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안보] 핀란드 나토 가입 사건
2022.05.19 11:52
핀란드 나토 가입 사건
[사설: "핀란드 나토 가입 사건," 조선일보, 2022. 5. 14, A26쪽.]
1939년 11월 소련이 핀란드를 3배 병력, 30배 전투기, 100배 전차로 침공했다. 유명한 ‘겨울 전쟁’이다. 스탈린은 발트 3국 합병에 이어 1917년 러시아에서 독립한 핀란드도 탐냈다. 이 전쟁에서 소련 승리는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런데 핀란드군의 반격이 무서웠다. 저격수 해위해는 혼자서 소련군 542명을 사살했다. 세계최고기록일 것이다. 하루 25명을 저격한 적도 있다. 눈밭에 잠복한 그는 ‘하얀 사신(死神)’ 소리를 들었다. 빛 반사를 막으려고 조준경도 쓰지 않았고, 입김을 없애려고 눈덩이를 입에 물었다.
▶소련군 전차는 화염병 공격을 받았다. 핀란드는 자체 개발한 기관단총으로 전차병을 먼저 쏘고 화염병을 후방 엔진으로 던졌다. 핀란드 스키병은 눈에 빠진 소련군을 기습하고 사라졌다. 쐐기를 박아 통나무를 쪼개듯 소련군 대부대 행렬을 쪼개 각각 분쇄하는 ‘쐐기 전법’도 위력을 발휘했다. 소련군 전사자는 핀란드군의 5배가 넘었다. 당시 핀란드군은 전투에서 이기고 있었지만 정부가 항복해버렸다. 영토 11%를 소련에 빼앗겼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핀란드는 복수를 위해 히틀러와 손잡았다. 빼앗긴 땅을 잠시 되찾았으나 독일 패전이 분명해지자 한발 먼저 소련에 항복하고 핀란드 내 독일군을 소탕했다. 이후 핀란드는 철저하게 소련에 엎드렸다. 미국 주도 안보 기구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은 물론 경제 지원책인 마셜 플랜도 거부했다. 반(反)소련 서적과 영화를 금지했고, 소련에 대한 언론 비판은 자체 검열했다. 소련의 내정간섭까지 묵인하자 오스트리아 외교장관이 경멸조로 ‘핀란드화’라는 용어를 썼다. 이웃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주권 이익을 점점 더 내주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런 핀란드가 “즉시 나토 가입을 신청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럽 역사에서 큰 사건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핀란드 국민의 나토 가입 찬성률은 20%대였지만 지금은 80%에 육박한다. 지난달 핀란드군은 나토군 연합 훈련에도 참가했다. 러시아의 무모함에 국민이 충격을 받았다.
▶러시아는 핀란드에 “군사 보복 조치”를 위협했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런데도 핀란드가 속도를 내는 건 러시아 같은 나라에 굴종해서는 주권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1300km가 넘는 국경을 맞대고 수백 년간 러시아의 핍박을 받았다. 핀란드의 고난과 ‘핀란드화’ 굴종, 이에 대한 반성 등이 남의 일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