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대한민국 보수]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 값
2022.06.30 11:36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 값
한 나라 국민의 목숨 값은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국가가 구하러 올 것이란 믿음의 크기에 비례한다...
자국민이 죽어가도 방치하는 나라의 국민 값은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박정훈,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 값,' 조선일보, 2022. 6. 24, A30쪽.]
사람에게 가격을 매긴다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국민의 값’이란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다. 세계 최빈국의 헐벗은 사람들이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나라마다 목숨의 가치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조금만 인용해본다.
‘인류는 평등하다는 말은 허망한 거짓말이다. 아이티 지진으로 죽은 16만명 대부분은 그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개죽음을 당했다. 건물 더미에 깔려 대책 없이 죽어가는 그들에게 아이티라는 국가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중략) 태어난 나라가 어디냐에 따라 사람의 값어치도 달라진다. 아이티의 국민 값은 선진국의 애완견만도 못하다 해도 틀리지 않다.’
오래전 글을 떠올린 것은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 사건 때문이다. 월북이냐, 아니냐로 시끄럽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북한 해역에 떠내려간 우리 국민이 살해당하는데 지켜줘야 할 정부는 방관하고 있었다. 문재인 청와대는 실종된 이씨가 북 경비선에 발견됐다는 군 보고를 받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보고 3시간 뒤 이씨는 사살됐고 시신은 불태워졌다. 당시 문 대통령은 자고 있었다고 한다. 죽음 앞에 선 이씨에게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핵심은 ‘국가의 부재(不在)’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사실이 고맙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을 가장 절실하게 느꼈을 사람이 석해균 선장일 것이다. 2011년 해군의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구출된, 그 기적 같은 드라마의 주인공 말이다. 당시 청해부대 작전팀장으로 현장을 지휘했던 김규환 대위는 피가 말리는 결단의 순간이 있었다고 술회한다. 해적에 나포된 화물선을 급습해 조타실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곳에서 석 선장이 총알 6발을 맞고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해적 잔당이 배 어딘가에 숨어있을지 모를 상황에서 석 선장을 응급 이송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었다. 선(先)구조냐, 작전 계속이냐. 그 어려운 갈림길에서 김 대위는 선장부터 살린다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아주대 이국종 교수팀이 현지에 급파된다. 사경을 헤매는 석 선장을 국내로 데려와야 했지만 의료 장비를 갖춘 에어 앰뷸런스를 빌리는 데 4억원이 필요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이 교수는 “내가 돈을 내겠다”며 사인을 했다. 그렇게 어렵게 국내 이송된 석 선장은 수차례의 대수술 끝에 살아날 수 있었다. 닷새 만에 눈을 뜬 석 선장은 병실에 ‘이곳은 대한민국입니다’란 현수막이 걸린 것을 보고 “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국민이 위험에 처해 있다면 어떤 비용, 어떤 대가를 치르고도 살려내는 것, 이것이 바로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대접하는 방식일 것이다. 민주당 구(舊)권력 측이 그토록 미워하는 이명박 정부 때 있었던 일이다.
한 나라 국민의 목숨 값은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국가가 반드시 구하러 올 것이란 믿음의 크기에 비례한다. 그런 면에서 미국은 전 세계에서 국민 값이 가장 비싼 나라다. 단 한 명의 자국민을 구하려 외교·군사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살아서는 물론, 죽은 뒤에도 절대 잊지 않고 유골이라도 수습해 데려온다. 미국은 6·25전쟁 후 40년이 지난 1993년에 2800만달러를 지불하고 북한 땅에서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을 벌였다. 2018년 트럼프가 김정은을 싱가포르에서 만났을 때도 유해 송환 항목을 합의문에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가.
6·25전쟁 당시 8만명 내외의 국군 포로가 북한에 억류돼 귀환하지 못했다. 정전협정 후에도 이런저런 사건으로 북한에 피랍돼 못 돌아온 우리 국민이 516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의 송환 문제가 대북 협상에서 우선순위에 올랐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세월이 흘러 백발이 성성해진 국군 포로가 자력 탈북한 사례가 80명 있을 뿐이다. 일본은 달랐다. 2002년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총리는 김정일과 벼랑 끝 담판을 벌인 끝에 북한이 과거 일본인을 납치한 사실이 있음을 시인받았다. 그리고 그때까지 생존해있던 5명을 일본으로 데려왔다. 왜 우리가 일본 국민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자국민이 지옥에 있는데 구출해내겠다는 국가 의지가 없는 나라를 나라라고 할 수 있나.
민주당 구권력은 이대준씨의 죽음을 방치한 것으로도 모자라 진실까지 덮으려 하고 있다. 이씨 사건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그들이 세월호 사건은 세금을 572억원 쓰며 9번이나 조사하고 또 조사했다. 세월호 희생자를 그토록 애도하던 이들이 천안함 장병들에 대해선 “경계 실패”로 매도하기까지 했다. 같은 국민의 목숨마저 이념으로 차등 두는 그 냉혹함이 섬찟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