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기자회견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최근의 여러 정치 상황에 크게 고무됐는지 자신감이 생긴 것까지는 좋은데 너무 나가는 것 같았다. 후년 대통령 후보는 물론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후보도 ‘충분히 당내에서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이 이름과 간판만 바꿨을 뿐인데 갑자기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생긴 것인가?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의 좌파 정책이 독재로 흐르면서 국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는 것이 어디 야당의 힘으로 된 일인가?


김 위원장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국민의당 안철수씨와의 야권 단일화 질문에 ‘내 기자회견에 왜 안철수씨를 꺼내느냐’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대선은 물론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좌파 독재를 타도하거나 종식시키는 것이 오늘날 한국 야당의 절체절명의 과제다. ‘국민의힘’이 자력으로 이기면 좋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단일화로 세를 모으는 것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당연히 세 규합의 문(門)을 열어두는 것이 현명할진대 ‘우리 혼자 할 수 있다’거나 ‘생각 있으면 우리 당으로 들어오라’고 대꾸하는 것은 기대 밖이었다.


착각은 자유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지각 변동은 ‘국민의힘’이 잘해서 또는 비상지도부가 잘나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야당의 수치가 약간 올라간 것은 상대적인 것일 뿐, 국민의 마음이 야당으로 돌아섰음을 의미하는 어떤 징후도 발견한 것이 없다. 국민이 ‘국민의힘’을 밀어주며 옹호해 준다면 그것은 ‘국민의힘’과 지도부가 미덥고 좋아서가 아니라 국민의 열망과 역량을 담아낼 도구(道具)로서의 존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금 당내에 그의 리더십에 이의를 제기할 수준의 인물이 없음을 만끽하고 있다. 불만이 있어도 입 다물고 있는 분위기다. 그는 당분간 새로운 인물들이 당에 들어오거나 당내에서 지도자급 인사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이 김 위원장 자신을 포함, 어떤 특정 인물에게 길을 터주는 통로로 활용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을 조금씩 좌(左) 클릭해왔다. 스스로 “보수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기본소득 도입, 재정 역할 확대, 사회 안전망을 통한 시장경제 보완, 재난지원금 찬성, ‘약자와의 동행’ 등을 제기해왔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김 위원장의 원맨쇼에 가깝다는 점이다. 내부 논의도 없고 어떤 진통도 없었다. 당 노선의 변화를 총의로 천명한 것도 없다. 김 위원장이 광주에 가서 무릎 꿇은 장면을 연출했을 때 그것이 야당의 진정한 변화로 보이려면 당 중진과 소속 의원들을 대동해야 했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김 위원장이 내놓은 좌 클릭 정책은 “자신이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의식의 흐름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진단하면서 그의 이런 엘리트주의적인 접근으로는 성공한 사례가 없다고 했다.


보수가 좌 클릭한다고 해서 좌파를 이길 수 없다. 좌파 정치나 진보 정책은 좌파가 더 잘 알고 더 잘하기 때문에 보수가 몇 가지 비슷하게 좌파 흉내 낸다고 해서 좌파를 이길 수 없다. 오히려 좌파를 이념적으로 도와줄 뿐이다. 국민적 선택과 시대적 흐름이 좌 성향일 때가 있고 그 흐름이 보수·우파로 이동할 때도 있다. 그것이 세계 정치 순환의 역사고 인류사의 흐름이다. 좌파는 보수가 득세했을 때 우(右) 클릭한 적이 없다. 좌는 좌에 충실했다. 그런데 좌파가 득세하고 있는 지금 보수·우파 정당은 ‘중도 포용’ 운운하며 좌파 흉내를 내고 있다. 그것이 보수당의 약점이자 한계인지도 모른다. 국민의 의식이 집단보다 개인의 안녕과 행복에 중점을 두는 시대적 상황이라고 해서 보수의 가치를 접는 것이라면 그런 보수는 존재 가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정권은 지금 빠른 속도로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분열주의에 빠진 문 대통령은 대통령은 물론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른바 ‘문빠’들을 제외하고는 그의 언행에서 대통령으로서의 신뢰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의 불필요한 자만이나 과도한 자기과시는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