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부모’가 부대 앞에 드러눕는 날
2010.06.15 14:36
[양상훈, “‘軍부모’가 부대 앞에 드러눕는 날,” 조선일보, 2010. 6. 9, A38쪽; 편집국 부국장.]
이번 지방선거 와중에 자식이 군에 간 가족들 주변에선 '전쟁'이 화제가 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필자도 어느 사람으로부터 군에 간 자식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와 "엄마, 무서워"라고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부대원들 중엔 운 사병들도 있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자식은 부대에서 전화를 걸어 "아빠, 이명박이 전쟁을 하려는데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렇게 가만있으면 어떻게 해?"라고 했다 한다. 이 자리, 저 자리에서 이런 얘기가 들리는 것을 보면 비슷한 경우가 한둘이 아닌 모양이다.
얼마 전 한 군 장성으로부터 "지금 군대는 유치원 군대"라고 개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부대에서 무슨 일만 있으면 사병들이 집으로 고자질을 하고, 그러면 엄마가 곧바로 사단장에게 연락해 퍼붓고, 사단장은 해당 부대장을 나무라는 사이클이 전국에서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예비역 육군 대장 한 사람은 "어느 사병이 다른 중대 부사관에게 '아저씨'라고 불렀다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강이 엉망이고,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전우가 46명이나 죽었는데 명색이 군인이 '전쟁 날지 모르니 북한에 대해 아무 책임도 묻지 말고 그냥 지나가게 해달라'고 엄마 아빠에게 매달린다는 얘기는 충격이었다.
필자는 몇 달 전 자식의 군 입대를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원정출산을 가는 세태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그 글을 읽은 한 여성이 "원정출산이 뭐가 나쁘냐"고 했다. 그래서 "나라는 누가 지키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북한에 돈 주면 되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엄마, 아빠에게 매달린다는 군인들 얘기를 들으며 불현듯 그 여성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이들은 "군에 가지도 않은 대통령이 왜 우리보고 전쟁하라고 하느냐"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병역필'이 대통령의 필수 조건이란 사실을 절감한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선 군에 안 가려고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스스로 자른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도지사에 당선됐다. 한 사람은 "도민들이 그 사실을 몰라서 당선됐을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도민들이 그 사실을 알았어도 그가 당선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지금의 세태(世態)다.
군 지휘관들은 이런 세태에 적당히 영합하고 있다. 신종플루가 유행하자 우리 군은 일체의 훈련을 중지했다. 그 때문에 훈련을 하지 않은 군대가 세계에 또 있었는지 모르겠다. 신종플루에 걸린 사병이 나왔다면 그 부모는 "내 새끼 살려내라"고 항의했을 것이다. 그걸 잘 아는 지휘관들이 아예 훈련을 안 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침몰당해도 군에 비상 한번 걸지 않은 것이다.
군인들이 세태에만 영합하는 것이 아니다. 천안함이 침몰하자 합참의 한 장교는 국방장관과 합참의장도 모르는 상황에서 핸드폰으로 청와대 선배에게 이 사실을 먼저 귀띔해줬다. 청와대가 군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군인들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영합하는 것이다.
북한이 한번 협박을 하자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그 후 "주식 가진 사람들은 천안함 사건이 흐지부지되기를 바란다"는 얘기가 퍼졌다. 이 얘기는 그냥 추측만은 아닐 것이다. 천안함이 스스로 침몰했다는 거짓말을 만든 곳 중 하나가 여의도 증권가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얘기하고 있다. 무서워서 엄마 아빠에게 매달리는 군인들 바람대로, 주가 떨어질까 걱정하는 사람들 바람대로 천안함은 흐지부지되고 46명만 개죽음을 한 것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람은 다 두렵고, 다 돈이 아깝다. 누구만 탓할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가를 떠받치는 큰 기둥 하나가 빠져있는 상태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그 빠진 기둥은 미군이 대신 메우고 있다. 미군은 단순한 군 전력(戰力)만이 아니라 우리의 비겁함과 이기주의가 만든 구멍까지 메우고 있다. 미군이 빠지면 가장 먼저 이 비겁함과 이기주의가 우리 사회를 뒤덮을 것이다.
학부모 아닌 '군(軍)부모'들이 "왜 내 자식 부대가 출동하느냐"고 부대 앞에 드러눕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상이 왠지 우리 눈앞에서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만 같다.
그래도 천안함 생존 장병 중 5명이 다시 함상(艦上) 근무를 자원했다고 한다. 그 용기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이 사회가 이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지방선거 와중에 자식이 군에 간 가족들 주변에선 '전쟁'이 화제가 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필자도 어느 사람으로부터 군에 간 자식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와 "엄마, 무서워"라고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부대원들 중엔 운 사병들도 있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자식은 부대에서 전화를 걸어 "아빠, 이명박이 전쟁을 하려는데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렇게 가만있으면 어떻게 해?"라고 했다 한다. 이 자리, 저 자리에서 이런 얘기가 들리는 것을 보면 비슷한 경우가 한둘이 아닌 모양이다.
얼마 전 한 군 장성으로부터 "지금 군대는 유치원 군대"라고 개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부대에서 무슨 일만 있으면 사병들이 집으로 고자질을 하고, 그러면 엄마가 곧바로 사단장에게 연락해 퍼붓고, 사단장은 해당 부대장을 나무라는 사이클이 전국에서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예비역 육군 대장 한 사람은 "어느 사병이 다른 중대 부사관에게 '아저씨'라고 불렀다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강이 엉망이고,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전우가 46명이나 죽었는데 명색이 군인이 '전쟁 날지 모르니 북한에 대해 아무 책임도 묻지 말고 그냥 지나가게 해달라'고 엄마 아빠에게 매달린다는 얘기는 충격이었다.
필자는 몇 달 전 자식의 군 입대를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원정출산을 가는 세태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그 글을 읽은 한 여성이 "원정출산이 뭐가 나쁘냐"고 했다. 그래서 "나라는 누가 지키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북한에 돈 주면 되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엄마, 아빠에게 매달린다는 군인들 얘기를 들으며 불현듯 그 여성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이들은 "군에 가지도 않은 대통령이 왜 우리보고 전쟁하라고 하느냐"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병역필'이 대통령의 필수 조건이란 사실을 절감한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선 군에 안 가려고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스스로 자른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도지사에 당선됐다. 한 사람은 "도민들이 그 사실을 몰라서 당선됐을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도민들이 그 사실을 알았어도 그가 당선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지금의 세태(世態)다.
군 지휘관들은 이런 세태에 적당히 영합하고 있다. 신종플루가 유행하자 우리 군은 일체의 훈련을 중지했다. 그 때문에 훈련을 하지 않은 군대가 세계에 또 있었는지 모르겠다. 신종플루에 걸린 사병이 나왔다면 그 부모는 "내 새끼 살려내라"고 항의했을 것이다. 그걸 잘 아는 지휘관들이 아예 훈련을 안 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침몰당해도 군에 비상 한번 걸지 않은 것이다.
군인들이 세태에만 영합하는 것이 아니다. 천안함이 침몰하자 합참의 한 장교는 국방장관과 합참의장도 모르는 상황에서 핸드폰으로 청와대 선배에게 이 사실을 먼저 귀띔해줬다. 청와대가 군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군인들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영합하는 것이다.
북한이 한번 협박을 하자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그 후 "주식 가진 사람들은 천안함 사건이 흐지부지되기를 바란다"는 얘기가 퍼졌다. 이 얘기는 그냥 추측만은 아닐 것이다. 천안함이 스스로 침몰했다는 거짓말을 만든 곳 중 하나가 여의도 증권가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얘기하고 있다. 무서워서 엄마 아빠에게 매달리는 군인들 바람대로, 주가 떨어질까 걱정하는 사람들 바람대로 천안함은 흐지부지되고 46명만 개죽음을 한 것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람은 다 두렵고, 다 돈이 아깝다. 누구만 탓할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가를 떠받치는 큰 기둥 하나가 빠져있는 상태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그 빠진 기둥은 미군이 대신 메우고 있다. 미군은 단순한 군 전력(戰力)만이 아니라 우리의 비겁함과 이기주의가 만든 구멍까지 메우고 있다. 미군이 빠지면 가장 먼저 이 비겁함과 이기주의가 우리 사회를 뒤덮을 것이다.
학부모 아닌 '군(軍)부모'들이 "왜 내 자식 부대가 출동하느냐"고 부대 앞에 드러눕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상이 왠지 우리 눈앞에서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만 같다.
그래도 천안함 생존 장병 중 5명이 다시 함상(艦上) 근무를 자원했다고 한다. 그 용기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이 사회가 이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