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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지배구조 약점 잡아 한국 대표기업 흠집 내기
베이조스나 머스크라면 차라리 화성 가버린다 했을 것

[조형래, "일론 머스크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조선일보, 2021. 1. 7,  A31쪽.]

삼성이 지난 10여 년간 가장 골머리를 앓았던 게 지배구조 개선이었고 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다른 대기업들도 비슷비슷한 순환출자 구조를 안고 있지만,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는 유독 삼성에 대해 집요하게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해왔다. 핀테크 시대를 거스르는 낡아빠진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의 원칙을 내세워 삼성전자의 주요 주주인 삼성생명의 의결권을 제한한 데 이어 사실상 삼성그룹을 해체하라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까지 수많은 규제 법안을 쏟아냈다. 부실 기업도 아니고 세금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특정 기업의 지배구조를 놓고 정치권이 개입하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들이 계속돼 왔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편법 상속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자신과 자녀의 재산 8000억원을 기부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삼성의 전·현직 경영인들이 반도체와 스마트폰, TV 등 IT(정보기술) 3대 핵심 사업을 세계 1등으로 키운 산업사에 길이 남을 업적도, 정치권력이 물 쓰듯 마음껏 쓸 수 있게 매년 10조원이 넘는 법인세를 내는 것도 정상 참작 요인이 안 됐다.

강력한 오너십을 기반으로 핵심 사업을 육성해온 삼성의 성장사(史)가 부정당하고 삼성의 경영진이 정치권력의 뭇매를 피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사이, 사실 삼성과 우리 사회 모두 잃은 게 너무 많다. 지금 경영진에게는 뼈아픈 이야기이지만 삼성은 지난 10년간 특허가 만료된 바이오 의약품을 위탁생산하는 바이오 사업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신사업을 만들지 못했다. 데이터와 인공지능, 클라우드 서비스 등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를 주도할 언택트 분야에서는 중국에도 한참 뒤처져 있고,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배터리 같은 미래 산업에서도 반도체나 스마트폰에 비견할 만한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배당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 3년간 배당액은 무려 29조원으로, 작년 전국 가구에 최대 100만원씩 지급한 정부의 재난지원금의 2배에 이른다. 국내에서 끊임없이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주식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해외 투자자의 배당 요구를 외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 사냥꾼들에게는 자국(自國)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돈 많은 삼성전자만큼 좋은 먹잇감이 없을 것이다.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삼성전자를 분할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기도 했다.

삼성이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된 것도 근본적으로는 이 지배구조 개선 과정에서 빚어진 참사다. 삼성이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기 위해 계열사를 재편하는 과정에서도 초등학생 숙제 검사 받듯이 일일이 정부의 윤허(允許)를 받아야 했고, 정치권력은 삼성의 경영권을 뺏겠다는 듯이 사사건건 개입했다. 이런 현실에서 누가 감히 대통령의 요구를 거역할 수 있었을까. 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나라에서 정치권력에 한마디 했다가 패가망신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제프 베이조스나 일론 머스크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과연 지금의 아마존이나 테슬라가 존재했을까. 불륜 이혼남인 베이조스는 법인세 내는 게 아까워 아마존의 이익 규모를 일부러 줄인다는 의혹을 샀고, 사회성 부족에 약물 의존증까지 있는 머스크는 주가 조작과 분식회계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두 사람의 작은 잘못보다는 그들이 이룬 성과와 미래에 기꺼이 박수를 쳐준다. 베이조스나 머스크라면 한국에서 기업 하느니 차라리 우주선 타고 화성에 가서 사업을 하겠다고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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