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0년간 우리 역사상 가장 불행했던 이들은 누구였을까? 1580년쯤 태어나 1640년을 넘기며 살았던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은 10대에 임진왜란을, 40대에 정묘호란을, 50대에 병자호란을 맞았다. 기록에 남아 있는 당시 참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류성룡은 징비록에 '굶주림이 만연하고 역병까지 겹쳐 대부분 죽고 백명에 한 명꼴로 살아남았다. 부모 자식과 부부가 서로 잡아먹을 지경에 이르러 죽은 사람의 뼈가 잡초처럼 드러나 있었다'고 임진왜란의 참상을 기록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도 마찬가지이다. 인조실록에 보면 후금군이 철수하면서 백성을 어육으로 만들고 수만명을 잡아가서 노예로 팔았다고 한다.
그다음으로 살기 어려웠던 시기는 아마도 조선이 망하기 직전인 19세기 후반일 것이다. 이번에도 중국과 일본이 들어와 나라를 도륙했다. 일본군이 동학혁명 농민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계곡과 산마루는 농민 시체로 하얗게 덮였고, 개천은 여러 날 동안 핏물이 흘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우리 민족의 수난사는 6·25 전쟁을 비롯해 수없이 많다. 그런데 이들 수난사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모르고 내부에서 우리끼리 열심히 싸우다가 당했다. 왜란이 일어난 16세기는 대항로가 잇달아 개척되면서 앞선 국가들이 낙후된 국가를 약탈해 부를 쌓던 시기이다. 누가 먼저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느냐 여부가 나라의 운명을 갈랐다. 일본은 1543년 포르투갈로부터 조총을 비롯한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치열한 내전을 겪으며 전투력을 키웠다.
반면 당시 조선은 성리학에 푹 빠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었다. 대마도에서 조총을 전수받았지만 무시해버렸다. 국내 정치는 사화와 당파 싸움으로 정신이 없었다. 1589년 서인(西人) 정철 주도로 동인 계열 반대파를 무려 1000여명이나 처단한 기축옥사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조선 사회는 멘붕에 빠졌고 3년 뒤 왜란을 당했다. 전쟁이 끝나고도 우리 조상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대륙의 주인이 청나라로 바뀌는데도 명에 대한 충성만 고집했다. 조정은 하루빨리 국력을 키울 생각보다는 인조의 생부를 왕으로 추숭할지 문제로 10년 가까운 세월을 허비했다. 1635년 인조는 결국 부모님을 종묘에 모시는 데 성공했지만 그다음 해 병자호란으로 나라는 쑥대밭이 되었다.
국민의 '설마'하는 안보 불감증도 문제이다. 1592년 4월 왜군이 부산 앞바다에 쳐들어왔을 때 오랑캐들이 형님 나라에 조공하러 오는 줄 알았다고 한다. 단 1주일 만에 한양이 무너진 이유다. 1636년 12월 청나라가 압록강을 건너 공격했을 때 비상 봉화가 타올랐지만 도원수 김자점은 이를 무시했다. "설마 이 추운 겨울에 공격하겠는가." 그리고 5일 만에 한양이 함락됐다. 1904년 러·일 전쟁을 벌이려는 일본의 야욕에 대해 군부 최고 책임자 이용익은 "대한제국은 중립을 선언했으니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국제사회의 냉혹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지금 한반도의 운명이 또다시 우리가 아니라 남에 의해 좌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후 미·일 정상이 즉각 통화하고,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채택된 다음에야 한·미 정상 간 통화가 이루어진 점은 예사롭지 않다. 미국이 언 제까지 우리 곁에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도 우리는 안보 불감증에다가 이념 갈등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드가 환경에 별 영향이 없음에도 무작정 반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반성 없는 역사는 무늬만 바뀔 뿐 계속 반복된다고 한다. 우리 모두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