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순종에 대한 질문입니다.
2023.09.01 17:28
1.능동순종은 성경적인가요?
목사님께서는 성경적인 신학을 추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2.이 능동순종의 교리는 정통교리인가요?
합동교단에서는 이대위까지 나서서 능동순종을 주장하시는 모든 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을 이단시하시는데
이 교리를 반대하시는 분들의 의견이 맞는 것인지 찬성하시는 분들이 맞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자세한 설명 부탁드려요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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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3.09.07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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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pherd
2023.09.08 11:09
"능동순종의 개념은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에 설명한 대로(교의신학. 제4권. 기독론, 349-353쪽), 개혁신학의 전통적 견해이며 이것을 부정하는 자들은 이 진리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이라고 봅니다."라고 하셨는데
그럼 박형룡 박사님의 교의 신학에는 회심준비론의 개념이 없다고 준비론 반대하시는 분들께서 언급하시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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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3.09.08 11:36
회심준비의 개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개혁신학을 가진 자들은 알미니안 같은 개념은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혁신학에서도 회개는 박형룡 박사님의 설명대로 깨달음과 뉘우침과 돌이키는 결단의 세 요소를 다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 세 요소들은 다 성령의 활동입니다. 깨달음과 뉘우침이 회심의 준비라면 준비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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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pherd
2023.09.09 21:48
목사님의 말씀대로 회개는 깨달음과 뉘우침과 돌이키는 결단의 세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것에는 저도 동의하고 이해합니다. 다만 그 깨달음과 뉘우침과 돌이킴은 구원사역인 특별은총안에서의 일로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회심준비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조엘비키 목사님의 "은혜로말미암은 준비"의 책의 내용을 보면 특별은총으로 들어가기 전 그니까 자연인인 상태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회개할 수 있다라는 웨슬레의 선행은총적인 입장을 말을 하기에 여쭙는 것입니다. -
관리자
2023.09.10 08:13
저는 조엘 비키의 책을 읽어보지 못하였습니다만. 조엘 비키의 사상이 그러하다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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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pherd
2023.09.11 16:31
그리고 더욱이 이번에 있었던 합동측 공청회에서 회심준비론을 발제하셨던 김효남 교수님의 입장이 이런 입장에 있어 질문드린적이 있었는데
제가 잘못읽고 오해 할 수 있기에 김효남 교수님의 페북에서의 글을 붙여넣습니다.
저의질문 : 공청회때 목사님 답변에서 준비론이 구원의 서정 밖에서 성령의 일반사역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밑 첨부 영상 4:30초 부터 들으시면 됩니다)
여기서 질문드립니다,https://youtu.be/pEIaDW0IuWM
장로교는 웨민신조를 장로교 표준문서로 고백하고 있고 성경적인 입장에서 있다고 고백하는줄로 믿고 따르는걸로 압니다. 최종적인 신앙고백서도 웨민신조라고 들었고요. 결론적으로 웨민에서는 효과적 부르심 안에 일반사역적인 부분도 모두 포함시켜 고백했다고 한걸로 아는데 그런데 왜 굳이 서로 떼어 생각하는 것이 궁금하며,
구원 서정 전의 일반사역이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들에게 영향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용어자체도 회심준비론이 아닌 구원서정전이니 "소명(부르심)준비론"이라고 해야 정확하지 않나요?
김효남교수님 답변 :
제가 일반사역이라고 말한 이유는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제가 일반사역이라고 말한 이유는 중생과 같이 우리의 영혼에 구원이 일어나기 전에 있는 사역이기 때문이고, 또 자신이 심판받을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자체는 유기자도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택자와 유기자의 깨달음은 그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죄에 대한 깨달음은 택자든 유기자든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역사라는 의미와 아직은 구원이 직접적으로 일어나는 은혜가 아니라는 차원에서 일반적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당연히 택자에게 있는 죄에 대한 깨달음의 은혜는 그것이 우리를 중생 혹은 회심으로 인도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고 또 성취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의미에서 특별한 사역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제가 구원서정 밖이라고 말했을 때에는 구원서정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우선은 신앙고백서에서 언급하는 유효적 소명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구원서정을 기술하려는 목적 속에서 유효적 소명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구원서정(ordo salutis)이라는 용어는 신앙고백이 기록될 당시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몇몇 신학자들이 사용했어도 지금과 같은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고백에서 나온 (구원서정처럼 보이는) 주제들은 오늘날 현대신학자들이 구원서정을 기술하려는 의도로 구원의 순서를 기술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18세기 중반에 오늘과 같은 의미를 담은 신학적 용어로 정착되었습니다. 왜냐하면 17세기 이후 점점 더 구체적으로 연구되면서 발전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완성에 이르기 위해서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순서적으로 기술하려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결과 생겨난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고백에서 설명하는 유효적 소명은 우리의 구원서정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 아니므로 그 정의를 오늘날 구원서정에 포함된 소명과 동일하게 할 수 있는지는 고려해볼 사항입니다.
오늘날 구원서정은 학자마다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 소명과 중생에 대한 견해와 관계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유효적 소명에 청교도 준비교리에서 말하는 과정을 포함시켜야 하는지는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벌코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중생을 통해서) 영적인 귀를 받은 다음에, 이제 죄인에게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부르심을 가슴 깊이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저항하려는 욕구는 순종하려는 욕구로 바꼈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말씀의 설득력있는 영향력에 굴복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효과적인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말씀의 선포라는 수단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효과적으로 적용됩니다."
여기서 벌코프는 유효적 소명에 준비과정을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말씀에 의해서 변화되는 역사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죠.
제가 준비과정을 구원서정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유효적 소명을 신앙고백처럼 정의하면 말씀하신대로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서정이라는 개념이 신학적인 용어로 정착된 이후 개혁파 신학에서 논의하는 유효적 소명의 개념(학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에 따라 죄인이 준비과정을 통해서 준비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복음적 부르심을 듣게 되는 순간을 유효적 소명으로 본다면 제외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택자에게 준비과정이란 본질적으로 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택자에게 임하는 특별한 은혜임을 고려한다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정의에 따라 유효적 소명에 포함시킬 수 있고, 그리고 신앙고백의 소명 개념을 오늘날 구원서정의 소명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구원서정에 포함된다고 말해도 저는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유효적 소명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제 설명이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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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못이해한걸까요???
자세하게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사님 부탁드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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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3.09.11 19:50
김효남 교수의 긴 설명은 구차스런 자기 변명같이 보이네요. 질문자의 지적은 정당해보입니다. 회심준비는 택자를 위한 유효소명 안에 두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알미니안주의적 생각이라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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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pherd
2023.09.12 10:00
감사합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능동순종의 개념을 나름대로 규정한 목사들이 그 개념을 부정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전통적 개혁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안에는 두 면, 즉 수동적 면과 능동적 면이 다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은 죄의 형벌을 담당한 사역이지만, 예수께서 그런 사역을 온전히 이루시려면 그 자신의 의로우셔야 합니다. 즉 그는 율법을 다 순종하셔야 하고 다 순종하셨고 죽기까지 그러하셨습니다. 그것이 로마서 5:18-19에 말씀한 '의의 한 행동'이며 '한 사람의 순종하심'입니다. 또 로마서 10:4에 말씀한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습니다(고전 1:30). 이것이 빌립보서 2:6-8에 말씀하신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삶이십니다. 또 히브리서 5:8은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케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능동적 순종의 개념은,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에 설명한 대로(교의신학. 제4권. 기독론, 349-353쪽), 개혁신학의 전통적 견해이며 이것을 부정하는 자들은 이 진리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