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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人'답지 않은 전직 국방장관과 장군


[최보식, "'武人'답지 않은 전직 국방장관과 장군," 조선일보, 2018. 8. 3, A30쪽; 선임기자.]
                        

필자가 취재한 바로는 '기무사 계엄 문건'이 만들어진 상황은 이렇다.

지난해 2월 중순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장관실에 들어섰다. 특별하게 보고할 안건이나 용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민구 장관이 대화 상대로 불렀다고 한다. 화제가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으로 옮아갔다. "헌재의 탄핵 결정이 3월 10일 전후 나올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보고받고 있다…" 대통령의 향후 운명은 군(軍)에서도 최고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장관과 기무사령관은 어떤 정보에 근거했는지 모르나 대통령 탄핵은 '기각' 결정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 결정에 대한 불복(不服)이 폭동으로 번질지 모를 상황을 걱정했다. 이미 야권 대선 주자인 문재인씨가 "기각 판결을 내리면 다음은 혁명밖에는 없다"고 말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둘 사이에 대화가 이어졌다. "기각 결정이 나면 촛불 시위가 격화되고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텐데 경찰력으로 막을 수 있을까?" "우리 쪽에서 한번 대비책을 만들어볼까요?" "뭐, 그렇게 해보게."

보름쯤 지나 기무사령관이 장관에게 8쪽짜리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 방안'을 들고 갔다. 장관은 앞부분을 훑어본 뒤 '보관해두게'라며 되돌려줬다. 장관에게는 이것이 기무사 문건과 관련된 상황의 전부였다. 그는 67쪽의 '대비 계획 세부 자료'는 보지도 못했다. 그걸 봤으면 기무사가 바뀐 시대 현실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책상머리에서 이렇게 한심한 문건을 만들었나 하고 알게 됐을 것이다.

어쨌든 탄핵 심판은 '인용' 결정이 났다. 촛불 군중이 정부를 뒤집을 '혁명'의 이유가 사라졌다. 세상은 잠깐 소란했을 뿐 폭동 사태는 없었다. 국가 혼란 상황에 대비한 기무사 문건은 소용이 없었다. 기무사령관은 전역하면서 "나중에 소요 사태가 발생하면 이 문건을 참고할 수 있으니 보관해두라"고 했다고 한다. 그 문건에 불법적이고 다른 의도가 있었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파기했거나 들고 나왔을 것이다.

지금 와서 이런 문건이 '내란 음모'나 '쿠데타 미수'의 엄청난 증거물처럼 됐다. 이런 경우를 기자의 언어로는 '과포됐다'고 말한다. 별거 아닌 걸 정말 큰일 날 뻔했다는 식으로 과대 포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에 특별수사단을 구성하고 청와대로 모든 문건을 제출하라고 지시해야 할 정도로 긴급한 현안이었을까. 그 뒤 청와대에 전군 지휘관을 모아놓고 "계엄 문건은 불법적 일탈 행위이고 문건 검토 그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행위"라고 한마디로 심판한 대통령에게서 '제왕(帝王)'의 모습을 봤다.

권력을 쥔 쪽에서는 원하는 정치적 의도로 사건을 몰아가고 키우는 법이다. 진짜 문제는 이런 정권의 의도에 사건 당사자들이 일조하는 데 있다. 한민구 전 장관과 조현천 전 사령관은 자신들이 관련된 행위가 '쿠데타 미수'로 몰리고 군(軍) 전체가 매도되는데도 침묵해왔다. 주위에 자신의 억울함만 털어놓았을 뿐이다.

미국에 체류 중인 조현천 전 사령관은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평생 군인으로 자존심을 갖고 살았고 쿠데타라는 걸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나를 내란 수괴죄로 몰고 가느냐"며 울분을 토로했다. 금방이라도 국내로 뛰어와 기자회견을 할 기세를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

한민구 전 장관도 사석에서는 "너무 황당해 말이 안 나온다. 기무사 문건 문제만 아니라 현 정권의 안보 정책에 할 말이 많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평정심을 찾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 했다.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게 될 자신의 앞날을 떠올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는 보름 전부터 법률적 준비를 해야겠다며 외부와 연락도 끊었다.

한때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고 더욱이 명예를 중시하는 무인(武人)이라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입장 표명이 검찰을 자극해 자신에게 불리해질지 모른다고 계산한다. 대통령이 이미 '수사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는데도 자신만은 법을 다퉈서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는 요행을 바란다. 현 정권에서 이미 많이 봐왔듯이 결국 이들은 자신의 입장을 밝힐 기회마저 잃고 예정된 길을 따라갈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곤경에 처했을 때 가장 잘 드러난다고 했다. 특히 고위직의 보수 인사들에게는 진퇴와 자기희생, 숙명의 미학이 없다. 이들은 자기 한 몸의 억울함만 늘어놓아선 안 된다. 개인적으로 손해를 더 보더라도 이들에게는 정권의 의도에 맞서야 할 책임이 있다. 현 정권이 이렇게 질주하게 된 것은 책임 있는 개인들이 발언 해야 할 때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02/20180802033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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