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에 대해서
2024.02.25 23:46
목사님, 십일조에 대한 질문을 드립니다.
십일조는 구약시대의 율법이므로 신약시대에는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목사님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일조를 언급하셨지만 아직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이고, 이후 신약에서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설명도 제시합니다.
구약시대에 성전을 관리하고 제사를 책임지던 레위인들이 별도의 직업이 없었으므로 다른 11지파에서 십일조를 드려서 그들의 생활을 책임지었던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제는 레위인들이 없으므로 십일조도 불필요한 것이 아닌가요?
물론 우리가 받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당연히 인정하고, 또 교회의 운영에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하므로 반드시 헌금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십일조라는 명목으로 드리는 것이 조금 거리낌이 있습니다.
저는 작은 교회를 다닐 때는 십이조, 십삼조도 드렸지만, 대형교회를 다닐 때는 십일조를 안드렸습니다.
대형교회가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 십일조로 인한 지나친 헌금 때문이라고 이해합니다.
대신 제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이나 선교사님들에게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많은 목사님들이 지금도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설교하셔서 마음이 고민이 있습니다.
성경적인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답변이 늦어서 미안합니다. 제가 답변을 간략히 요약할 시간이 없어서 제가 쓴 <기독교 윤리> 책에서 "십일조"에 대한 부분을 인용해 드립니다.
또 영상도 링크해 드립니다. http://www.oldfaith.com/05ethic/11%EC%A0%88%EA%B8%B0%EC%99%80%EC%8B%AD%EC%9D%BC%EC%A1%B0.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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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십일조(十一條)의 ‘조’(條)라는 말은 ‘세금’(租)이라는 뜻이 아니고 ‘가지’라는 뜻이다. 십일조라는 말은 단순히 열 개 중의 하나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안식일을 엄격히 지키기를 명령하셨듯이, 십일조도 그러했다. 신약시대에 성수주일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의 구별을 명하시는 하나님의 중요한 뜻이듯이, 십일조는 여전히 헌금 즉 물질의 구별에 대한 하나님의 중요한 뜻이라고 본다.
십일조는 옛날에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전쟁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드린 일이나(창 14:20),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하면서 벧엘에서 하나님 앞에 약속한 내용에서 언급되었으나(창 28:22), 후에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율법에서는 레위기 27:30-33에서 처음으로 규정되었다.
그 규정은 다음과 같다.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 . . 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라.” 십일조 규정은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일과 열매들의 십분의 일과 소나 양 등 가축의 새끼들의 십분의 일이 여호와의 것으로 거룩히 구별하여 드려져야 한다는 규정이다.
십일조는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 생활에 중요한 제도이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농사할 밭이나 목축할 가축들이 없었다. 이스라엘 온 백성의 소득의 십일조는 성막과 성전 봉사의 일에 전념하였던 모든 제사장들과 모든 레위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한 것이었다. 민수기 18:21-32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소득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기업으로 주시고 레위인들의 십일조는 제사장들에게 드리게 하심으로 그들로 제사와 성막 봉사에 전념케 하셨다.
또 신명기 14:28-29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 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 생활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지 여부를 시험하는 일이 되게 하셨다. 말라기 3:7-12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갔다고 지적하셨는데, 그것은 그들이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다고 말씀하셨고, 또 그는 그들이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였기 때문에 그 땅이 저주를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하셨다.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명하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고 부언하셨다.
이와 같이, 십일조는 엄격한 규정인 동시에 복된 약속이었다. 그것은 풍성한 물질적 복을 약속한다. 성경은 경건한 자들에게 복을 약속한다. 잠언 3:9-10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말했고, 사도 바울도 디모데전서 4:8에서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말하였다.
그러면, 신약시대에 십일조 생활이 신자의 의무인가? 예수께서는 십일조에 대해 따로 가르치지는 않으셨다. 단지 마태복음 23:23에 보면, 그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義)와 인(仁)과 신(信)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 말씀에서 주께서는 십일조를 부정하지는 않으셨으나 십일조 같은 종교적 형식보다 의와 인(仁)[긍휼]과 신(信)[믿음, 신실, 충성], 즉 도덕성을 강조하셨다.
신약성경은 십일조를 가르치지 않는다. 사도들은 서신에서 십일조를 교훈하지 않았다. 신약성경의 헌금의 기준에 대한 교훈은 풍성하게 하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헌금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서 자세하게 교훈하였다. 그는 우리가 헌금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하면서 헌금은 우리가 간절히 소원할 만한 일이며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 즐거움으로 하고 풍성하게 해야 한다고 교훈했다. 또 헌금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증거이며 하나님을 사랑함과 형제들을 사랑함의 증거라고 하였다.
그는 고린도후서 8:7에서,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 교훈하였다. 헌금에 대한 신약성경의 교훈은 한마디로 풍성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십일조 이상을 의미한다.
십일조 규례는 구약의 율법들 중 의식법에 속한다고 본다. 그것은 안식일 법과 비슷하다. 구약의 의식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축소된 방식으로 성취된 것이 아니고 풍성한 방식으로 성취되었다. 다시 말해, 신약 성도는 그의 모든 시간과 모든 돈을 하나님의 것으로 깨닫고 하나님과 그의 일을 위해 드려야 한다.
성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가르친다. 시편 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자이시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는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지만(엡 2: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으로 구원과 새 생명을 얻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마땅하다(롬 12:1).
실상, 돈은 하나님처럼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은 신(神)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마 6:24). 또 그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매우 어렵다고도 말씀하셨다(마 19:23-24). 사도 바울도 부자가 되려고 하는 자는 시험에 떨어지고 멸망에 이르며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가르쳤고 또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런 시험에 떨어져 믿음을 잃었다고 말하였다(딤전 6:9-10).
또 주께서는 우리가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셨다(마 6:19-20).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것은 전도와 구제를 위하여 재물을 사용하라는 뜻이다. 그것이 헌금의 정신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자족하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딤전 6:7-8). 우리는 이 세상에서 검소하고 자족하며 살고, 전도와 구제를 위하여 힘써 헌금해야 한다. 우리가 돈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가진다면, 즉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심으로 누리는 것이며 그것이 오히려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기도 하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십일조와 헌금에 대한 바른 지식과 태도를 가지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돈에 대한 욕심을 품고 이 세상의 것들이나 육신의 쾌락이 헛됨을 알지 못하고 거기에 가치를 두고 욕심을 품으면, 십일조나 헌금에 대한 교훈은 우리에게 거리낌이 될 것이다.
십일조 규례는 신약시대에도 유효한가? 십일조 규례가 도덕법이라면 영속적이겠지만, 그것이 의식법이라면 신약시대에는 폐지된 법일 것이다. 십일조는 의식법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십일조 규례는 신약시대에는 폐지된 법이라고 본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 계명과 성수주일 문제에서 생각한 대로, 구약의 의식법들은 축소된 방식으로가 아니고 풍성한 방식으로 성취되었다고 본다. 구원 얻은 신약 성도의 헌금의 원리는 “풍성히 드리는 것”이다. 구원 얻은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십일조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구약 성도들보다 더 풍성한 은혜를 받은 신약 성도들은 소득의 십일조 이상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한국교회가 낳은 귀한 주석가 박윤선 박사는 말하기를, “교회가 이것[십일조 헌금]을 법제화할 것은 아니고 그 이상 헌금이나 비록 그 이하 헌금도 감심으로 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그 이유는 신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되기 때문이다. . . . 그런데 신자들이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여 즐거움으로 드리는 헌금은 십일조 이상을 바치게 되어진다”고 하였다(박윤선, 구약주석 사기서: 제4권 에스라서․느헤미야서․에스더서, 163쪽).
신약 성도들은 헌금에 대한 구약성경의 명령이며 모범인 십일조 이상을 즐거이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감사하는 작은 표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실천하는 성도들에게 풍성한 복을 주실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