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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 학살 반대’한다던 여수 14연대 반란, 장교 21명 총살로 시작

여순사건, 그날의 眞相

[김기철, "'동포 학살 반대’한다던 여수 14연대 반란, 장교 21명 총살로 시작," 조선일보, 2021. 5. 13, A32쪽.]

지난 11일 오후 서울 동작동 서울현충원을 찾았다. 초병 둘이 지키는 현충문을 지나 31m 높이 현충탑 안으로 들어갔다. 탑 내부 오석(烏石)으로 만든 벽마다. 이름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창군 초부터 6·25전쟁·베트남 전쟁 등에서 전사하거나 순직한 군인·경찰 위패를 모신 곳이다. 10만 위가 넘는다고 했다. 입구 왼편 4m 높이벽 맨 윗줄에서 김왈영·김순철·이봉규 소령 이름을 찾았다. 1948년 여순 사건 당시 14연대 1대대, 2대대, 3대대장이었다. 연대 대대장 전원을 위시해 반란군 총에 맞아 숨진 장교 17명 위패가 이곳에 있다. 현충원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전사 일자는 10월 20~23일이다. 남로당 조직책 지창수 선임하사 선동으로 14연대가 반란을 일으켜 여수를 장악했던 첫 나흘간이다.

◇'제국주의 앞잡이인 장교 모두 죽이자'

여당 의원 152명이 발의한 ‘여순사건특별법’엔 여순사건을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으로 썼다. 고교생 4명중 1명이 쓰는 미래엔 한국사 교과서는 ‘부대 내의 좌익 세력은 ‘제주도 출동 반대’ ‘통일 정부 수립’을 내세우며 무장 봉기하여 여수와 순천 지역을 장악하였다'고 소개한다. 14연대 반란을 피켓 들고 구호 외치는 요즘 시위처럼 썼다. 하지만 14연대 반란군의 ‘그날’은 피로 얼룩졌다.

14연대 남로당 세력은 1948년 10월 19일 밤 무기고와 탄약고를 장악하고, 장교들은 보이는 족족 총살했다. ‘동족 살상하는 제주도 출병 반대’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남로당 반란 지도부가 그날 밤 가장 먼저 한 일은 한솥밥 먹고 훈련하던 장교 집단 학살이었다. ‘제국주의 앞잡이인 장교를 모두 죽이자’(백선엽, ‘실록 지리산’ 153쪽)는 선동이 학살의 문을 열었다.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가 1967년 낸 ‘한국전쟁사’ 1권(454~455쪽)엔 반란을 진압하려다 현장에서 사살된 14연대 장교 21명의 이름이 나온다. 대대장 3명 전원과 작전주임 강성윤 대위(모두 육사 2기), 진도연·이병우·길원찬 중위(3기), 정보주임 김래수 중위(4기), 김록영·맹택호·박경술·민병흥·김진용·이상술 소위 (5기), 장세종·이병순·유재환·김남수·김일득·노영우·이상기 소위(6기)다. 14연대 소속으로 여순사건 기간에 전사한 장병 명단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어 숫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 ’99식 총검이 복부를 관통해 창자가...’

김왈영 1대대장을 비롯한 장교들의 최후는 분명치 않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1996년부터 발간해온 호국전몰용사 공훈록엔 14연대 장교 13명의 공적이 실려있다. ‘반란 진압 작전에 참가하여 임무 수행 중 장렬히 전사했다’는 간략한 내용뿐이다. 살아남은 장병들은 몸을 숨겼고, 반란군은 진압 과정에서 사살되거나 지리산에 들어가 현장 목격 자료가 부족해서다. 여수항에서 출동 준비하던 김래수 중위가 연대장 지시로 부연대장과 함께 귀대하다 반란군 총격으로 현장에서 즉사했다(국방부, ‘6·25전쟁사’ 1권 455쪽, 2004)는 내용 정도가 전해진다.

당시 육군 정보국장이던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실록 지리산)엔 생존 장교들의 증언이 나온다. ‘대대 부관 김정덕 소위가 양팔이 늘어져 덜렁거리는 상태로 달려 내려와 ‘저놈들이 나를 쐈다’고 소리치며 내 앞에 털썩 쓰러졌다.’(1대대 작전교육관 전용인 소위) ‘누구냐 하는 외침 소리에 나도 모르게 ‘주번사관’이라고 답했다. 그 순간 ‘쏴라’ 하는 소리에 이어 총성이 울렸고, 복부에 따끔한 통증을 느끼며 땅바닥에 엎드렸다조 소위는 99식 총검이 복부를 관통해 창자가 흘러나와 있는 상태였다.’(5중대장 대리 박윤민 소위) 반란군은 장교들을 사냥하듯 총검을 휘둘렀다.

◇현충원에 모신 14연대 장교는 18명뿐

1대대장 김왈영은 스물둘이었고, 김일득 소위가 서른으로 가장 나이 많은 축이었다. 장교들은 대부분 20대 초중반으로 부사관·사병과 비슷한 또래였다. 당시 열아홉이던 최석신(육사 6기) 전 노르웨이 대사는 임관 직후인 8월 초 14연대 소대장으로 부임했다가 진해에서 포병 교육을 받느라 ‘반란’을 모면했다. 최 전 대사는 12일 통화에서 “10월 말 교육을 마치고 광주 5여단 본부에 복귀 신고를 하러 갔는데, 김왈영 1대대장 등 장교 16명의 유골이 안치돼 있었다.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했다.

14연대 전사 장교 21명 중 국립 현충원에 모신 분은 18명뿐이다. 이 중 17명은 위패만 봉안됐다. 길원찬·김래수 중위, 노영우 소위는 현충원에 위패조차 없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14연대 장교 전사자 21명 중 8명에 대한 ‘공훈록’은 사건 73년이 넘도록 내지 않았다. ‘여순사건’은 신생 국군 내부에 침투한 남로당 좌익 세력을 소탕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내부 단속이 없었다면 6·25전쟁에서 나라를 보존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반란’에 맞서다 숨진 14연대 장병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부실투성이 14연대 전몰장병 기록]

군사편찬연구소 기록 오류 많아

여순 사건으로 전사한 14연대 장교 21명에 대한 기록은 부실투성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작성한 공훈록이나 현충원 안장자 소개,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까지 기관마다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작성한 맹택호 소위 공훈록에는 1950년 10월 22일 운산전투에서 전사했다고 쓰여 있다. 여순 사건 전사자를 6·25 전사자로 둔갑시킨 셈이다. 같은 연구소가 펴낸 ‘한국전쟁사’와 현충원 안장자 기록엔 같은 군번과 이력의 맹 소위가 1948년 10월 22일 여순 사건으로 전사했다고 썼다. 현충원 관계자는 “사망 일시를 비롯한 인적 정보는 각 군에서 작성한 전사자 명부를 기준으로 한다”고 했다. 위패가 봉안된 이봉규 대위도 현충원은 사망 일자를 1952년 4월 30일로 썼다. 6·25 전사자처럼 보인다.

소속 부대가 제각각인 경우도 있다. 박경술 소위는 국방부 공훈록엔 1연대, 현충원 자료엔 4연대 소속으로 나온다. 민병흥 소위는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에 14연대와 11연대 소속으로 두 번 올라있다. 진도연 중위는 위패는 서울, 유해는 대전 현충원에 안장돼 있다고 소개한다. 유해가 없는 전몰장병만 위패를 모신다는 현충원 설명과 어긋난다.

여순 사건 전사자는 창군 초기라서 관련 기록이 정확하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명백한 오류를 방치한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다. 6·25 전사자를 여순 사건 때 해체된 14연대 소속으로 쓴 기록도 많다. 전사자 현황을 추적해온 정일랑(79) 무공수훈자회 여수지회장은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전몰장병을 이렇듯 허술하게 다룰 수 있느냐”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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