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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화해를 말할 때

2017.05.24 20:30

oldfaith 조회 수:261

용서와 화해를 말할 때


[선우 정, "용서와 화해를 말할 때," 조선일보, 2017. 5. 24, A34쪽.]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시대의 과제로 다시 부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5·18 기념식에 참석해 "헬기 사격까지 포함한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이를 "상식과 정의의 문제"라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이라고 했다. 연설 이전에 이미 관련 특별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명칭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민간인에 대한 헬기 사격 의혹 등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안'이다.

5·18이 일어난 지 37년이 지났다. 대통령이 말한 대로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되고 탄압받은' 기간이 있었다. 1988년 국회에 광주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청문회가 열리기까지 8년 가까운 시간이다. 그 후 29년 동안 5·18의 진실이 권력에 의해 억압된 일이 없다. 반대로 우리 사회는 사법·정치·역사 전 측면에서 5·18의 진실을 찾아내고 평가하기 위해 노력했다.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열정도 부족하지 않았고 비용도 아끼지 않았다.

소급 입법 논란을 일으키면서 책임자 단죄를 위해 특별법을 만든 게 1995년이다. 이 법으로 이듬해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책임자를 법정에 세웠다. 전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사형, 항소·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내란 수괴, 내란 목적 살인죄였다. 가해자는 헌정 파괴자, 피해자는 헌정 수호자로 규정됐다. 그때까지가 단죄(斷罪)의 기간이었다면 그 후엔 보상의 기간이었다. 1997년 5·18은 국가 기념일이 됐고 피해자 유해는 새로 조성된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2002년엔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한국 현대사에서 5·18만큼 명백히 자리매김한 사건은 드물다.

진상 규명도 이루어졌다. 검찰과 국방부가 1995년 발표한 '5·18 관련 사건 수사 결과'는 A4용지 216장에 달한다. 대통령이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약속한 '발포의 진상과 책임' 문제도 포함됐다. '별도의 지휘 계통에 있는 특정인의 구체적인 발포 명령에 따라 행해졌고 시민의 공분(公憤)을 고조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해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고 했다. 법원도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헬기 사격 문제도 그때 다뤄졌다. 목격자 주장이 하나하나 검증됐다. 근거가 없거나 오해였다. 지금도 헬기 사격의 증거로 방송에 종종 나오는 헬기 불빛 사진은 사격 섬광이 아니라 헬기의 충돌방지등 불빛임이 확인됐다.


물론 작년 말 발견돼 문제가 된 광주 금남로 빌딩의 총탄 자국은 당시 규명되지 않았다. 필요하면 그 부분만 검증하면 된다. 그런데 대통령은 발포의 진상 전체를 밝혀내겠다고 했다. 국회에 제출된 특별법안도 헬기 사격만이 아니라 최초 발포 명령자 및 행방불명자를 최장 2년에 걸쳐 조사할 수 있도록 했다. 20년 전 단죄는 물론 사법적 용서까지 끝낸 사안이 역사 영역에서 현실의 쟁점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세월호, 국정 농단, 4대강 등 진상 규명과 사법적 단죄가 끝났거나 끝나가는 사안이 다시 권력의 도마 위에 올라 펄떡거린다.


5·18과 같은 현대사의 비극은 한국만 겪지 않았다. 어리석은 인간은 전쟁, 학살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에겐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만큼의 현명함은 있다. 세계 현대사는 그런 노력의 연속이었다. 물론 진실과 단죄가 중요하다. 가해자는 반성과 사죄 요구를 벗어날 수 없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피해자 역시 용서와 화해를 요구받는다. 한나 아렌트의 표현대로 '화해는 피해자 입장에서 가해자와 부담을 짊어지겠다는 의지가 수반될 때 가능한' 일이다. 철저한 가해자 단죄가 전제되지 않을 때도 피해자가 화해를 요구받는 일이 있었다. 5·18보다 훨씬 큰 비극을 다룬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 르완다의 가차차 법정은 가해자의 단죄보다 피해자의 양보를 더 필요로 했다. 미래로 전진하려면 과거의 사슬을 풀 수밖에 없었다.

5·18, 세월호 문제를 돌이킬 때 '내가 유족이라면' 하고 생각한다. 자신이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며 반성하지 않는 저런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정치는 달라야 한다. 피해자 입장에 가까운 쪽일수록 단죄보다 용서와 화해에 중심을 둬야 한다. 때로는 피해자를 설득해야 한다. 미래로 전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국 정치는 늘 반대 로 간다. 상처를 들추고 건드린다. 그게 상식과 정의라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은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5·18은 충분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헌법은 국민의 총의(總意)를 담은 근본 규범이다. 분노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진실과 단죄가 아니라 용서와 화해를 말할 때 대통령은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23/20170523035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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