 아니라 측근 인사들까지도 6․25 및 안보문제와 관련해 편향된 발언을 쏟아낸 경우가 적지 않다.
먼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4년째이던 2001년 10월에 “6․25 사변은 역사상 세 번째 통일시도”라며 김일성의 불법 남침에 면죄부를 주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또 김대중 정부는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돌아온 후 6․25 전쟁 50주년 기념사업 가운데 시가행진이나 당시 전투를 재연하는 행사를 모두 취소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
뒤이어 집권한 노무현 정부의 6․25관은 더 충격적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11월 “6․25는 내전”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6․25는 소련 붕괴 이후 공개된 극비문서를 통해 스탈린이 주도한 전쟁이었음이 밝혀진 바 있다.
6․25 남침 당시 유엔군 사령관으로서 남한의 공산화를 저지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 대해서도 노무현 정부의 평가는 가혹했다.
2005년 9월 한총련 등 종북단체들이 맥아더 동상 철거를 위해 인천 자유공원에서 폭력시위를 거듭 벌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동상을 그대로 두고 역사로서 존중하고 나쁜 건 나쁜 대로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이은 공산군 격퇴를 ‘나쁜 역사’라고 규정한 것이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6․25 당시 인민해방군을 대거 참전시켜 김일성의 남침을 지원한 중국 모택동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03년 7월 중국을 방문해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모택동은 6․25 남침 외에도 1970년대 문화대혁명을 통해 약 1000만명의 국민들을 학살한 장본인이다.
‘모택동 존경’ 盧, 미군은 ‘외세 상징’
맥아더 장군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적대적인 입장은 주한미군 관련 발언에서도 재확인됐다. 그는 2004년 3․1절 축사에서 용산 미군기지를 “간섭과 외세와 의존의 상징”이라고 규정했다. 노 전 대통령은 80년대 국회의원 시절부터 주한미군 철수 운동에 앞장선 바 있다.
또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를 통해 6․25 당시 빨치산과 남파간첩으로 활동한 인사들을 ‘민주화공헌자’로 대거 승격시켰다. 이에 야당과 일부 언론의 비난이 이어지자 “대통령을 공격하려고 의문사위를 이용한다”는 협박성 발언으로 응수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도중 북한의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다가 두 차례나 기립박수를 친 사실도 있다. 아리랑 공연은 6․25 남침을 정당화시키려는 목적으로 북한이 기획․제작한 대남 선동물이다. 참고로 노 전 대통령의 장인 권오석은 6․25 당시 민간인 학살에 연루된 바 있다.
당시 권 씨는 1950년 9월 창원군 노동당 부위원장 겸 ‘반동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변백섭 진전면장 등 11명을 학살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 사건은 ‘창원군 진전면 양민학살 사건’으로 유명하다.
YS-MB의 6․25 관련 언행은 달랐다
반면 타 대통령들의 6․25 관련 언행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180도 달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2년 6월까지 6․25 전쟁 참전 16개국을 모두 방문해 참전용사들을 위로한 바 있다.
또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 미국을 방문해 “6․25 전쟁 당시 미군의 희생이 없었으면 오늘날 대한민국도 없을 것”이라면서 “지난 몇 년간 한․미 관계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것은 한․미 관계가 장기적인 동맹의 관점이 아니라 이념과 정치논리에 의해서 잠시 왜곡됐기 때문”이라며 이전 정권의 대북․대미 정책을 넌지시 비판하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6․25에 대해서는 확고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영삼 정부는 김일성 사망 직후인 1994년 7월 20일에 “김일성은 6․25전범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북한 평양방송은 “김영삼 정상배집단이 감히 미국이 불질한 6․25전쟁을 놓고 이북을 시비한 것은 히스테리적인 망발이며 망동”이라고 맹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