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이인호 교수의 '기개'를 본 건 문창극 총리 후보의 자질 시비가 벌어진 2014년이다. "일본의 식민 지배가 하나님 뜻"이었다고 한 교회 강연 영상이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다. TV조선 시사토론에 나온 이 교수는 "강연 전체를 보고도 문 후보를 반(反)민족주의자라 욕하는 자들은 제정신이 아니다"고 일갈해 비난 일색이던 여론의 물줄기를 바꿨다. KBS 이사장으로 국정감사에 나왔을 때도 꼿꼿했다. 역사관이 편협하다 질타하는 의원들을 향해 "나는 태극기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역사관을 갖고 있다"고 맞섰다.
이 교수를 오랜만에 본 건 지난 3·1절 오후다. 정권이 바뀌고 KBS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KBS가 노조의 권력 놀이터가 될 것"이라 일침을 놓은 뒤 칩거에 들어갔었다. 찻잔을 매만지던 노(老)학자가 깊은 한숨 끝에 내놓은 탄식이 서늘했다.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나는 죽어 마땅하다. 나라가 이 지경 되는 걸 막지 못한 죄, 국민의 역사 인식이 잘못돼 가는 걸 막지 못한 죄, 지식인들이 앞장서 나라 파괴하는 걸 막지 못한 죄…. 배웠다는 사람들, 머리로만 살아온 자들이 우리 앞 세대가 온몸으로 피땀 흘려 일군 나라를 망치고 있다."
서울대 교수로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핀란드·러시아 대사를 지낸 그가 개탄한 "망국의 근원"은 역사 왜곡이다. 이승만 대통령을 '하와이 깡패', 박정희 대통령을 '스네이크 박'이라 조롱한 다큐 '백년전쟁' 파동 이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시도가 지금도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백년전쟁' 제작에 일조한 학자가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수장(首長)이고, 요즘 이곳에선 남로당 무장 봉기가 촉발한 제주 4·3사건을 최초의 통일 운동이었다고 주장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현대사에 대한 악마적 편집은 천안함부터 세월호까지 온갖 종류의 음모론을 창궐시켰다. 인터넷으로 떠돌던 루머들을 모아 영화로 만들고, 이젠 지상파 TV들까지 '합리적 의심' 운운하며 앞다퉈 음모론에 뛰어든다. 클릭 몇 번으로 여론을 조작한 드루킹과 그를 선거에 이용한 세력은,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고 한 나치 선동가 요제프 괴벨스를 빼닮았다.
이인호 교수는 대한민국이 선동가들 세상이 된 건 역사에 대한 무지(無知)와 반역 탓이라고 했다. "밤낮 데모만 하고 역사 공부를 제대로 안 한 것이 이 나라 위기의 근본이다. 스탈린 사망 후 소련에서조차 폐기 처분된 책들을 읽고 신봉해온 사람들이 현실 권력이 되었으니 암담하지 않은가."
초등 5학년 아들을 둔 후배는 6·25 남침, 김일성 세습 독재가 빠진 새 역사 교과서 시안을 본 뒤 "한국사는 내가 직접 가르칠 것"이라고 했다. 촛불집회가 민주주의 대표 사례로 초등 교과서에 실린다는 뉴스엔 실소(失笑)를 터뜨렸다. "그럼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우리 어머니·아버지들은 반민주 세력인가요?"
산천에 꽃물 들고, 38선엔 봄이 한창이라는데 남녘은 왜 여전히 칼바람이 불까. 남북 분계선을 넘는 건 이리도 쉬운데 우리 안의 증오를 넘는 건 왜 어려운가. 대한민국 70년 역사를 폄훼하고 깎아내리는 것이 통일로 가는 길인가. 통 큰 화해의 악수는 오로지 북녘을 위한 것인가. 훗날 역사에서 칭송받아 마땅할 자, 죽어 마땅할 자는 누구인가.
이인호 교수는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다. "온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대한민국이 정치적 자살을 하는 역사적 '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