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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장 대학’과 586 민주독재

‘5·18 처벌법’ 자유민주 가치 부정… ‘운동권 전체주의’ 갈수록 폭주
비판적 지성 산실 대학 잠잠… ‘논문생산성’에만 관심
교수는 ‘논문 양계장’ 닭 신세… 민주주의와 대학 복합위기

[" 조선일보, 2020. 12. 7,  A쪽]

민주주의의 탈을 쓴 ‘운동권 전체주의’의 민낯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도 작금의 대학가는 놀라울 만큼 조용하고 잠잠하다. 대학이 민주주의의 파수꾼이자 민주화의 견인차였던 한국 현대사의 위대한 전통을 떠올리기조차 힘들 정도다. 시국선언이나 비상총회, 연대서명 등 1970~1980년대라면 봇물을 이루었을 교수들 집단 행동은 빛바랜 추억이 되어버렸다. 바깥세상이 아무리 소란해도 그 때문에 교수 사회 내부가 시끄러워지는 일은 거의 없다. 정치를 화제로 삼지 않는 게 일종의 예의처럼 됐다.

이른바 ‘진보 장기 집권 플랜’의 칼끝이 다름 아닌 자신들의 목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데도 그렇다.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5·18 역사왜곡 처벌법’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쓴 대학교수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했다. 권력이 과학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왜곡하는 사례도 문재인 정부 국정에서는 예사롭게 벌어진다. 이처럼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 지식인의 존재 이유 자체를 무력화하고 있는데도 정작 당사자들은 크게 심각하지 않은 분위기다.

물론 지식인 사회 전체가 일제히 입을 닫고 있는 건 아니다. 지식인 사회의 운동장이 크게 한쪽으로 기운 상황에서도 대학의 현실과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는 우파 성향 학자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들 생각이 조직화나 행동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는 데는 우리나라 대학 사회의 구조적 측면이 있다. 오늘날 대학가를 외견상 정치적 무표정과 무관심이 지배하는 까닭은 언제부턴가 지식 생태계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념의 차이를 불문하고 학문의 자유나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 자체가 약화됐다. 지식인의 전형이 비판적 공공 지식인으로부터 사적(私的) 지식업자로 바뀐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의 파도 속에 단행된 이른바 5·31 교육개혁은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개입을 법적으로 제도화·정교화시켰고, 이는 학문 세계를 경쟁 체제 속에서 계량화·정형화하는 시대의 문을 열었다. 말하자면 ‘논문 생산자’가 지식인의 일차적인 존재 방식이 된 것이다. 보수·우파 정부가 씨를 뿌린 국가 주도 지식생산·학술연구 프레임은 특히 문재인 진보·좌파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제철을 만났다. 시장과 사회 위에 군림하는 막강한 국가주의 덕분이다. ‘전지전능한 국가’가 되기 위해 정부는 지식의 생산 및 유통 시장을 대폭 키웠고, 교수들에게 이는 논문 생산자로서의 역량을 보이고 입지를 다지는 절호의 기회로 작용했다.

그 결과, 대학은 ‘논문 공장’으로, 그리고 교수는 ‘논문 기계’로 급속히 변해갔다. 어쩌면 ‘양계장 대학’이라는 표현이 보다 정확할 수도 있다. 지식의 생산과 유통 및 소비 과정이 ‘공장형 축산’과 닮았다는 의미에서다. 야성을 잃은 우리 속 닭들은 혼자 날지도 않고 날 줄도 모르는 존재가 되어, 모이가 뿌려지는 곳을 쫓아 이리 모이고 저리 흩어질 뿐이다. 그곳의 닭들은 원하는 계란을 때맞춰 산란하는 게 임무다. 양계장 대학에서는 논문이 곧 계란이다. 양계장 닭들은 밤에도 환한 조명 아래 쉴 새 없이 먹으며 살을 찌우고 알을 낳는다. 요즘 대학교수들도 대개 이런 식으로 바쁘다.

우리나라가 국가 전체 예산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간 20조원대 정부 R&D(연구 개발) 투자를 자랑하면서도 그 효과가 저조한 이유 또한 이런 식의 지식생태계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정부 R&D에는 돈을 흔들며 지식인을 줄 세우고 길들이는 경향과 관행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나라 R&D에는 ‘연구 조작’(Research and Deception)’이 유난히 많다. 권력의 풍향에 따라 ‘제안하고 사라지는’(Recommend and Disappear)’ ‘먹튀’ R&D도 부지기수다.

대학이 도덕적이고 열정적인 학문 공동체이던 시절은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어간다. 비판적 지성이나 자유로운 영혼은 대학 박물관에나 있다. 대학이 논문 공장이나 양계장으로, 교수가 논문 기계나 양계로 전락하는 과정은 오늘날 지식인 사회가 ’586 민주 독재'에 알게 모르게 적응하고 동화되는 모습과 별건(別件)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폭력적으로 찾아오는 군부 독재는 인지하기도 쉽고 저항하기도 쉽다. 하지만 논문 생산이 유일한 밥줄이 되어버린 요즘 교수들에는 독재를 판단할 겨를도 없고 이에 저항할 여유는 더욱더 없다. 그럼에도 공은 다시 지식인 사회로 넘어와 있다. 지금은 민주주의와 대학의 복합 위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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