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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법은 다수의 폭정이다

2006.01.10 15:19

관리자 조회 수:907 추천:129

[정범모, “사학법은 多數의 暴政이다,” 조선일보, 2005. 12. 23, A31쪽; 鄭範謨 한림대 석좌교수.]

설마 했던 문제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 다수의 폭정(暴政)이다. 왜냐하면 헌법 31조에 명백히 규정된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의 보장을 정면으로 압살하려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본래 교육의 자율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에까지 명시해서 보장하려 한 이유는, 교육이라는 중요하고 방대한 활동 영역은 권력자나 정치인에게는 그것을 어용화하고 정치도구화하고 싶어 군침이 도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데 있다.

헌법은 본래 다수로 권력을 잡은 강자(强者)라도 소수와 약자(弱者)의 최소한 권익을 함부로 짓누르지 못하게 하려는 제한 조건을 규정한 법이다. 그 조건을 무시할 경우 그것은 다수의 폭정이고 독재와 다름없는 사이비 민주주의에 접근하는 처사가 된다.

그간 한국의 학교와 대학은 교육부의 지나친 관료권위주의로 인한 자주성과 자율성 상실의 고뇌 속에서 허덕여 온 지 이미 오래다. 이제 거기에 더해서 정치인들마저 정부를 등에 업고, 한국 교육에서 막중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학(私學)을 정치도구화하려 하고 있다. 정부의 권력에 휘둘리고, 정치의 정욕(政慾)에 휘말린다면 교육계의 내일은 암담하다.

모든 정치적 야욕은 거의 언제나 어떤 정의(正義)의 명분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도, 밀로셰비치의 ‘인종청소'도 정의를 가장했다. 이번 사학법 개정도 각종 사학 비리(非理)의 척결을 내세웠다. 그러나 숨은 동기는 이른바 '진보 세력'의 학원 장악, 방대한 사학 영역의 정략적 장악에 있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숨길 수 없이 명백하다.

나는 여기에서 보수·진보 논쟁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또 개정안의 조항 조항을 거론하지도 않겠다. 다만 ‘진보 세력' 인사들이 정 그 정치세력의 확장을 원한다면, 학교와 교육의 바깥인 정치계에서 확장을 꾀해주기를 간청한다. 언필칭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한국 교육은 정욕(政慾)에 좌우되고, 정치도구화의 희생물이 되기에는 너무나 막중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학에 자주 일어나는 각종 비리와 부조리에는 나 또한 넌더리가 난다. 몇몇 사학에는 아직도 광정(匡正)되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학들은 교육이란 공립학교건 사립학교건 다 근본적으로 내일 이 나라를 떠맡을 다음 세대를 기르는 공교육(公敎育)의 일환을 담당하고 있다는 공공의식이 아직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비리와 부조리의 광정은 사학의 이사회를 정치적으로 점령하고, 사학에 각종 족쇄를 채우는 교각살우(矯角殺牛)를 범하지 않고도,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교육부와 정부가 지금 가지고 있는 그 많은 감독권과 감사권을 적절히 그리고 충실히 이행만 하여도 그 길은 다양하게 열릴 것이다. 학교의 운영은 자율에 맡기고, 연후에 그 과정과 결과를 스스로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발전의 정도(正道)이다.

두 가지만 결론적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공성은 교육의 생명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무너지는 정도에 따라 그만큼 한 나라의 교육은 정치적 야욕의 아수라장이 되든지, 아니면 정치적 도구화의 족쇄가 채워진다. 또 하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다수결만이 만사가 아니고, 다수도 권력인 이상 모든 권력과 마찬가지로 쉽게 폭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폭정화를 막으려고 헌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아마도 그 이전에 필요한 것은 위정자들의 양식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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