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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적 가치를 부수는 게 적폐 청산인가


[허 영, "헌번적 가치를 부스는 게 적폐 청산인가," 조선일보, 2017. 12. 11, A35;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적폐 청산의 와중에도 가장 큰 적폐인 헌법적 가치를 무시하는 정치 행태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우리 헌법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행정권을 국무회의 중심의 각 부처에 맡기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은 헌법기관도 아니고 대통령의 보좌 기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전 정권에서 하던 청와대 비서실 중심의 국정 운영이 더욱 노골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심지어 민정수석이 중요 정책을 언론에 설명하는 일까지 한다.

국민의 헌법상 권리인 청원권 행사를 실현하기 위해 청와대 청원제도를 도입한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청원 내용을 수렴해 구체적으로 처리하는 부서는 비서실이 아니다. 비서실은 수렴된 청원 내용을 단순히 관련 부처나 입법기관에 전달하고, 관련 당국이 필요한 검토를 거쳐 처리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보고해야 한다. 그것이 헌법이 정한 정상적인 국정 수행의 절차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헌법 기관인 국무회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비서실이 마치 국정 수행의 중심축인 것처럼 대통령도 비서관 회의에서 정책 지시를 쏟아내고 있다. 비서실은 뒤에서 보이지 않게 대통령을 보좌하는 곳이다. 그런데 왜 비서실을 전면에 내세우는가. 대통령의 개인적인 신임 외에는 아무런 민주적 정당성도 없는 수석비서관 중심의 국정 운영 행태부터 청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적폐 청산이다.

전직 대통령 때부터 많이 지적된 대통령의 제왕적 모습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금도 모든 국정을 대통령 혼자 처리하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에 모든 청원이 청와대로 몰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폐적인 현상이다.

인신 구속을 능사로 삼는 구태적인 검찰권 행사도 헌법적 가치에 어긋나는 일이고 청산해야 할 적폐다. 우리 헌법은 무죄 추정의 원칙과 구속적부심사 청구권을 신체의 자유를 지키는 중요한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무죄 추정은 불구속 수사를 당연한 전제로 한다. 따라서 구속은 예외적인 일이어야 한다. 지금의 검찰권 행사는 그 정반대로 가고 있다. 구속영장을 남발하면서 법원이 이를 기각하거나 구속적부심사에 따라 구속 피의자를 석방하면 법원을 강하게 비판하는 반(反)헌법적인 수사 행태를 보이고 있다. 검찰은 하루속히 헌법적인 가치에 따라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존중하는 수사 방법을 따라야 한다. 국민의 신체의 자유는 결코 편의적인 수사 방법의 희생물이 되어서는 안 되는 모든 자유의 기초이다. 그런데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검찰 편에서 삼권분립의 원칙을 무시하고 법원을 비판하고 심지어 신상 털기 식 공격을 퍼부어 법원 비판에 앞장서는 모습은 개탄스러운 적폐 중의 적폐다.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서 심판하는 법관을 공격하는 것은 헌법과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반헌법적 적폐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위해 헌법과 법을 유린하는 정권에 맞서 싸워 왔다. 그런데 여전히 소중한 헌법적인 가치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려는 정치 행태가 이어지는 현상은 참으로 우려스럽고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문 대통령은 하루속히 헌법적인 가치에 따라 헌법에서 정한 대로 국무회의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대의 기관인 국회를 국정 수행의 동반자 삼아 헌법이 정한 대의 민주정치의 길로 나아가기 바란다. 국회를 무력화하고 직접 국민을 상대로 국정을 수행하는 공론화 조사 등 비(非)대의적인 여러 정치 행태는 우리 헌법 정신과 조화할 수 없다. 국민은 대의기관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정책 결정을 위임한 일이 없고 헌법이 제한적으로 예정하는 직접민주주의 요소에도 맞지 않는다. 전문성과 파급력이 큰 정책일수록 분명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대의 기관이 심의 결정해야 한다. 대의적인 정책 결정만이 책임 정치를 실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에 걸맞게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리 헌정사에 처음으로 불행하지 않고 퇴임 후 박수받는 대통령으로 남기 바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0/20171210015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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