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자유주의 를 표방한 교회와 교인이 있을수 있는지요.
2019.12.31 17:20
목사님, 저는 직분자도 아니고, 이름없는 자인데요.
유투브를 보고, 또 PDF의 글을 보다가 궁금증이 생겨서..이렇게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시는 글에서, 통합, 합동, 기장, 대신 등의 교단들에 문제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자유주의를 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 자유주의란 (저는 다 알지는 못하지만, 쓰신 몇가지만 생각해볼때)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고, 처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부인하고,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고, 재림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또는 그 말씀들을 신화나 하나의 지어낸 이야기 정도로 밖에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쓰신 내용처럼, 자유주의를 포용한다는 교단들의 목사님이나 성도들이,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거나, 변질시켰다면, 목사님의 판단 곧 이단이라는 정죄에 저도 동의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그런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부분을..고민하다가 ..실제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장로회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새문안교회, 영락교회, 그리고 제가 아는 통합측의 작은 교회들까지 여러군데 전화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어떤곳은 교육목사님이 받으셨고, 어떤 곳은 시무하시는 성도님이 받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물어본 것은, 위에 쓴 자유주의 신학(내용 몇가지)에 대해서 천천히 분명하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들은 답은, 그들 모두 말씀대로 바르게 믿고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들도 말씀을 부인하는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틀렸다는 표현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님의 그 이단 판단의 근거가 부정확하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목사님께서는 이단 판단에 걸리는 곧 위의 말씀들을 부인하는 교회 목사님이나 교인을(통합, 합동, 기장, 기감, 대신 등 명백한 이단 제외) 찾아보셨는지요. 아니면 제가 확인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을까요.
댓글 6
-
oldfaith
2020.01.01 11:14
-
요한
2020.01.01 18:01
요즘 교회내에 많은 분리와 다툼의 원인은 성경진리 보다, 돈과 권력인 것 같습니다. 재정문제, 세습문제입니다. 그리고 언제 뉴스에서 봤는데, 김진홍목사님의 교회가 후임목사님의 기독론에 문제가 있어서 교인들이 나뉘었다는 기사도 보았습니다. 이문제는 그 교회가 분리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그 설교를 도저히 들을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교회가 큰 분란을 겪은 발단은, 신학문제, 돈문제, 학위 문제도 있었지만, 결국 담임목사님의 장로님을 대하시는 태도에서 발단했습니다. 왜냐하면, 담임목사님의 잘못을 지적하시는 장로님에게 교만한 태도로 맞섰기 때문입니다. 그 장로님과 일부 교인들은 더이상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 현장은 이런곳입니다. 따라서 강단에서 말씀을 부인하고 변질한다면, 그분은 아마도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또 무엇을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한국교회 강단에서는(이단은 제외하고) 그 설교자가 정통주의자든지, 자유주의자든지, 신정통주의자든지를 물론하고(교인들은 잘 모릅니다.),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부정하거나 변질시키는 발언을 한다면, 교인들은 분별하게 될 것이고 가만히 듣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교인들의 이런 반응은 어느 교단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교회 현장은 여러종류의 전쟁터입니다. 현장에서 그런소리를 하면, 아마도 설교자로서의 직책은 끝난다고 봅니다. 이것이 저뿐만아니라, 현장에서 말씀을 듣는 교인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각교단과 연합회의 높은 분들이 일을 너무 잘하셔서^^, 교인들이 오히려 전문가, 감별사들이 다 되어 교회를 지키는 상황인 것같습니다.
목사님, 교회 안에는 불신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교인 한분이 오랜기도로 남편을, 자녀를 또는 친척을 전도해 오기 때문입니다. 또는 교인이란 사람이 좋아서 따라오는 이웃들도 있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믿음이 없이 교회를 나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믿습니다 하고 교회를 나옵니다. 저는 한 여전도자의 염려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가족들을 다 전도해서 교회는 잘 다니는데, 복음으로 대화해보면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교회만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합니다. 제가 한가지 걱정되는 점은, 이런 형편의 교회에서, 설교자가 자유주의자, 신정통주의자는 이단이다 하면서 설교한다면, 그 믿음없는 분들이 들어보고는 자신들을 이단과 동일시 하거나, 상처받아서 교회를 멀리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목사님은 역사와 교리를 잘아시는 학자적인 입장에서 말씀하시고, 저는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것으로 말을 해서, 대화를 하면 제가 잘 못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론이나 역사는 잘 모르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여러 이론들을 교회 현장에서 사용함으로써 진리를 드러내고자 한다면, 매우 조심히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교회 안에는 믿음이 불확실한, 감기걸린 교인들도 재법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알곡을 생각하셔서, 가라지를 뽑아라 하지 않으시고 그냥 두어라 하셨던 것처럼, 목사님들이 예수님의 큰 사랑으로 말씀을 전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을 직접 만나서 대화해 보십시오. 그리고 할말을 하십시오. 그 사람에게 직접.
그 후에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 실은 제가 이런 방법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위험한 소문, 사람잡는 소문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기장 학교나 교회 사역자에게 제가 전화로 물었습니다. 당신들의 학교나 교회가 자유주의 학교, 자유주의 교회로 불린다. 동의하느냐 그랬더니 아니랍니다. 역사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리고 자유주의 요소가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님의 성육신사건, 처녀마리아의 성령잉태사건, 십자가사건, 부활, 재림 사건등은 부인하거나 변질 시킬 수 있는 부분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믿음을 확실하게 고백하는 이들에게, 위의 말씀을 모두 부인하는 자유주의자와 똑같이 정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 또 궁금한 것이 있으면 글을 올리겠습니다. 혹시 저의 글이 너무 도전적이거나 보기 불편하시면 삭제하셔도 됩니다.
글에 논리가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oldfaith
2020.01.01 20:46
한두 마디만 분명히 하기를 원합니다.
묻는 말에 답변하신 기장측의 분이 혹 성경의 기본교리를 믿는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가 그 교단를 대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또 그가 자유주의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은 그 교단 안에 그런 이단자들이 있다는 뜻인데, 그 교단이 그런 것을 포용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러나 기장측은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목사들이 대다수일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들은 교회에서 교리를 부정하는 설교를 안할 것입니다. 자유주의는 교리를 본질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주로 윤리적 설교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기장, 기감은 그런 정도가 심하고, 통합측이라 하더라도 그 교단이 바르다면 장로회신학대학의 김명용 교수(조직신학 교수) 같은 분을 권징하고 제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단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입니다.
물론, 일반 신자들 중에 믿음 없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그런 현상은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바른 신앙고백에 근거합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교회에서 바른 교훈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바른 교리 설교는 기회 있는 대로 해야 하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 없는 자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교리를 잘 몰라서 믿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냥 두지만, 그들을 교회의 참된 교인으로 여겨서는 안 되고, 또 그들 때문에 옳은 교리와 이단에 대해 말하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성경이 이단에 대해 지적하고 경계할 것을 교훈하지 않습니까?(롬 16:17-18; 고후 11장; 딛 3:10; 벧후 2:1-3; 요일 4:1-6; 요이 7-11 등).
저는 성경의 교리를 믿는 자들을 말씀을 모두 부인하는 자유주의와 똑같이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 교단과 신학교가 자유주의를 용납하기 때문에 그 교단이 자유주의적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 교단의 목사들 전체나 교인들 전체가 자유주의 이단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교단이 문제가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문제를 덮어두는 것은 잘못이라고 봅니다.
-
요한
2020.01.02 20:25
목사님과 이렇게 간단한 글로라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유투브에 있는 목사님의 설교도 잘 들었습니다.
성경과 교리를 지키려고 노력하시는 점은, 많은 교회들이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교단에서 권징과 제명이 필요하다고 했던, 그 김명용교수님이라는 분을 찾아보았습니다. 장신대 홈페이지에서 찾아보았는데, 은퇴하셨는지 안계십니다. 그래서 한 과목을 담당하시는 주임교수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물어보았습니다. 김명용교수님이 이단입니까? 아니랍니다. 그래서 또 그 설명을 했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의 성육신, 처녀마리아 성령잉태, 십자가 대속죽음, 부활, 재림 등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까? 그랬더니 그렇답니다. 그리고는 시원하게 한번 웃으십니다. 아마도 제가 이렇게 물어보는게, 그분 입장에서는 재미있으셨나봅니다. 그리고 추가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똑같이 옮기진 못했지만..대략) 장신교단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라는 선상의 스펙트럼에서 중도를 택하고 있으며, 김명용교수님은 칼바르트 전공자입니다. 자유주의에게는 보수주의라는 비판을 받았고, 보수주의에게는 자유주의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그리고 주임교수님의 개인적인 견해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장신교단과 김명용교수님은 자유주의자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중도에 있기 때문에 그런 비판은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이단(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하나님의 교회, 신천지 같은)은 아닙니다. 그리고 비판하시는 분이 더 극보수일수록 그러한 비판이(이단이란 소리까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신교단은 해가 지날수록 중도에서 한쪽으로 더 치우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비판을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
저는 유투브에서 김명용교수님의 설교 두개를 들어보았습니다. 그분은 근본주의를 비판하시면서, 근본주의의 성경이해는 문자위주로써 세상에 폭력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기독론적인 해석을 해야하며, 근본주의 해석을 해선 안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김명용교수님이 이해하시는 근본주의와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근본주의가 다르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 두 분 다, 자신의 것은 기독론적이라 여기고 상대방의 것은 이단적이라고 생각하시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비록 비판받는 칼바르트신학을 전공했지만(사실 어떤 신학을 전공해도 비판받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김명용교수님을 이단이라고 정죄할 수 있을까. 당사자의 믿음 고백보다 그의 신학으로 그를 정죄해야 할까. 제가 생각하는 이단은 지옥에 갈 자들로써 분명하게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곧 신천지, 여호와의 증인, 하나님의 교회 등입니다.
조금만 보았지만, 목사님의 설교와 강의에서 제가 배울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
oldfaith
2020.01.10 17:26
바른 이해를 위해 몇 마디 첨가합니다.
김명용 교수님이 성경의 근본교리를 믿는지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가 오늘날의 개혁신학은 바르트와 브룬너와 니이버 등의 차원높은 신학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가 신정통주의가 이단적임을 알면서도 소위 신정통주의 신학이 오늘날 개혁신학이 따라야 할 차원높은 신학이라고 말했다면, 그는 그런 신학을 내심 동의하는 자일 것입니다. 만일 그가 그 신학이 이단적임을 몰랐다면, 그는 참으로 무지한 신학자일 것입니다.
칼 바르트의 이단적인 사상 몇 가지만 그의 저서들에서 인용해 봅니다.
1. 성경은 무오(無誤)하지 않다고 한다.
선지자들과 사도들 자신은 심지어 그들의 직분에 있어서도, 심지어 증인으로서의 그들의 역할에 있어서도, 심지어 그들의 증거를 기록하는 행위에 있어서도, 우리와 같이 실제, 역사적 인간이었고 그러므로 그들의 행동에 있어서 죄가 있고 그들의 말이나 기록에 있어서 잘못을 범할 수 있었고 또 실제로 범했다.11)
2.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 전반에 대해 회의적이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인물들이 후대의 신화 제작의 산물들이든지 아니든지 무슨 문제가 되는가[!].13)
구약과 신약의 성경 역사는 실상 전혀 역사가 아니고, 위에서 보면 일련의 자유로운 신적 행위들이며 아래서 보면 본질상 불가능한 어떤 것을 이루려는 일련의 결실 없는 시도들이다.14)
우리는 아담 안에 있는 전체 진리가 위치한 앞뒤 문맥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자체로는 그것이 거짓이며,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에 관계된다는 사실에서만 어떤 타당성을 가진다.16)
3. 성경의 천지 창조 기록을 사가(saga)라고 한다.
그것은 자체 안에 시간의 시작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역사적 실상은 모든 역사적 관찰과 진술을 피하며, 성경의 창조 이야기들에서 오직 순수한 사가(saga)의 형태로만 표현될 수 있다.19)
[그는 사가를 “역사의 선(先)역사적 실상에 대한 직관적, 시적 묘사”라고 설명했다.20) 그것은 신화 혹은 전설과 비슷한 개념이다.]
4. 아담의 타락을 사가(saga)라고 한다.
그 첫 번째 사람이 이런 식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이런 식으로 존재하게 된 자로서 존재했다고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사가 아니고 오직 사가(saga)일 뿐이다. . . . 그리고 타락, 즉 그 첫 사람의 타락이 발생했던 것은 바로 이런 영역에서, 다시 말해 예언적으로 증거된 말씀과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이었다.21)
그렇다면 죄가 아담을 통하여 세상에 들어옴이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적이거나 심리학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따른다. 원죄의 교리는, 서방에서 일반적으로 이해되어왔던 바와 같이, 바울에겐 ‘매력적 가설’(리츠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그의 의미에 대한 많은 역사적이며 심리학적인 왜곡들 중의 하나이었을 것이다. 아담을 통하여 세상에 들어온 죄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 나타난 의와 같이, 초시간적(timeless)이며 초월적이다.22)
5.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들을 신화라고 한다.
우리의 세계가 예수 안에서 다른 세계에 의해 접촉될 때, 그것은 역사, 시간, 혹은 사물로 직접 관찰될 수 있기를 그친다. . . . 그리스도로서, 즉 메시아로서의 예수는 역사의 종말이시다. 그리고 그는 오직 역설로서(키에르케골), 승리자로서(블룸하르트), 원시 역사로서(오베르베크)만 이해될 수 있다.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우리의 이해를 초월해 있는 지평이시다.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그 지평을, 그는 수직적으로 위로부터 가로지르신다.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오직 문제 혹은 신화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23)
6.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을 분명히 긍정하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가 젊은 부인으로 불리는가 아니면 처녀로 불리는가 하는 옛 논쟁은 그 진정한 의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25)
7.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확실성을 부정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그것은 동일한 것인데--역사적 사건이 아니다.28)
부활은 역사 안에서 일어난 한 사건(an occurrence)이다. . . . [그러나] 부활은 도무지 역사상의 사건(an event in history)이 아니다.29)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역사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증거도 없고 어떤 증거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명백하다.30)
실제로 성경 역사에 결정적 요소들인 창조 이야기와 및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공통적으로, [예수의] 부활의 역사는--현대 학자들의 사고형식들과 용어로--사가(saga) 혹은 전설로 간주되고 묘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대항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확실히 현대적 의미에서 역사로 생각될 수 있지만 부활은 그렇지 않다.31)
8.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그것은 동일한 것인데--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은 한 사건 즉 비록 그것이 역사 안에서의(in) 유일한 실제적 사건이지만 역사의(of) 한 실제적 사건이 아닌 사건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역사가들은--물론 그것이 그들의 확신을 파괴하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재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32)
9. 보편 구원론적 경향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버림을 당하거나 최종적으로 타락하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 . .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죄인에게 심판의 형태를 취하지만 그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심판의 형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이기를 중단치 않는다.33)
하나님의 영원한 뜻에 근거하여 우리는 모든 인간 존재가, 심지어 가장 쓸데없는 자들, 가장 악하고 불쌍한 자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형제이시며 하나님께서 그의 아버지이심을 생각해야 하며, 우리는 이러한 생각 위에서 그를 취급해야 한다.35)
10. 몸의 부활을 부정한다.
“몸의 부활은 스캔들이요 부조리요 종교적 물질주의요 거침돌이다.”37)
11. 성경이 윤리의 객관적 규범임을 부정한다.
선과 악의 문제는 결코 사람이 일련의 규범들로서의 하나님의 권위적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대답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선하고 악한 행위들의 법전, 선하고 악한 것에 대한 일종의 잣대로서 사람에 의해 발견되거나 자신과 타인들에게 부과되지 않는다.39)
라인홀드 니이버의 이단적인 사상 몇 가지도 그의 저서들에서 인용해 봅니다.
1. 교의(敎義)의 진리성을 부정한다.
교의(敎義, dogma)는 기껏해야 언약 공동체의 공동 견해를 나타낸다.60)
2. 기독교 진리 일반에 대해 회의적이다.
기독교 종교에서 참된 것은 어느 정도 임시적이고 표면적인 거짓을 포함하는 상징들로서만 표현될 수 있다. . . . 우리는 거짓에 의해 진리를 가르친다.61)
기독교는 원시종교적, 예술적 신화들과 상징들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전달한 종교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62)
성경의 상징들은 문자적으로 해석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유한한 지성들이, 역사를 초월하고 성취하는 것[신]을 파악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63)
3. 창조를 신화적 개념이라고 한다.
창조는 충분히 합리적으로 표현될 수 없는 하나의 신화적 개념이다.64)
4. 아담의 타락을 신화라고 한다.
에덴 동산에서의 인간의 타락의 이야기는 원시적 신화이다. 현대 신학은 현대 문화가 그런 신앙을 종교의 개화반대론의 증거로 간주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즐거이 타락 이야기를 부정했다.65)
타락의 개념은 동산, 과일, 그리고 뱀이라는 원시적 신화를 역사적으로 참된 사실로 간주하는 오류에 굴복한다. . . . 타락은 역사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 어떤 구체적 인간의 행위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러한 행위들의 전제이다.66)
5.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은 불합리하다고 한다.
영원이라는 것이 시간 속에 들어온다는 개념은 지적으로 불합리하다.67)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진리는 진리가 보통 판단되는 모든 규범들을 어긴다.68)
6.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진리를 신화라고 본다.
사람들은 처녀탄생의 원시적 신화에 의해 속임을 당하고, 바로 역사 너머를 가리키기 때문에 의미 있는 그것을 하나의 순수한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69)
‘처녀탄생’과 같은 기적들은 후대에 삽입된 생각들이다.70)
7.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는 신학적 오류라고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교리는 많은 신학적 오류들로 인도하는데, 그 중에는 사람의 도덕 의식을 모욕하는 대리적 속죄의 이론들이 포함된다.71)
8. 영혼 불멸에 대해 회의적이다.
영혼의 불멸이라는 개념이 몸의 부활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선입견은 단지 교회 안에 있는 헬라사상으로부터 온 유산에 불과하다.72)
9.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크게 속인 교리라고 한다.
기독교의 교리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보다 더 속임과 착각으로 인도한 교리는 없다.73)
10. 몸의 부활을 부정한다.
몸의 부활의 개념은 물론 문자적으로 참될 수 없다.75)
-
요한
2020.01.21 21:52
목사님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내용이 많아서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제 자신이 아쉬운 점은, 아는 게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그 칼빈과 칼바르트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두 사람의 신학을 비교하는 건 (저에게)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책과 온라인 등을 찾아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제가 실력이 있다면, 목사님이 하신 위의 질문들을 가지고, 김명용교수님을 찾아가 묻고 싶은 마음도 있고,
또는 그 제자들이 운영하는 칼바르트학회 같은 모임에 찾아가서 묻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제가 정말 궁금한 것은, 그 말씀에 확실히 반하는 교리들을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또 받아들이고 있는지 하는 부분이랍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단적인 메시지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지, 아니면 같은 내용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지...하는 부분도 궁금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저는 교회 내에서 성경을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은 봤어도, 목사님이 말씀하신 그런 이단적인 메시지를 말하는 사람을 한번도 만난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교회내에서 발견하게 된다면, 제 인생에 놀라운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현재의 저로서는,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어떤 학자같은 실력이 없어서, 설득을 당하거나, 이해못하거나 하는 상황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 대화를 해보거나 또는 이해하려면, 관련 책들을 읽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목사님, 위의 글 중에서..아래 글은 맞는 말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적으로 불합리하지만, 신자는 믿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니까요.
5.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은 불합리하다고 한다.
영원이라는 것이 시간 속에 들어온다는 개념은 지적으로 불합리하다.67)
안녕하십니까?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 몇 마디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1. 물론, 기장, 기감, 통합 등의 자유주의 교단들에도 개교회마다 또 개인마다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믿는 여부나, 전부 혹은 그 일부를 부정하는 정도가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교단들을 자유주의 교단들이라고 부른 것은 목사양성원인 총회 운영 신학교에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는 교수들이 용납되어 있고 자유주의 신학을 공식적으로 배제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미 오래된 일입니다.
2. 제가 말하려고 하는 핵심은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이며 그 이단 사상을 교회가 용납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3. 그런데, 세계적으로는 이미 유럽(독일 등)의 교회들이 오래 전부터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었고, 미국 교회들도 벌써 100년 전부터 감리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 등이 자유주의 신학(예컨대, 신정통주의 신학)의 용납으로 혼란해졌습니다. 이것이 현대 교회역사입니다.
4. 또 우리나라도 일찍부터 감리교회와 장로교 기장측은 신정통주의 신학을 공개적으로 용납하였고, 통합측도 오래 전부터(이종성 박사 때에나 현재도 김명용 교수에게서나) 신정통주의를 용납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것은 제 책에도 명시한 바입니다.
5. 또 자유주의자들에게 당신이 자유주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고 교묘히 설명하려 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은 부정이라고 말하지 않고 재해석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 그 교단들에 속한 일반 사람들은 자유주의의 이단성을 잘 모를지도 모릅니다. 일반 교인들은 성경대로 믿으려 하는 자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의 교인들이나 목사님들이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대체로 믿고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잘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미국교회의 통계들은 저의 책에서 소개한 바이었고, 미국교회와 문제 의식 없이 교류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염려됩니다. 우리나라 교회가 대체로 보수적이라고 저도 생각하고 싶지만, 모두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에 대한 무지는 변명할 문제가 아닙니다.
6. 비교적 덜 급진적인 통합측에도 일부 목사님들이 장로회신학대학(광장동) 내에 신정통신학을 따르는 자들이 있고 그들이 이단적이라고 말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이단자들을 권징하지 않고 포용하고 있다는 것과 그런 이단자들이 목사후보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7. 합동과 대신 등의 문제는 현시점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하고 있는지 불분명하지만, 그들의 문제는 자유주의 교단인 통합과 기장, 기감과 별문제 의식 없이 교제하고 교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이단을 멀리하라는 성경의 교훈에 위배됩니다. 실상, 잘못된 교제는 무지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내심 교리적 오류를 용납하는 교리적 무관심이나 해이 혹은 변질에서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