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국제질서] 50년 전 닉슨과 마오쩌둥 밀담
2022.03.03 11:48
50년 전 닉슨과 마오쩌둥 밀담
[안용현, "50년 전 닉슨과 마오쩌둥 밀담," 조선일보, 2022. 2. 23, A34쪽.]
1968년 소련이 체코의 민주화 운동을 탱크로 짓밟았다. 미국 등 서방은 충격을 받았다. 1969년 중국과 소련이 우수리강과 신장 등 국경에서 무력 충돌했다. 4300㎞가 넘는 중·소 국경에 150만 군대가 대치하더니 ‘핵 공격’ 위협까지 주고받았다. 미·중 모두 소련의 패권을 견제해야 했다.
▶50년 전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 공항에 내렸다. 마지막 날 ‘황제’를 만날 것이란 예측을 깨고 도착 몇 시간 만에 마오쩌둥과 비공개 회담했다. 소련 얘기는 서로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다. 이심전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오는 뜬금없이 “중국 군대는 해외로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닉슨이 골치 아파하던 베트남전에 6·25 때처럼 중공군이 참전할 일은 없다는 의미였다. 마오는 “우파를 좋아한다”고도 했다. 당시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우파 청산’을 해놓고 ‘우파인 미 공화당 집권이 즐겁다’고까지 했다.
▶닉슨은 “일본이 국방을 위한 군사력이 없는 편이 더 나을까”라고 물었다. 일본 재무장에 대한 마오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닉슨 방중 결과인 상하이 코뮤니케(공동선언)는 ‘대만이 중국의 일부’이고 ‘미국은 대만 주둔 군대를 감축할 것’이란 내용이 핵심이다. 닉슨 방중에 앞서 대만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유엔 무대에서 퇴출당했다. 미·중 비밀 협상으로 대만의 안보와 독립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닉슨은 마오에 이어 저우언라이를 만나 “남이든 북이든 한국인은 충동적인 사람들”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이 호전적인 사람들이 우리 두 나라(미·중)를 곤궁에 빠뜨리는 사건을 일으키지 않도록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장이 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도 했다. 중공군에 맞서 같이 피 흘렸던 동맹국 맞나 싶은 말이다. 저우는 닉슨의 주한미군 감축에 감사 뜻을 표하기도 했다. 방중 1년 전 닉슨이 주한미군 2만여 명을 뺐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이런 밀담 내용을 까맣게 몰랐다.
▶닉슨 방중 50주년인 21일 닉슨 방중을 수행했던 미 국무부 전 차관보는 “시진핑 주석의 개인 숭배 부활과 철권 통치가 마오쩌둥과 비슷하다”고 비난했다. 닉슨 방중이 열었던 미·중 ‘데탕트(긴장 완화)’가 지금은 꿈같은 얘기로 들린다. 이제 중·러가 밀착해 미국을 견제한다. 시진핑·푸틴 정상 회담만 40회에 육박한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 때나 지금이나 세계는 ‘스트롱맨’들의 세상이란 것이다. 지금 우리 머리 위에서 이들이 어떤 밀담을 나누는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