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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적 장로교회의 필요성

2019.09.07 07:16

oldfaith 조회 수:1584

근본주의적 장로교회의 필요성에 대해 제가 올렸던 글을 다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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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적 장로교회의 필요성

김효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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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교회의 시대가 2천년을 지난 지금, 온 세계에서도 그러하지만, 특히 우리 나라에서 근본주의적 장로교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면서 나는 '근본주의적 장로교회'가 무엇이며 그것이 왜 필요한지 몇 마디 증거하고자 한다.

 

 장로교회

우선, 장로교회가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해 보자. 장로교회는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이다. 첫째는, 교회의 정치 혹은 운영 방식에 있어서의 대의(代議) 정치이며, 둘째는, 교리와 신학에 있어서의 개혁신학이다.

 

 1. 대의정치

장로교회의 첫번째 주요한 원리인 대의(代議) 정치란, 교인들이 뽑은 대표자들(목사와 장로들)에 의해 교회가 운영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교인들의 영적 특권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비록 목사와 장로들의 특별한 직무와 권위를 인정하지만, 동시에 모든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들이며(벧전 2:5, 9) 따라서 교회의 중요한 일들에 참여하였음을 증거한다(행 1:15-26; 6:5-6; 14:23; 15:22).  

 

감독정치와 다름

장로교회의 정치는 감독교회의 정치 방식과 다르다. 감독교회는 교인들의 참정권을 인정치 않고 감독들만이 교회를 운영할 권한을 가진다고 본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비록 장로들이 교회의 감독이며 그들에게 양무리를 돌보는 직무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행 20:28) 일반 교인들도 교회 정치에 참여할 영적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회중정치와 다름

장로교회의 정치는 회중교회의 정치 방식과도 다르다. 회중교회는 일반 교인들의 영적 특권은 매우 중시하지만, 목사와 장로들의 감독적 직무와 권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모든 신자가 다 제사장으로서의 영적 특권을 가지고 있지만 목사와 장로들에게는 교회를 가르치고 다스리는 특별한 직무와 권위가 있다고 본다(요 21:15-17; 행 20:28; 벧전 5:1-4).

이와 같이, 장로교회는 성경이 모든 신자의 제사장적 특권과 목사와 장로들의 감독적 직무와 권위를 둘 다 가르치고 있다고 믿는다. 일반 성도들의 영적 특권도 중요하지만, 또한 목사와 장로들의 특별한 직무와 권위도 중요하다. 장로교회는 그 둘 중의 어느 것도 무시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의 정치 혹은 운영 방식에 있어서 장로교회의 대의 정치 방식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믿으며, 모든 교회들이 장로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2. 개혁신학

교리와 신학에 있어서, 장로교회는 개혁신학을 따른다. 개혁신학이란, 로마 카톨릭 교회와 루터파 교회와 알미니우스파 교회와 구별되는 사상 체계를 말한다.  

 

로마 카톨릭 교회와 분리됨

'개혁신학'은 우선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의 원리들을 따른다. 개신교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 오직 은혜!, 만인제사장직!' 등의 원리들을 강조했는데, 그것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구별되는 중요한 점들이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권위의 근거를 성경에 두지 않고 교회 자체와 교회의 우두머리인 교황에게 두었다. 또 로마 카톨릭 교회는 사람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복음 진리를 부정하였고 구원을 위해 성례들의 절대적 필요성을 주장했다. 또 교회와 신부들의 중보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이 모든 주장들을 비성경적인 것이라고 배척하고, 오직 신구약 성경만이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 것과, 사람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과, 모든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적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 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강조점들은 개혁신학의 기본적 원리들이다.

 

루터파 교회와 구별됨

개혁신학은 또한 종교개혁 때로부터 루터파 신학과 구별되었다. 특히, 성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의 방식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그 둘은 서로 달랐다. 루터파 교회는 '이것은 내 몸이요, 이것은 내 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고 했다. 즉 그 교회는 주의 몸과 피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성찬의 빵과 포도즙 안에, 곁에, 아래 임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혁파 교회는 주의 말씀이 비유적 표현이며 예수님의 몸과 피가 실제로 함께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의 영께서 성찬식에 함께하실 뿐이라고 보았다.

뿐만 아니라, 교리 체계에 있어서의 인간론적, 구원론적 강조나, 비록 약하지만 신인협력설적 경향, 그리고 성경이 명백히 정죄하지 않는 교회 전통과 의식의 보존 등도 루터파 교회가 개혁파 교회와 구별되는 점들이었다.

 

알미니우스파 교회와 구별됨

개혁신학은 특히 17세기 개혁파 교회 안에서 일어난 알미니우스파와의 논쟁에서 그 특징이 더욱 분명하게 정립되었다. 알미니우스파의 다섯 가지 요점은 다음과 같다. (1) 조건적 예정. 하나님의 선택과 정죄는 사람의 신앙과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豫知)에 근거한다. (2) 보편 속죄.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다. (3) 구원적 믿음.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구원적 믿음에 이를 수 없다. (4) 저항할 수 있는 은혜. 하나님의 은혜는 저항할 수 있다. (5) 견인(堅忍)의 불확실성. 하나님의 은혜는 상실될 수 있다.

이러한 알미니우스파 사상과 구별하여, 개혁교회는 도르트 회의에서 다섯 가지 요점을 선언하였다. 이 다섯 가지 요점들은 개혁신학의 중요한 내용이다. (1)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의 긍휼로 죄인들 가운데 일부를 선택하셨고 그 나머지를 그들의 죄 가운데 버려두셨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제한적 속죄.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자들' 즉 만세 전에 선택된 자들을 위해 죽으셨다. (3) 사람의 전적인 부패와 무능력. 모든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되고 무능력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회개하고 믿을 수 없다. (4) 불가항력적 은혜. 성령의 구원하시는 은혜는 사람이 저항할 수 없다. (5) 성도의 견인(堅忍).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끝까지 보존하신다.

개혁신학은 이와 같이 로마 카톨릭 교회와 분리됨으로써 그리고 루터파 교회와 알미니우스파와 구별됨으로써 그 중요한 특징들이 정립되었다. 우리는 이상에 열거된 개혁신학의 중요한 원리들을 성경적이라고 믿는다. 성경적 교리 체계는 개혁신학에서 가장 잘 정리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교회들이 개혁신학을 따르는 장로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근본주의

그러면 우리가 '근본주의적 장로교회'라는 말을 할 때, 근본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날 근본주의라는 말은 말하는 이의 분별력이나 입장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주의는 역사적으로 정의될 때 성경적 입장이다.

 

 1. 자유주의와의 투쟁

근본주의라는 입장 혹은 운동은 자유주의와의 투쟁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19세기 후반, 기독교회 안에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성경을 비평적으로 연구하는 풍조가 일어났다. 더욱이, 진화론과 유물론(唯物論)이 나타남으로 이 풍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의 전통적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소위 자유주의 신학이 발생하였고 성장하였다.

유럽에서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자유주의 신학은 온 세계에 영향을 미쳤고, 세계교회에 큰 역할을 했던 미국교회들도 마침내 20세기 초 자유주의화 되었다. 우리 나라에는 카나다 장로교회의 서고도(Scott) 선교사 같은 이를 통해 자유주의가 들어왔고, 김재준 박사 등이 자유주의 사상을 받아들였고 퍼뜨렸다. 

성경적 기독교와 자유주의 신학의 차이점은 단순히 지엽적 문제들에 있지 않다. 자유주의 신학에 의하면, 기독교는 교리와 별개의 경험 혹은 생활이며, 교리는 기독교적 경험 혹은 생활을 한 시대의 사고 방식으로 표현한 하나의 상징적 표현에 불과하며 따라서 교리는 시대마다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기독교는 결코 교리와 별개의 어떤 경험이나 생활이 아니고, 교리에 근거한 생활 혹은 경험이며, 기독교 교리는 확실하고 불변적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처럼 교리를 기독교의 본질적 요소로 보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자유로이 왜곡시키고 결국 부정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것은 곧 이단이다. 여기에 자유주의 신학의 심각한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신학이라는 이름과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학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이단 사상인 것이다.  

 그러면,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적 예들을 몇 가지 들어보자.

첫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신빙성과 신적 권위성과 무오성(無誤性)을 부정한다. 예컨대, 자유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인물들이 후대의 신화적 산물들이든 아니든 무슨 문제가 되는가?"라고 질문했고, 또 말하기를, "구약과 신약의 성경 역사는 실상 전혀 역사가 아니고, 위에서 보면 일련의 자유로운 신적 행위들이며 아래서 보면 본질상 어떤 것을 이루려는 일련의 결실 없는 시도들이다"라고 하였다.1) 또 자유주의 신학자 씨 에취 다드는 말하기를, "[성경의] 외적 권위는 엄밀한 의미에서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 "우리가 계시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어느 것도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상대적이다. 아무 곳에서도 진리는 우리가 자존적, 외적 권위를 찾을 수 있는 순수하게 '객관적인'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2)

둘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진노의 속성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씨 에취 다드는 말하기를, "하나님을 인격의 가장 높은 이상으로 생각하면서 비이성적인 진노의 격정을 그에게 돌리는 것은 전혀 논리일관하지 않다"고 하였다.3) 자유주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진노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신성과 그 무조건적 성격과 명백히 모순된다. 그러므로 그 개념은 재해석되든지 아니면 기독교 사상에서 완전히 포기되어야 한다"고 하였다.4)

셋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는 말하기를, "영원이 시간 속에 들어온다는 개념은 지적으로 불합리하다"고 하였다.5) 또한 폴 틸리히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주장은 역설적(逆說的)이 아니라 부조리한(nonsensical) 말이다"라고 하였다.6)

넷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벌적 대속(代贖)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씨 에취 다드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유화(宥和, propitiation)라는 번역은 진노하신 하나님을 누그러뜨림을 의미하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이것이 비록 이교적 용법에는 맞을지라도 성경적 용법에는 생소하다"라고 하였다.7) 또한 라인홀드 니이버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교리는 많은 신학적 오류들로 인도하는데, 그 중에는 인간의 도덕 의식을 모욕하는 대리적 속죄의 이론들이 포함된다"고 말하였다.8)

다섯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성(歷史性)을 부정한다. 칼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역사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증거도 없고, 어떤 증거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명백하다. . . . 실제로 성경 역사에 결정적 요소들인 창조 이야기와 및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공통적으로, 예수님의 부활 역사는 '사가(saga)' 혹은 '전설'로 간주되고 묘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반대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확실히 역사로 생각될 수 있지만, 부활은 그렇지 않다.9)

자유주의 신학자 판넨베르크는 말하기를, "복음서들에 보도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들은 바울에 의해 언급되지 않았으며 강하게 전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서 그 자체의 역사적 알맹이를 거의 찾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10)

여섯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부정한다. 칼 바르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그것은 동일한 것인데--역사적 사건이 아니다"라고 하였다.11) 또 라인홀드 니이버는, "기독교의 교리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보다 더 속임과 착각에로 인도한 교리는 없다"고 말하였다.12) 

이와 같이,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신빙성과 신적 권위성과 무오성, 하나님의 진노의 속성,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형벌적 대속, 부활, 재림 등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이단이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의 2천년 역사상 찾아 볼 수 없었던 가장 무서운 이단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주의 재림 직전에 교회들이 하나님의 참된 진리에서 이탈하여 배교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데살로니가후서 2:2, "먼저 배도[배교]하는 일이 있고."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출현과 온 세계에 퍼진 현상은 성경에 예언된 바가 그대로 성취되고 있는 것뿐이다.  

근본주의는 19세기말과 20세기초 미국 교회 안에서 머리를 들기 시작했던 이러한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난 것이었다. 1910-1915년에 근본교리들(Fundamentals)이라는 12권으로 된 책자들이 약 300만부 무료로 배포되었다. 이 책자들의 내용은 주로 진화론과 비평적 성경연구방식에 대항하여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변호하는 것들이었다.

1910년 미국 북장로교회 총회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대속(代贖), 육체적 부활, 및 기적들의 사실성 등을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본질적인 내용이라고 선언하였다. 이 선언은 1916년, 1923년 총회에서 두 번이나 재확인되었다.13)

근본주의에 대해 많이 연구한 죠지 마스든은 "미국에서의 근본주의는 전투적으로 반(反)현대주의적인 복음주의적 개신교 운동으로 가장 잘 정의된다"고 표현하였다.14)

고(故) 박형룡 박사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근본주의는 별다른 것 아니라, 정통주의요 정통파 기독교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적, 정통적 신앙을 그대로 믿고 지키는 것, 즉 정통 신앙과 동일한 것이니만치, 이것은 곧 기독교 자체라고 단언하는 것이 가장 정당한 정의일 것이다. 근본주의는 기독교 자체다."15) 

 

 2. 신복음주의와의 갈등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근본주의는 신복음주의와의 갈등에서 그 특질이 형성되었다. 20세기 초 미국의 기독교계는 자유주의(현대주의)와 근본주의(보수주의, 복음주의) 둘만 있었다. 그러나 근본주의와 현대주의와의 투쟁이 외적으로 근본주의의 패배로 끝나고, 대 교단들은 자유주의를 제거하기는커녕 자유주의를 고의적으로 포용하는 소위 '넓어진 교회'가 되었을 때, 근본주의는 자유주의화된 교단들로부터 분리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왜냐하면 근본주의자들은 이단적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것이 주께 대한 배신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1930년대 미국 교회에서 일어난 분리 운동들의 이유가 있다.

이 때 여러 근본주의적 독립 교회들이 생겨났고, 새로운 작은 교단들도 형성되었다. 예를 들면, 미국 근본주의 독립교회,16) 정식 침례교회 총협의회,17) 미국장로교회18)(1939년에 정통장로교회19)로 이름을 바꿈), 성경장로교회20)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1940년대에 들어와 '신복음주의'21)라고 불리우는 한 운동 혹은 입장에 의하여 교계는 한층 더 복잡한 갈등 속에 빠졌다. 1948년 풀러 신학교 강연에서 교장 해롤드 오켄가는 '신복음주의'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1942년 그는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22)를 조직, 초대 회장이 되었고, 또한 풀러 신학교의 초대 교장이 되었다. 그는 크리스챤니티 투데이지의 이사장으로 25년간 있었다. 그는 빌리 그레이엄의 절친한 친구요 신학적 조언자이었다.

그는 풀러 신학교 교장 취임시 근본주의자들을 비난했고 자기 신학교는 교단들 안에 있는 목회자들을 훈련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1957년 한 뉴스 팜플렛에서 "신복음주의는 그 전략을 분리에서 침투로 바꾸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후에 "신복음주의는 분리적 입장을 거절함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달랐다"고 회고했다.

1951년에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23)가 20개국의 복음주의자 협회(NAE)들이 모여 형성되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점차 자신들을 단순히 '복음주의자'로 불렀다.

이와 같이, 신복음주의는 기독교의 근본교리들을 대체로 주장하지만 자유주의자들로부터의 교회적 분리를 반대하는 입장으로 시작된 것이다.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방법은 신복음주의의 대표적 예이다. 빌리 그레이엄의 본래의 입장은 건전했다. 그는 1951년 4월 파일롯(Pilot)지의 글에서 "우리는 어떤 형태의 현대주의도 너그럽게 보거나 교제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1952년 6월 3일자 선배 부흥사 밥 죤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현대주의자들은 어디에서나 우리를 후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린스보로와 슈립포트 외에 어느 도시에서나 교회협의회[NCC]의 후원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 후 빌리 그레이엄은 그의 입장을 변경했다. 그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컬럼버스 등의 전도집회에서 공공연히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들의 후원을 받았다. 또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전도집회시 제랄드 케네디 감독을 명예 대회장으로 임명했는데, 케네디 감독은 그의 책 하나님의 좋은 소식(God's Good News)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명백히 부정한 자이었다.24)

빌리 그레이엄은 오늘날 천주교회와의 관계에서도 타협적이다. 199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 이사인 스털링 허스톤은 말하기를, "지난 10-15년 동안 그레이엄 전도대회에는 카톨릭 참여가 중대하게 늘어났고 약간의 카톨릭 지도자들은 이제 전도대회 계획위원회들의 공식적 대표자들로 봉사한다. 카톨릭 신자들은 안내위원들, 성가대원들, 심지어 상담위원들로 환영을 받고 있다"고 했다.25)

 박형룡 박사는 "신복음주의는 미국에서 20세기 초에 자유주의가 득세하고 근본주의가 실세(失勢)한 데 대한 반발로 어떤 보수주의 신학교육을 받은 소장 신학자들이 자유주의 신학과 타협을 감행하기로 발족한 새 신학운동"이라고 진술한 후, 20가지 요점으로 비평하였다. 그 주요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에 대해 가혹히 비판한다. 학문성 결여, 반교파주의, 세대주의, 부정주의 등이 그 비판의 내용이다. 그러나 근본주의에 대한 가혹한 비평은 비평자의 정통성을 의문케 한다.

(2) 신복음주의는 신정통주의와 타협하는 경향이 있다. 신복음주의자 밀라드 에릭슨은 "신복음주의는 신정통주의의 일반적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고 말한다. 신정통주의의 특징은 하나님의 계시와 성경을 분리시키고 파괴적 성경 비평을 수납함인데, 과연 어떤 신복음주의자들은 성경 무오를 부정하고 성경을 파괴적으로 비평한다.

(3) 신복음주의는 유신론적 진화론을 수납한다. 즉 천지 창조와 인간 창조에 대해 진화론적 개념을 받아들이며, 지질학적 연대를 수납한다.

(4) 신복음주의는 이적 부인의 경향을 띤다. 예컨대, 신복음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성탄의 교리를 중요치 않게 본다.

(5) 신복음주의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사회 복음 운동에 따라간다. 해롤드 아켄가는 말하기를,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가 회피한 사회적 난제들을 취급하기를 의욕함에서 근본주의와 다르다. . . (개인 복음과 사회 복음 사이에 이분설이 있을 필요가 없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구원의 개인적 초자연적 경험과 사회 철학이다"고 했다. 그래서 신복음주의자들은 민권 투쟁, 빈민 행진 등 과격한 사회 정치 활동에 참여한다.

(6) 신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과 우호적 관계를 가진다. 그들은 자유주의자들과 신학적 대화를 원하고 그들과 협력하고 그들을 강사로 초청한다. 특히, 빌리 그레이엄의 경우와 같이, 전도 집회에 있어서 자유주의자들, 자유주의 교회들과 협력한다. 더욱이, 신복음주의자들은 자유화된 교단들을 떠나지 않고 그 안에 머문다.

박형룡 박사는 마지막으로 신복음주의자들이 잘못 아는 형제들이거나 열렬하지 않은 이단들일 것이라고 언급한 후에,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금일에 '신복음주의'란 것은 그 신학의 창시자 아켄게와 신봉자들의 자칭하는 허울 좋은 이름이지만 실로는 '신자유주의' 운동이다. 성경적인 정통신앙을 지키기에 천신만고를 무릅써 온 한국 보수주의 교회들은 결코 이 '신자유주의'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없다. 우리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과 신도들은 우리의 신앙의 조상들이 눈물과 피로 지키고 전해 준 바른 신앙의 노선을 버리고 이 새로이 일어난 신 사상의 노선에 한 걸음이라도 따라서는 안된다.26) 

우리 나라의 보수적 장로교회들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인식이 이전보다 더욱 없고 잘못된 연합 운동과 타협주의가 유행하고 있다. 몇 가지의 예들을 들어보자. 1986년 9월 8일 한국 장로교 협의회(당시의 회장=이종성 목사)는 새문안교회당에서 노춘경씨 수세 100주년 기념 행사로 5개 장로교단 연합 성찬예배 및 강연회를 가졌는데, 5개 교단(예장 통합, 합동, 고신, 대신, 기장) 지도자들 150여명이 참석했다. 보수 교단들이 자유주의적 교단들(기장과 예장 통합)과 함께 성찬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1990년 11월 14일부터 18일까지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당시의 회장: 김준곤 목사)는 홍콩 국립 경기장에서 개최되는 빌리 그레이엄 박사 홍콩 대전도대회의 한국 위성중계 전도대회를 실시했는데, 그 장소는 부산 수영로교회(정필도 목사), 대구 서문교회(이성헌 목사), 대전중앙교회(신성종 목사) 등의 예장 합동측 교회들을 포함했다. 한국의 대표적 보수 교단인 예장 합동측 교회들에 신복음주의에 대한 분별력이 없다.

1991년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제2회 정기총회는 감리교회 기감측과 장로교회 기장측의 가입 문제가 일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거듭 밝혔다. 또, 1994년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3.1절 기념예배 설교자는 기장측 자유주의자 강원용 목사이었고, 3월 8일 임원취임예배 설교자는 기장측 원로목사인 조향록 목사이었다. 4월 9일 남북교회 협력을 위한 세미나 강사에도 강원용 목사가 포함되었다. 오늘날, NCC와 한기총은 더욱 더 가까워졌다.

마침내, 2002년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교단장 협의회가 각 교단에게 제안했던 '한국교회의 통일된 연합체 구성 추진' 헌의안이 23개 회원교단 중 15개 교단의 총회에서 통과되었다. 통과 시킨 총회는 예장 합동, 예장 통합, 기장, 예장 고신, 예장 개혁(광주), 예장 개혁(국제), 예장 대신, 예장 합신, 예장 합동정통, 기성, 예성, 기침, 기하성, 그리스도의 교회 한국교역자회, 하나님의 교회 등이다. 나머지 8개 교단 중, 구세군, 예수교 복음교회,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협의회, 나세렛 성결교회는 임원회 등에서 결의되어 총회 인준만 남겨두고 있고, 기감, 기독교 대한복음교회, 기독교 한국루터회, 예장 순장은 불명확하나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라고 한다.27)

이상의 예들은 한국의 보수 교회들이 얼마나 영적 분별력이 없이, 신복음주의적으로 행동하고 있는가를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3. 근본주의의 대책

자유주의와 신복음주의와의 갈등에서 근본주의가 가진 대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주의와 신복음주의로부터의 성별 혹은 분리(分離, separation)이었다. 우리는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어야 할 때가 있고 그 교제를 끊어야 할 때가 있다고 본다.

 

 (1) 자유주의로부터의 분리

첫째로, 근본주의는 자유주의로부터 분리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그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주장이다. 성경은 분명히 불신앙으로부터 분리할 것을 말씀했다. 고린도후서 6:14-18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 .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세상과 교회,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 사이에는 명확한 선이 있다. 교회는 성도들의 교제이다. 그러므로 교회적 교제, 영적 교제에는 분명한 한계선이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나아오도록 초청되고 있지만, 아무든지 교회적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성경은 우리에게 이단자들로부터 분리하라고 교훈했다. 로마서 16:17, 18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너희가 배운 교리 혹은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디도서 3:10은,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고 말씀했다.  

요한이서 7-11은 이렇게 말한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 . .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유다서 3-4은,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고 말씀했다.

이단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단과의 분리는 꼭 필요하다. 이단은 저주 받을 일이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또한 이단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다: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딤후 2:17, 18). 또한 이단은 멸망케 할 이단이다: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

이단의 부류에 속하는 자들은 천주교인들을 비롯하여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안식교, 크리스챤 사이언스, 통일교 등 이단 종파에 속한 자들 뿐만 아니라, 특별히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가진 자들이다.

20세기 초, 교회의 배교에 대항하여 싸웠던 메이천은 자유주의자들과의 분리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가지 사실이 완전히 명백하다. 즉 자유주의자들이 기독교인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자유주의가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은 여하튼 완전히 분명한 것이다. 또한, 그것이 그러하다면, 자유주의와 기독교가 계속 동일한 조직체 안에서 전파된다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회 안에 있는 그 두 부류들의 분리는 이 시대의 절실한 요구이다.28)

또한 그는 배교된 교회로부터의 분리의 정당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자유주의파가 실제로 교회의 기관들을 완전히 장악한다면,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은 그 교회의 활동을 계속 후원할 수 없을 것이다. . . . 만일 자유주의파가 실제로 교회를 장악한다면,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물러설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29) 덧붙여, 그는 신복음주의적 타협의 죄에 대해 말하기를, "오늘날 가장 나쁜 죄는 당신이 기독교 신앙을 동의하고 성경을 믿는다고 말한 다음, 기독교의 기본적인 사실들을 부인하는 자들과 협력하고 타협하는 것이다"30)라고 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교회들은 건전하지 않다. 그 교회들은 배교적이거나 적어도 타협적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적 교회들을 포용하는 연합 전도활동들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다. 비록 그러한 활동들이 겉보기에 결실이 있는 것 같을지라도, 성경이 그러한 잘못된 교제와 연합을 금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반대해야 한다. 교회의 일차적 의무는 외적 번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성실한 순종이다. 기독교는 물량주의나 숫자주의나 실용주의(實用主義)가 아니고 하나님 중심의 진리주의이다.

오늘날 기독교계는 대 교단들이 자유주의화 된 상황이므로 그들 중심으로 형성된 세계교회협의회(WCC)나 각 나라 안의 교회협의회(NCC)는 명백히 불건전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연합활동들을 반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유 보수를 망라한 초교파적 연합 집회들, 부활절 연합예배, 연합 성찬식, 성서공회, 찬송가 공회, 방송국 등의 연합활동들은 옳지 못하다. 보수교회들 간의 초교파적 연합 활동들은 가능하고 필요하지만, 보수적 교회와 자유적 교회 간의 연합활동은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두움의 일에 참여치 말라"(엡 5:11)고 말했고 "거기서 나와서 따로 있으라"고 말했다(고후 6:17; 계 18:4).

 

 (2) 신복음주의로부터의 분리

근본주의는 또한 신복음주의로부터의 분리도 불가피하다고 판단하였다. 자유주의자들을 고의적으로 포용하고 협력하는 저 타협자들을 계속 용납할 것인가? 그들에게도 어떤 징계와 교제의 단절이 필요하지 않은가? 근본주의자들은 그렇다고 확신하였다. 이것은 옛날 영국에서 청교도 운동이 일어났을 때 비국교도들 혹은 분리주의적 청교도들의 신념과 비슷하였다.

근본주의자들은 신복음주의로부터의 분리의 성경적 근거를 데살로니가후서 3:6, 14-15에서 찾는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무질서하게]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 . .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이단을 배격하라는 사도적 명령을 고의적으로 거역하고 자유주의 이단자들을 포용하고 그들과 교제하는 신복음주의자들은 교회의 질서를 깨뜨리는 고의적 불순종자들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들이 이단이 아니고 참된 성도요 형제들일지라도, 교회는 그들의 불순종과 타협적 태도를 묵인하거나 용납하지 말고 그것을 책망해야 하고, 성경의 교훈대로 그들과의 교제도 단절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교리적 이단이든, 윤리적 죄악이든 간에, 오류와 악은 누룩처럼 교회 안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악의 제거, 악으로부터의 단절이 필요하다. 고린도전서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갈라디아서 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디모데후서 2:17,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비록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한 화해자이시지만, 비록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우리의 진정한 형제이겠지만, 비록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우리와 함께 천국에 들어갈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회개치 않는 악에 대한 적절한 권징은 성경에 밝히 계시된 하나님의 명령이다. 정당한 권징은 성경적 교회가 마땅히 성실히 실행해야 할 의무이다. 성경은 잘못된 자들과 "사귀지 말고 함께 먹지 말고 내어쫓으라"(고전 5:13)고 말했고, 또 그들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라"고 명령했다(살후 3:16).

그러나, 교회적 교제의 단절이든지, 개인적 교제의 조심이든지 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덕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 교제의 단절은 먼저 성실한 노력을 전제해야 한다. 잘못의 교정을 위해 개인적인 권면이나 교회적인 합법적인 노력을 먼저 성실히 행해야 한다. 불가피한 분리의 때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성급한 분리는 교회의 개혁이나 갱신에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다. 더욱이, 신자 개인의 경우에는 교회적 대책이 있어야 한다. 즉 분리해야 할 교회에 상응하는 건전한 보수적 교회가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항상 겸손과 사랑을 잃지 말아야 한다. 미움이나 영적 교만은 그 어떤 죄와 오류 못지 않게 큰 죄악이다. 우리의 우리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뿐이다. 내가 남보다 좀더 영적 분별력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참신자는 어느 때든지 결코 교만할 수 없다. 갈라디아서 6:1,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으라." 디모데후서 2:25, 26,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하라." 데살로니가후서 3:15, "[고의적인 불순종자의 경우] 그들을 원수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

 

 4. 근본주의의 초교파적 성격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여 말한다면, 우리는 근본주의가 초교파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우리는 개혁주의자이지 근본주의자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개혁주의라는 말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개혁주의라는 이름 아래 신복음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혁주의라는 말 이상의 어떤 용어를 필요로 한다. '근본주의'라는 말은 바로 이런 필요를 위해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자유주의적 배교와 신복음주의적 타협을 반대하고 순수하게 성경적 좁은 길을 추구하는 입장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그러므로 근본주의는 간단히 정의하자면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와 신복음주의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는 입장이다. 자유주의는 명백히 이단 사상이다. 그런데 이 이단적 사상이 현대 기독교회들 속에 널리 퍼져 있다. 유럽 교회의 영적 상태는 매우 어둡고 배교적이라고 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북침례교회(ABC), 남침례교회(SBC), 연합 감리교회(UMC), 합중국 장로교회(PCUSA),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등 역사적 대 교단들은 대체로 자유주의적이다. 한국 교회의 경우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는 처음부터 자유주의적이었고,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은 상당히 자유주의적이며, 대한기독교감리회(기감측)는 예전부터 자유주의적이었고, 대한기독교성결교회(기성측)와 대한기독교침례회(기침측)도 상당히 자유주의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평가는 위의 교단에 속한 모든 목사들과 성도들이 다 자유주의자들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 가운데 순진한 많은 목사들과 성도들이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 교회들의 교역자 양성원인 신학교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고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보수하는 입장이 아니다. 또한 그들 교회들 안의 다수의 목사들은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를 지키고 그 신앙을 위해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버렸고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였거나 그것을 포용하는 넓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명백히 이단이기 때문에, 성경적 기독교회들은 자유주의 이단을 배격하고 자유주의자들을 교회에서 출교시켜야 마땅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는 근본주의는 성경적으로 바르고 정당한 입장인 것이다. 개혁교회도 역사적으로 권징의 성실한 시행을 참교회의 표지로 간주했기 때문에, 근본주의는 이런 점에서 개혁교회의 입장에서도 역사적 지원도 가진다.

미국의 보수적 구약학자이었던 에드워드 영은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에 대하여, 신복음주의는 전도와 학문과 교육을 강조한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것[신복음주의]은 매우 중요한 교회의 교리와 신앙을 위한 활기찬 투쟁의 필요성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강조한다. . . . 그러면 신복음주의가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해답인가? 우리는 아니라고, 강조해서 아니라고 대답한다. 여기에 한 일시적 현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빨리 지나갈수록 교회를 위해 더 유익하다. . . . 근본주의 안에는 훌륭한 많은 점들이 있고, 만일 우리가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를 당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주저도 없이 근본주의를 택해야 할 것이다. 근본주의는 신앙의 변호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관심은 참으로 성경적이다. . . . 그것[근본주의]은 실수들을 범했으나, 외쳐야 할 적절한 때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저 조심성 있는 중도파들이 범한 것과 같은 그렇게 큰 실수는 아니었다.31)

신복음주의로부터의 분리는 물론 현실적으로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많은 진실한 사람들이 혹은 무지해서 혹은 연약해서 성경의 교훈을 성심으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고 그런 사상을 가진 자들과의 교제를 정당하게 여기는 것은 분명히 자유주의 이단에 대한 타협이며 이단을 배격하라는 주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다. 성경의 교훈을 고의적으로 불순종함으로써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형제들에 대해서 교제를 단절하라고 성경이 가르치기 때문에(살후 3:6, 14), 근본주의가 신복음주의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바르고 정당한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믿는 이들은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에 대한 바른 지식과 확신 뿐만 아니라, 이 배교적 시대에 대한 바른 분별력과 그 배교를 대적하는 바른 입장을 가져야 한다. 오늘 시대에는 바른 분별력과 바른 입장을 가진 목사들과 교회들과 단체들이 필요하다. 특히, 목사들을 양성하는 신학교들은 바른 분별력과 입장을 가지고 목사 후보생들을 성실히 훈련시켜야 할 것이다. 진실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바른 분별력과 입장을 가진 교회를 선택하고 거기에 소속해야 할 것이다.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신앙은 '개혁신학'에서 잘 표현되어 있고 오늘날의 배교와 혼란에 대한 바른 분별력과 입장은 소위 '근본주의'에서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근본주의적 개혁신학의 부흥을 갈망한다. 그것은 자유주의적 배교와 신복음주의적 타협을 바로 인식하고 버릴 때에만 가능한 부흥이다. 성경적으로 올바른 근본주의적 장로교회들의 설립과 초교파적 교제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절실한 과제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미주

1) Karl Barth, 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p. 65.

2) C. H. Dodd, The Authority of the Bible, pp. 14, 289.

3) The Epistle of Paul to the Romans, p. 24.

4)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II, 77.

5) Reinhold Niebuhr, Beyond Tragedy, p. 13.

6) Tillich, II, 94.

7) The Romans, p. 55.

8) Niebuhr, pp. 17, 18.

9) Church Dogmatics, IV. i. 335, 336.

10) Jesus--God and Man, p. 89.

11) 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p. 90.

12) Niebuhr, p. 21.

13) A Brief History of the Bible Presbytertian Church and Its Agencies, ed. Margaret G. Harden, p. 15.

14) George M. Marsden, "Fundamentalism," Eerdmans's Hand- book to Christianity in America, p. 384.

15) 박형룡, "근본주의," 신학지남, 25권 1호 (1960), 16쪽.

16) Independent Fundamental Churches of America.

17) General Association of Regular Baptist Churches.

18) Presbyterian Church of America.

19) Orthodox Presbyterian Church.

20) Bible Presbyterian Church.

21) New Evangelicalism.

22)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 NAE.

23) World Evangelical Fellowship.

24) William Ashbrook, Evangelicalism: The New Neutralism, p. 9; Charles Woodbridge, The New Evangelicalism, pp. 34-39.

25) Calvary Contender, December 1, 1993.

26) 박형룡, 신복음주의 비평.

27) "'단일 연합체' 구성--각 교단 총회 통과," 기독신문, 2002년 10월 2일, 1쪽; "15개 교단 통과 '한걸음 성큼,' 기독교연합신문, 2002년 10월 6일, 9쪽.

28) J. Gresham Machen, Christianity and Liberalism, p. 160.

29) Ibid., p. 166.

30) William E. Ashbrook, Evangelicalism: The New Neutralism, p. 45.

31) Edward J. Young, "Where Are We Going?" The Presbyterian Guardian, 10 April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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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우한 폐렴의 창궐에 대한 소고 남은자 2020.03.30 278
59 목사님. 자유주의 를 표방한 교회와 교인이 있을수 있는지요. [6] 요한 2019.12.31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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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中, 심해지는 교회 탄압…"헌금ㆍ기부금, 국가에 반납해야" 관리자 2016.07.11 800
47 한편에선 십자가 철거, 다른쪽선 기독교 ‘중국화’ 관리자 2016.07.11 717
46 '왕의 재정학교'의 문제에 대하여 oldfaith 2016.01.07 1659
45 이택환, "왕의 재정학교 강의에 대한 문제의식" oldfaith 2016.01.06 1988
44 익명의 여성도, '왕의 재정학교(김미진 간사)'의 성경적 오류에 대해 [1] oldfaith 2016.01.06 4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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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소개해주세요! [1] 최명곤 2015.11.29 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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