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투자 침체 지속' 판단… 전문가들 "경제 기초체력 바닥"
"한국경제 이미 중환자… 더 누워있으면 못 일어날 수도"
[김성모, "기재부 보고서도 7개월째 '경제 부진'," 조선일보, 2019. 10. 19, A1, 3쪽.] → 경제파탄
정부가 우리 경제 상황을 진단해 매달 발표하는 경제 동향(일명 그린북) 보고서에서 '부진'이란 표현이 7개월 연속 이어졌다. 2016년 말에 자동차 파업과 갤럭시 노트7 판매 중단 등의 여파로 넉 달 연속 '부진' 표현이 나온 이래 최장(最長) 기간 부진한 경제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8일 발간한 그린북 10월호에서 "우리 경제는 생산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수출 및 투자의 부진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주요 지표들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 실험에 몰두한 결과 작년만 해도 좋았던 세계 경기에 올라타지 못해 경제 체질을 개선할 골든 타임을 놓쳤고, 지금처럼 악화한 경기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난조에 빠진 이유로 전문가들은 수출 및 투자 부진, 소비 악화, 40대·제조업 중심의 고용 부진 등을 꼽는다.
우선 반도체 경기 둔화와 미·중 무역 갈등 같은 악재까지 덮치며 수출은 작년 12월 이후 10개월 연속 감소세다. 기재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이어지고 미·중 무역 갈등은 1단계 합의가 나왔지만 불확실성이 남아 있고 글로벌 교역 및 제조업 경기 위축 등에 따른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가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투자의 경우 설비와 건설투자가 전년 동기 대비 5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면서, 2~3년 새 크게 위축된 흐름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부 분석이다.
여기에 8~9월 두 달 연속 소비자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초입(初入)에 들어섰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비자들이 물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해 지갑을 닫으면 소비는 줄고, 기업은 수요가 위축된 탓에 신규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 경기 침체의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정부는 "디플레이션 우려는 과하다"는 입장이지만,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전문가가 많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경제가) 이미 디플레 초입에 진입했다고 판단하며,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2%도 깨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다소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고용의 질(質)은 여전한 걱정거리다. 9월 취업자 수가 34만8000명 증가를 기록하며 예년 수준으로 회복됐지만 우리 경제 허리 격인 30·40대 일자리는 24개월째 동반 하락 중이다. 경제 중추인 제조업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제조업 일자리는 18개월째 감소하고 있다. 반면 늘어난 일자리를 뜯어보면 초단시간(1~17시간) 근로자 증가(37만1000명 증가)가 두드러질 뿐이다.
정부는 대외 환경이 개선되면 수출이 나아지고, 마이너스 물가 역시 일시적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중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이 6.0%에 그치는 등 대외 환경 개선은 요원하고, 정부가 학수고대하는 반도체 경기 회복 역시 불투명하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작년과 재작년 세계 경기가 좋을 때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엉뚱한 경제 실험으로 도약의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 뼈아프다"고 했다.
심각한 것은 이처럼 부진한 경제 흐름이 지속되면 고령화, 주력 업종 쇠락, 경직적인 노동시장, 규제 완화
등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해 필수적인 과제를 실행할 기초 체력이 고갈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가 한편으론 당장 경기 하락을 막으면서, 동시에 미뤄둔 체질 개선을 서둘러야 생존하는 상황에 몰렸다는 얘기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는 이미 중병(重病)에 걸렸는데 병상에 오래 누워 있을수록 체력은 떨어지고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