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저장성의 한 교회에서 십자가가 철거되는 모습.
한편에선 십자가 철거, 다른쪽선 기독교 ‘중국화’
2016.07.11 11:54
중국의 헌법 36조는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기본권의 하나로 명문화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은 종교 신앙의 자유가 있다."
” 그런데 해당 조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전제와 단서를 확인할 수 있다. “국가는 ‘정상적인’ 종교활동을 보호한다”고 규정돼 있고 “종교단체와 사무는 ‘외국세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언뜻 봐도 종교활동이 정상적인지 여부의 판단 주체를 ‘국가’라고 못박고 있다. 중국 내 종교활동에 대해 외부에선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뜻도 분명해 보인다. 중국 당국의 입장에선 2012년부터 개념화하기 시작한 ‘기독교의 중국화’는 헌법정신의 반영이고, 2013년부터 진행된 일부 지역의 십자가 강제철거는 헌법정신의 실천인 셈이다.
하지만 종교ㆍ신앙의 문제를 국가사무의 일환으로 규정하는 건 수많은 무리수를 낳는다. 의도적이든 부지불식간이든 정치ㆍ행정의 영역이 신념으로 체화되는 신앙을 통제ㆍ관리하겠다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중국 저장(浙江)성 일대에서 진행된 십자가 강제철거를 다룬 기사에 ‘목 잘린(decapitated) 교회들’이라는 제목을 단 건 상징적이다.
종교ㆍ신앙을 관리하겠다는 중국
지난해 공식통계상으로 중국 내 천주교 신자는 600만명, 개신교도는 3,000만명이다. 각각 천주교애국회와 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에 등록된 인원 수다. 두 단체 모두 공산당과 행정당국이 신도 관리를 위해 1950년대에 만든 관제단체다. 하지만 이들 단체에 등록되지 않은 신도들도 상당히 많다. 개신교도 수가 1억명에 달할 것이란 추정이 나올 정도다. 중국 당국이 ‘지하교회’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다.
정부가 추진하는 기독교의 중국화는 크게 두 방향이다. 하나는 학문적 토론과 서적 출판 등이다. 2012년 3월 베이징(北京)대 종교문화연구소와 중국사회과학원이 기독교의 중국화를 주제로 한 첫 공식회의를 개최했고, 이후 공산당 통일전선부와 국무원 종교사무국 관계자들도 정식멤버로 참여해 집중적인 토론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행정당국의 ‘현장 지도’인데 표현은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는 십자가 강제철거와 종교시설에 대한 등급 부여다. 저장성 일대에서 지난 3년여간 정부 당국에 의해 십자가가 강제철거된 성당과 교회가 1,800여곳에 달한다. 십자가가 훼손된 경우까지 포함하면 3,000곳을 넘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 교회는 아예 허물어지기도 했다.
장쑤(江蘇)성에선 지난해 3월 종교시설 18곳을 ‘5성급 종교활동 장소’로 지정하기도 했다. 절이 11곳으로 가장 많았고, 성당과 교회도 각각 1곳, 2곳이 선정됐다. 4성급은 31곳이 지정됐다. 관광당국이 시설ㆍ서비스 등을 평가해 호텔에 등급을 매기는 것과 유사하지만 실상은 당국에 대한 협조 여부가 별의 개수를 좌우한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십자가 강제철거와 종교시설 등급 부여는 각기 진행됐지만, 하반기부터는 이들 방안이 병행되고 시행 지역도 확대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베이징에서 16년째 거주하고 있는 한 한국인 교인은 “중국은 항상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 어느 한두 곳에서 시범적으로 실험을 해본 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판단되면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한다”면서 “모두들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저장성의 한 성당에서 교인들이 십자가 철거를 막기 위해 정문에 바리케이트를 쌓아놓은 모습.
“기독교는 공산당 통치의 위협요소”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이 기독교의 중국화를 추진하며 십자가 철거 등의 강제조치를 취하는 이유에 대해 “공산당 통치의 위협요소로 간주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천주교ㆍ기독교의 교리 자체도 문제지만, 지하교회의 신도수가 급증하면서 정치세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기독교의 중국화 추진 방향으로 중국의 정치체제 인정, 중국 사회에의 적응, 중국 문화를 통한 표현 등 3가지를 설정했다. 여기에는 종교ㆍ신앙이라도 사회주의국가의 특성에 맞게 공산당의 영도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교회당 건축양식을 문제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점에서 저장성이 종교탄압 대상 지역이 된 건 상징하는 바가 크다. 이 지역은 청나라 말기 서구 열강이 선교사를 대동한 채 침략한 루트였고, 특히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원저우(溫州)시는 900여만 인구 중 ‘공식’ 기독교인만 100만명이 넘는다. 십자가 수난 사태를 주도한 샤바오룽(夏寶龍) 당 서기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측근이고, 성도인 항저우(杭州)시에선 오는 9월 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시 주석은 지난달 22~23일 최고지도부 전원이 참석한 전국종교공작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공산당원은 굳건한 마르크스주의 무신론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모든 종교는 당의 영도를 따라야 한다”며 “정부는 국가ㆍ공공이익에 관련된 종교 문제를 법에 따라 관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언급은 향후 종교ㆍ신앙생활에 대한 단속과 관리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물론 중국 당국이 구체화하고 있는 기독교의 중국화 추진 상황을 감안할 때 세부 방안에 있어선 ‘체제 내 흡수’를 위한 유연한 대응도 함께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