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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감독, 김일성 주연, 마오쩌둥이 조연한 남침(南侵) 전쟁 



[송종환, "스탈린 감독, 김일성 주연, 마오쩌둥이 조연한 남침(南侵) 전쟁," 미래한국, 2020. 6. 10, 56-57쪽; 경남대 석좌대 교수.]   → 6.25전쟁


2020년은 6·25 남침전쟁 발발 70주년이 된다. 6·25 남침전쟁(북한은 ‘조국해방전쟁’, 중국은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으로 각기 호칭)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대한민국이 외부로부터 불시에 침략을 받은 역사이면서도 현실이지만 정작 한국 사회에서는 좌파들에 의해 공산국가들의 남침 사실이 왜곡되고 있다.


6·25전쟁은 사전에 치밀한 계획 하에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침략전쟁이라는 ‘전통주의’ 해설은 1960년대 후반 월남전 당시 소련보다는 미국이 오히려 더 침략적인 나라라고 주장하는 수정주의자들에 의해 1980년대 후반까지 상당히 큰 학술적 영향력을 미쳐 한국 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넣었다.

남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는 북한의 주장을 따르는 미국의 수정주의자들에 이어 브루스 커밍스(Bruce Cummings)는 6·25전쟁은 당시 남북한 국민의 정치사상 분열에 비춰 미국의 남북전쟁과 같이 불가피한 민족 간 내전 (civil war)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구(舊) 소련 붕괴 후 1992년부터 러시아 측에 의해 공개된 세 가지 종류의 문서들은 6·25전쟁이 남한의 북침에 대한 북한의 반격이라고 되풀이해 온 구 소련과 북한 측의 주장이 거짓 선전임이 밝혀졌다. 그동안 공개된 소련의 비밀자료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 번째 자료는 1966년 소련 외무부가 소련과 중국의 6·25전쟁 개입 관련 내용을 정리한 ‘6·25전쟁, 1950-53, 휴전협상(On the Korean War, 1950-53, and the Armistice Negotiations)’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과 전쟁 중인 베트콩에 대한 소련의 지원 문제를 중국, 월맹 측 관계관들과 협의하려는 소련 관계관들에게 배경 정보로 제공할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두 번째 자료는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대통령이 1994년 6월 2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제공하기 위해 정리한 ‘한국전쟁 관련 러시아 외교문서’(이하 ‘한국전 문서요약’으로 약칭)로서 1949-53년 기간 중 한국전쟁에 관한 216건, 총 548쪽에 이른다.


세 번째 자료는 러시아 대통령실 문서고 소장 문서로 정식 명칭은 ‘러시아연방 대통령 문서(The Archive of the President, Russian Federation)’이며 약칭은 APRF이다. 1950년 2월부터 1953년 7월 기간 중 스탈린(Joseph Vissariovich Stalin)-김일성-마오쩌둥(毛澤東)간에 오고 간 한국전쟁 관련 비밀전문(電文)으로서 총 1200쪽에 달한다.


상기 문서들은 1993년 가을부터 미국 워싱턴 DC 소재 우드로 윌슨 센터(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가 발간하는 냉전국제역사프로젝트회보(CWIHP: 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 Bulletin)에 학자들의 연구논문들과 함께 영문으로 번역되어 시리즈로 게재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공산권의 붕괴로 접근이 가능하게 된 구 공산권 국가들의 자료들을 연구 검토해 냉전에 관련된 정보와 학술적 평가들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 회보들은 누구든지 읽고 연구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이렇게 공산국가들의 남침이 사실로 확인되었음에도 한국에서는 좌파 정부 집권으로 ‘전통주의’ 해설을 훼손하려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미국 등 유엔군이 참전했다는 이유로 강대국 간의 대리전이라는 주장으로 공산권 국가들이 치밀하게 협의해 남침한 사실을 희석하는 연구들도 있다. 심지어 북한만 바라보는 현 한국 정부의 국가보훈처는 지난 5월 중 한국 갤럽에 의뢰해 6·25전쟁은 남한, 북한, 남·북한, 미국, 소련, 중국 등 어느 쪽이 일으켰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다가 국민들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북한군, 6월 25일 기습 남침해 단 3일 만에 서울 입성


중공군의 6·25전쟁 참전에 대해 중국 측 학자가 중국 측 자료를 활용해 진행한 연구 결과를 기다려왔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김동길 북경대 역사학과 종신교수의 충실한 연구 결과를 포함시켜 필자가 과거 썼던 글들을 보완하고 종합했다. 후세대들이 6·25전쟁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후학들이 이 글을 참고하고 발전시킬 것을 기대해 본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8 분계선에서 기습공격을 감행한 북한군이 서울 시내에 입성하기까지 단 3일이 걸렸다. 북한군은 당일 옹진반도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26일 의정부, 27일 창동, 28일 새벽 미아리 방어선을 파죽지세로 돌파했다. 그동안 개성·김포·문산·포천·의정부·춘천·가평 등을 손아귀에 넣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력에서 한국군은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북한의 지상군 병력은 국군의 2배였다. 10개 보병사단과 1개 전차여단, 3개 독립연대 등 18만2000명이었다. 국군은 8개 보병사단과 2개 독립연대 등 9만4000명이었다. 북한 전투장비는 남한의 3배가 넘었다. 개전 당시 북한은 200대가 넘는 전차를 보유했다. 국군은 단 한 대도 없었다. 장병들은 북한 전차 소리만 들어도 도망을 가거나 두려움에 떨었다. 공군력의 경우 북한은 전투기 포함 211대가 있었지만 아군은 연락기와 연습기 22대가 전부였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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