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고싶은 것만 보는 '아전인수식 통계해석']
수출 12개월째 마이너스인데 文대통령 "11년 연속 무역흑자" 강조
현정부 들어 서울 집값 15.7% 올랐는데… "부동산 가격 안정되고 있다"
전문가 "긴급처방 시기 놓치게 돼 편향·낙관적인 통계 해석 위험"
9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런 제목의 보도 자료를 냈다. "어려운 외부 여건으로 글로벌 투자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한국 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높은 평가가 지속되고 있다"고 자화자찬까지 했다. 그러나 실제 통계를 들여다보면 놀라게 된다. 올해 FDI는 지난 2일까지 203억달러로 전년(269억달러) 대비 20% 감소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2014~2018년 5년 연속 증가했던 FDI는 최저임금·법인세 인상, 주 52시간제 등 각종 규제로 최근 급감세로 돌아선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는 200억달러를 넘겼다는 점만 강조한 것이다. 산업부는 지난 10월엔 수출 12% 감소는 외면한 채 "지난달 무역수지 올해 최대"라는 보도 자료를 낸 적도 있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아전인수' 통계 해석을 상습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는 수출·투자 관련 통계뿐 아니라, 일자리·가계소득·부동산 등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는 우리 경제지표 전반에 걸쳐 벌어지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정부가 통계를 정권에 유리하도록 편향적·낙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잘못된 진단은 그릇된 정책을 낳고, 긴급 처방을 내려야 할 시기도 놓치게 한다"고 말했다.
◇멈추지 않는 외눈박이 통계 해석
문재인 대통령의 각종 발언에도 통계 왜곡은 자주 등장한다. 그는 지난 5일 '무역의 날' 축사에서 "한국은 11년 연속 무역 흑자를 이뤘다"며 "우리 기초 경제는 탄탄하다"고 했다. 무역이 경제의 핵심인 한국 경제에서 무역 흑자를 내는 건 매우 중요한데 흑자 내용을 따져보면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무역 흑자는 1998년 이후 딱 한 해(2008년)를 빼고는 20년간 흑자였다. 월별로는 94개월 연속이다. 그런데도 최근 흑자가 반갑지만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수출이 잘돼 생기는 흑자는 좋은데 지금은 12개월 수출이 마이너스이고, 경기가 나빠져 수입도 함께 줄어드는 '불황형 흑자'다. 올 들어 수출이 10.4% 감소하는 동안 수입도 5.7% 줄었다. 더욱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나라에서 연간 수출 감소율이 10%대를 기록한 것은 2009년 금융 위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흑자 타령'할 시점이 아니란 얘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가격이 안정화하고 있다"고 발언해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현 정부 출범 후 전국 주택 가격 변동률(4.03%)은 지난 정권 때와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가장 많은 국민이 살고 싶어 하는 서울 집값은 미친 듯 올랐다. 강남에선 평당 1억 아파트가 나왔고, 현 정부 출범 후 서울 집값은 15.7% 급등했다. 반면 지방(수도권·광역시 제외)은 같은 기간 4.5% 감소했고, 미분양만 4만8000여 채에 이른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은 결국 서울은 폭등을, 지방은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그런데도 정부가 자화자찬을 이어가자 부동산 시장 등에서는 "정권 차원에서 '평균의 오류'를 악용해 분식하고 있다"는 쓴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또 지난 8월 취업자가 전년 동월 대비 40만명 이상 늘었다는 통계가 나온 뒤 "정부의 적극적 일자리 정책과 재정 정책이 만들어낸 소중한 성과"라고 자찬했다. 그러나 실제론 60대 이상 노인 일자리, 36시간 미만 일하는 단기 취업자가 대거 늘고, 일자리의 핵심인 30~40대 일자리, 풀타임·제조업 일자리는 크게 줄었다.
지난달 최저 소득층(하위 20%)의 소득이 증가한 것을 두고 "소득 주도 성장 정책 성과"라고 평가한 문 대통령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실상은 최저 소득층이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이 는 게 아니다. 세금으로 메워주는 정부 보조금 등의 이전 소득이 늘어서 나타난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한국 경제의 위험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대통령은 물론 부처 공무원들조차 외면하는 듯해 화가 날 정도"라고 말했다.
◇불리할 땐 무역 분쟁 탓… 한국 악화 속도가 더 빨라
정부는 통계가 불리할 때마다 미·중 무역 분쟁,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국제 환경 악화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외부 환경이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맞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외부 환경 탓만 할 게 아니라 과연 제대로 대응했느냐에 관한 자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경기가 꺾이는 시점에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등 규제를 강화하면서 더 빠른 속도로 한국 경제를 하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투자·수출·주가 등 여러 경제지표에서 드러난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코스피 지수 상승률은 2.3%로 주요
20국(G20) 중 18위였다. 또 세계 10대 수출국 중 한국의 수출 감소 폭이 가장 크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노동시장 경직성 등 각종 규제로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꺾이는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 등 경기 확장기에 써도 버거운 규제를 더해 거시 경제 관리에 실패한 것"이라며 "정부가 경제를 살릴 의지가 있다면 통계부터 제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