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北) 김정은의 선의(善意)
2017.05.24 20:24
[이하원, "북 김정은의 선의," 조선일보, 2017. 5. 24, A35쪽.]
올 초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크게 논란이 된 것은 안희정 충남지사의 '선의(善意)' 발언이었다. 안 지사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선한 의지로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다"고 발언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문재인 캠프는 그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문 대통령도 당시 "안 지사의 말에 분노가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이·박 두 전직 대통령에게 선의 표현을 쓰는 것 자체에 동의하지 않은 것이다. 이 사건은 안 지사의 욱일승천하던 기세가 꺾이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북한 김정은이 두 전직 대통령과는 달리 선의를 갖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대해선 각각 양상군자(梁上君子), 후안무치(厚顔無恥)로 강하게 비판하며 불신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선 기간 중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김정은과 대화할 가능성은 열어 두고 있다. 그제 신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 이후 시행 중인 5·24 제재 해제를 언급했다. 민간 교류 허용,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도 문 대통령과 논의하겠다고도 했다. 눈치 빠른 통일부 당국자들도 민간 교류를 본격적으로 재개하는 방안 검토에 착수했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객 사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목함 지뢰 도발, DMZ 총격 사건에 대해서 사과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없다. 오히려 지난해 두 차례 핵실험, 올해 8차례 탄도미사일 발사로 도발 수위를 지속적으로 상승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가 취하려는 '달빛 정책'은 북의 김정은이 선의를 갖고 있다는 전제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가슴을 열고 다가서면 이에 화답할 것이라는 '햇볕 정책'을 그대로 닮았다. 그러나 형과 고모부를 화학무기와 고사포를 동원해 살해하는 그에게 선의를 기대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23/20170523035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