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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고통 분담’ 없이는 물가 못 잡는다

코로나와 전쟁이 초래한 공급 부족이 물가상승 원인
커피·와인·사케 소비 줄이고 자동차 덜 타
원유 수입 줄이는 수요 감축만이 해결 방안
정부, 국민의 긴축 동참 설득을

[박병원, "국민의 ‘고통 분담’ 없이는 물가 못 잡는다," 조선일보, 2022. 7. 12, A30쪽.]

6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6%를 기록했다. 전기 요금 억제, 유류세 할인 등 다양한 가격 왜곡을 감안하면 앞으로 더 오를 일만 남았다. 코로나에 따른 공급망 마비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와 식량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심화된 공급 부족이 원인이다. 공급 부족으로 야기된 물가 상승에 대처하는 길은 공급이 회복될 때까지 수요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공급이 줄었는데 모두가 전과 같은 수준의 소비를 고집하면 값이 어떻게 안 오르겠는가?

우리 역사상 가장 심각했던 인플레를 잡고 경제를 안정 성장 궤도에 올려 놓은 대통령은 전두환이다. 2차 오일 쇼크,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기록적 쌀 흉작 등 공급 쪽 충격으로 1980~81년 2년간 56.2%나 오르던 물가를 83년 이후에는 연간 2% 수준으로 안정시키고 성장도 10%대로 회복시켰다. 박 대통령이 1979년 4월 16일 모든 물가 규제를 없애고, 그다음 날 물가 안정을 오로지 규제 개혁과 경쟁 촉진, 그리고 수입 개방으로 달성하겠다는 경제 안정화 종합 시책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 인기 없는 정책들을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우직스럽게 밀고 나가면서 소위 경제 교육을 통해서 수요 감축에 온 국민의 협조를 이끌어 낸 것은 전두환의 공이다. 고통 분담이라는 용어가 이때 등장했다.

금융 긴축은 최근 미국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을 감안할 때 환율 방어를 위해서라도 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자 부담이 느는 만큼 소비는 줄 것이다. 재정의 자세가 “전 국민의 긴축”을 설득하기에는 미지근한 것이 문제다. 적자 재정에 의한 돈 퍼주기를 능사로 삼은 전 정부가 5년 동안 지출을 방만하게 늘려 놓은 것을 감안할 때 당장 올해 예산부터 흑자로 운영해야 하고 내년 예산도 흑자로 편성해야 한다. 동결로 만족할 일이 아니다. 특히 공공 부문의 과도한 증원을 되돌릴 방안을 반드시 강구해야 한다. 대통령은 전두환이 문희갑에게 부여한 수준의 임무와 권한을 예산실장에게 부여해서 악역을 감당하게 해야 한다.

물가 상승과 임금 인상의 악순환을 막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데, 양대 노총이 아니라 경제 단체장을 만나서 대기업의 임금 인상 자제를 호소한 것은 좀 이상하다. 우리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는 이유로 공급 차질이 생겼는데 물가 오른 만큼 임금을 올리려는 것은 전과 다름없이 소비하겠다는 말이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322만명이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물가가 올라도 임금을 올리지 못하는 국민이 많다. 김밥, 라면, 우동 값도 다 올랐다고 하지만 매출 감소와 폐업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런 실상을 국민 모두에게 알려서 나만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야 자제 호소가 가능하다.

제일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수입을 줄이면 환율과 물가를 동시에 안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다. 닭고기나 돼지고기로 배를 채우려면 여섯 끼, 열 끼분에 해당하는 양의 수입 곡물이 사료로 투입되어야 하는 만큼 축산물 소비를 조금씩만 줄여 주면 우리 무역수지 개선은 물론 전 지구적 굶주림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 1인당 137kg까지 먹던 쌀 소비가 60kg 이하로 떨어져 쌀이 남아 돌고 값이 폭락하고 있는데, 쌀을 조금 더 먹어서 밀 등의 수입을 줄이면 안 될까? 근년에 폭발적으로 수입이 늘어난 커피, 와인, 사케의 소비를 조금 줄여 줄 수는 없을까?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해 주면 원유 수입을 줄일 수 있다.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한 1년씩 더 쓰면 안 될까? 코로나 때문에 오랫동안 해외여행도 유학도 못 가서 갑갑한 것은 이해하지만 이렇게 환율도 높을 때 조금 더 미루면 환율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서 사실은 모든 소비 절약 노력이 다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된다.

애국심이나 도덕심에 호소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세계적 금리 인상 경쟁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원유 가격이 이미 하락세로 돌아선 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공급 차질로 인한 인플레에 대응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수요 감축이다. 강요당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하면 훨씬 덜 고통스럽다. 실물 수급에서 생긴 문제를 재정, 금융 같은 거시 정책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온 국민의 긴축 동참을 이끌어 낼 노력이 절실하다. 유류세 인하, 전기 요금 인상 억제로 국민의 절약 노력을 느슨하게 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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