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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不’은 나라를 거꾸로 끌고 가고 있다

2007.04.14 11:31

관리자 조회 수:1056 추천:155

[사설: “‘3不’은 나라를 거꾸로 끌고 가고 있다,” 조선일보, 2007. 3. 24, A35쪽.]
노무현 대통령은 22일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3불(不)정책’ 폐지 요구에 “학생을 획일적 입시 경쟁으로 내몰고 학원으로 내쫓는 그런 정책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 주장이 근거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3불’이 제도로 정식 도입된 건 2002년부터다. 2003년 초등학생의 83.1%, 중학생 75.3%, 고교생 56.4%가 사교육을 받았다. 작년 말 그 비율은 88.2%, 78.4%, 63.1%로 늘었다. ‘3불’ 이후 사교육이 더 늘었다. 대통령 주장은 근거가 없는 셈이다.
세계 100위권 대학 중에 미국 대학이 33곳이나 된다. 독일·프랑스·일본의 대학이 미국 대학을 모델로 해서 대학교육 혁신을 밀고 나가고 있다. 그 미국 대학엔 ‘3불’이 없다. 각 대학의 판단대로, 각 대학의 기준대로 학생을 뽑는다. 대학의 학생을 뽑는 기준이 저마다이기에 학생들도 그에 맞춰 다양하게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봉사캠프를 하고, 축구부나 테니스부에서 주전(主戰)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에이즈에 감염된 마약 중독자 치료를 도우면서 학창생활을 보낸다. 미국 대학은 학교에 따라 학력보다 봉사정신이나 개성과 특기를 높이 평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횡성 민족사관고(史觀高)엔 동아리가 80개를 넘는다. 지역 초·중학생한테 무료로 과외를 해주는 동아리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 행사 때면 민사고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통역을 해준다. 학교생활이 이렇게 다채로운 건 민사고 학생들이 ‘3불’ 규제를 받는 국내 대학이 아니라 ‘3불’과 아무 상관없는 미국 명문대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특목고(特目高) 탓에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했다. 특목고 입시경쟁은 자녀를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을 시키는 학교에 보내고 싶은 부모는 넘쳐나는데 그런 좋은 학교가 전국에 40-50개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전국 2000개 고교를 다 그런 좋은 학교로 만들면 입시 경쟁은 자연적으로 해결된다.
노 대통령은 “가난한 사람은 (입시 경쟁에) 치여 항구적(恒久的)으로 가난을 대물림한다”고 말했다. 평준화 교실에선 학업 능력과 적성이 천차만별인 학생이 모여서 배운다. 교육 효율이 좋을 리 없다. 공교육이 부실해지면 가정이 어려운 학생일수록 피해를 입는다. 부실한 공교육을 보충해줄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못 되는 것이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은 2004년 ‘누가 서울대에 들어오는가’라는 보고서에서 “평준화 아래선 가난한 집 아이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평준화 틀 속에서 자기를 상승(上昇)시켜 보려는 가난한 집안 아이들의 꿈도 시들고 있는 것이다.
‘3불’ 논쟁은 우리 자식들의 미래에 관한 논쟁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 하는 국가 진로(進路)에 관한 논쟁이다. 우리 아이들을 훌륭한 국민, 세계의 어느 누구와 경쟁해도 꿀릴 것 없는 능력 있는 국민으로 키워내야만 대한민국의 미래도 함께 열리는 것이다. 이 정권의 ‘3불’정책은 국가가 어린 학생들을 빵 기계로 빵 굽듯 획일적 인간으로 찍어내겠다는 것이다. 교육의 창의성, 교육의 다양성을 발목 잡겠다는 것이다. 창의성과 다양성을 잃어버린 국민이 21세기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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