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한국형 뉴딜’ 정책을 코로나 불황 타개책으로 야심차게 내놨다.
지난 5월 7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는 데이터·5G·인공지능(AI) 등 디지털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SOC 디지털화 등 3대 영역을 중심으로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기로 했던 것.
이 프로젝트는 향후 2~3년 동안 집중 추진된다. 정부가 나서서 5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국민에게 제공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이를 위해 35조3000억 원 규모의 역대 최대 규모 ‘2020년 제3회 추가경정예산(추경)안’ 국회 심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한국형 뉴딜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4년 10월 26일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듬해 경제성장률을 5%대의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서는 3조 원 이상의 재정을 확대하고 부족한 자금은 민자 유치를 통해 조달한다는 ‘한국형 뉴딜’ 방침을 발표했다. 뉴딜적 종합투자계획은 민자 7조~8조 원과 각종 건설 관련한 사업 예산 3조 원을 더해 10조 원 안팎의 규모로 추진한다는 계획이었다. 사회간접시설(SOC), 학교시설, 아동 보육시설, 노인요양시설, 의료보건시설, 공공청사, 공공임대주택 등이 사업으로 확정됐다. 이후 결과는 어땠던가.
‘한국형 뉴딜’ 실패의 기록
참여정부 5년 평균 성장률은 4.3%였다. 외환위기 후유증이 극심했던 국민의정부 4.39%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참여정부 집권 기간 중 중국과 인도가 각각 10.3%와 8.4%, 홍콩과 싱가포르가 각각 6.5%와 6.4%의 고도성장을 일궈냈다는 점을 참고하면 한국의 성장률 둔화는 누가 봐도 지나친 것이었다. 2003~2006년 4년간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사상 최대인 무려 8%대를 오르내렸다.
참여정부의 분배·복지 우선정책에도 불구하고 빈부의 격차는 더 심화됐고 중소기업인, 영세 자영업자, 서민들의 고통은 더 가중되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다. 참여정부 5년간 국민들의 지출 증가율은 33%로 소득 증가율 31.6%를 앞질렀다. 특히 세금·사회보험료 등 비소비지출과 과외비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전체적으로 2003년 20.4%였던 조세부담률은 2007년 22.2%로 늘어났다.
이런 평가에 노무현재단을 중심으로 ‘노무현 정부 경제 실적이 이명박 정부보다 나았다’는 주장들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강타했던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와 뒤이은 그리스, 이탈리아 등 유러존 국가들의 통화위기를 감춘 분석이어서 설득력이 없었다.
이런 비판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는 다른 ‘AI 뉴딜’, ‘디지털 뉴딜’임을 주장한다. 하지만 의미 없는 주장이다. 문제는 디지털이냐 삽질 토목이냐가 아니라 정부의 재정 지출확대가 민간부문을 축소시키고 비효율을 늘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요 없는 부분에 대한 정부지출은 결국 산업에 투자되지 못한 투기적 유동성만 증대시켜 부동산 상승과 같은 자산 버블만을 키우게 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인식은 안일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지금 우리의 국가채무비율은 2차 추경까지 포함해서 41% 수준이다. 3차 추경까지 하더라도 110%에 달하는 OECD 평균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재정확대가 재정건전성 회복에 도움 된다는 소위 ‘좋은 부채론’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에 화답해 “길게 볼 때 (재정확대)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악화를 막는 길”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과연 맞는 주장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착각하는 국가채무비율
일단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큰 착각을 하고 있다. 국제비교 통계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나라의 재정 건전성이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OECD 통계를 자주 언급하지만 OECD 국가내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OECD 평균 채무비율 110%는 OECD를 한 나라로 보고 계산한 것으로 경제 및 채무 규모가 큰 미국과 일본의 비율에 큰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에 국제비교에는 부적절하다.
따라서 이보다는 2017년 OECD 각국의 채무비율을 평균한 82.5%가 국제비교에 더 적절하다.이를 전제로 한국의 채무비율이 기축통화국 수준으로 높아진다면 일단 원화 하락으로 외국인 자본유출이 가속화된다. 물론 원화 하락으로 수출경쟁력이 생길 수도 있지만 지금 발생하는 글로벌 교역 축소는 미중 무역 갈등과 코로나와 같은 불경제 요소에 기인하기에 원화 하락과 같은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렇듯 원화하락으로 금융시장 불안이 가중되면 미국과는 달리 국제 금융시장에서 위험도가 높은 한국채권금리가 급등해 가계소비 및 기업투자 등 실물경제 충격이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미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한국의 채무비율이 46%를 넘으면 국가신용등급 하락을 경고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에 추가로 문재인 정부의 국가부채 파악에 맹점이 있다. 즉 ‘숨겨진 빚’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면 이미 국가부채는 GDP의 70%에 육박한다. 국가 간 비교에서 주로 언급되고 있는 채무기준은 D2인데 여기에는 한국의 특수성인 ‘비대한 공기업 부채’는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8년 非금융공기업 부채는 387.6조 원이며, 이를 포함한 공공부문 부채(D3)는 2018년말 GDP 대비 57%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2차추경까지 합쳐 국가채무비율이 41%라는 인식은 매우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정작 우려되는 문제는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독일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 같은 여건으로 비교해 볼 때 대단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고속의 고령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고령사회(65세 비중 14% 이상)에 진입한 한국의 당시 국가부채비율(D2)은 43.2%로 과거 선진국 대비 높은 수준이었다. 독일이 1970년대 고령사회에 진입할 당시 국가부채비율은 20%도 되지 않았고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도 30% 미만이었던 점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우리의 경우 고령화 속도가 빨라 부담 급증이 불가피한데 OECD에 의하면 한국의 노인 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는 2015년 19.4명에서 2050년 72.4명으로 45년간 약 3.7배 증가하는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OECD 평균은 27.9명(2015년) → 53.2명(2050년)이다. 이를 감안하면 GDP 대비 복지지출은 2017년 10.6%로 EU 평균(25.4%)의 절반에 못 미치지만 2060년에는 EU 평균(27%)을 넘는 28.6%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은 가히 공포스럽다. 정부·여당의 건전재정 불감증이라 할 만한 수준인데 2020년, 9%대 초슈퍼예산에 추가경정예산 3차례 편성이 이를 보여 준다. 본예산 총지출 증가율은 9.1%로 2019년에 이어 9%대로 편성됐다. 여기에 정부 3차 추경안 35.3조 원이 제출된 상태다. 여기에 1차(11.7조 원), 2차(12.2조 원)를 더하면 올 추경 총액은 59.2조 원에 달한다.
이는 올 본예산(512.3조 원)의 11.6%에 해당하는 규모다. 추경을 포함한 올 총지출 증가율은 16.5%로 증가했다. 이로 인해 재정건전성이 크게 악화되고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2020년 국가채무비율은 43.5%로 전년(37.1%)비 6.4%p 급등했고 관리 재정수지 적자는 GDP 대비 5.8%, 국가채무 순증 99.4조 원에 이른다. 재정적자비율의 이전 최고기록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4.7%였다.
이 지표대로라면 지금의 경제상태가 IMF 위기 때보다 나쁘다는 의미이고 그게 아니라면 한마디로 지금 정부는 ‘돈 풀어 제끼기’에 미쳐 있다는 이야기 외에 다른 해석이 가능하지 않다. 노무현 정부가 그러다가 부동산 덫에 걸렸다. 문재인 정부는 다를 것인가. 일단 이런 문제를 제대로 전망하기 위해 먼저 뉴딜정책의 원리라는 케인즈 경제학의 유효수요 부족과 재정지출 확대 원리의 모순을 생각해 봐야 한다.
케인즈 경제학의 오류와 정부실패
1929년 세계 공황을 해결했다는 뉴딜정책의 이론인 케인즈 경제학의 요체는 한 경제 사회에 민간에 총수요가 총공급보다 부족해지면 불황이 온다는 것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유효수요를 창출하면 민간에 생산 자극이 와서 투자가 늘고 경제는 회복된다는 원리다.
하지만 이런 케인즈 경제학의 주장은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점이 밀턴 프리드먼 같은 신고전파 학자들에 의해 논증됐다. 쉽게 말해 정부가 지출하는 재정의 원천은 다름 아닌 세금과 민간에서 끌어오는 부채라는 것이고 이 때문에 정부가 세금과 빚을 늘리면 민간 소비는 더 줄고 기업은 자금을 구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공공지출이 민간 지출을 상쇄한다는 ‘구축효과(Crowding out effect)’로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미국은 뉴딜정책을 하면서 천문학적인 재정지출을 계속했지만 그 기간에 경제는 회복되지 않았다. 케인즈는 자신의 이론대로 아무리 재정적자를 늘려도 경기가 좋아지지 않자 한 잡지 기고에서 “전쟁 정도의 수요가 필요할지 모른다”라고 썼다. 그의 꿈은 그렇게 이뤄졌다.
불황의 끝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마감됐다. 정부가 재정지출에 쓸 자금이 바닥났고 이에 민간에서 전후 수요를 찾아 투자와 생산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그렇다면 세계 공황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사람들은 흔히 자본주의 투기가 주식폭락을 가져와 대공황이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그러한 생각에 대해 결과를 원인으로 생각하는 오류라고 지적한다. 사실 뉴욕의 주가는 1929년 10월 폭락 이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29년 결산에서 주가는 하락폭의 40% 이상을 회복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철강과 같은 주식은 반대로 폭락전보다 더 올랐다는 점이다. 이러한 회복 국면에 결정적으로 찬물을 붓는 사태가 일어났다. 다름 아닌 후버 대통령과 루스벨트 시기에 일어난 잘못된 경제 민주화 처방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1929년 그해 말 미국의 의원들 사이에는 수입품에 관세를 더 매기면 자국의 제품 소비가 늘어나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유행했다. 이른바 스무트 홀리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 법이 통과될 시 미국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질 것을 우려한 1000명의 미국 경제학자들이 이 법에 대한 반대 서명을 의회에 보냈지만 1930년 6월 후버 정부는 이 법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스무트 홀리법은 외국 제품에 대한 수입금수 조치로서 이로 인해 887개의 관세가 인상됐고 관세 대상이 3218개 품목으로 확대됐다.
미국에서 무역장벽을 높이자 이번에는 미국에 물건을 팔기가 어려워진 외국 정부들이 보복조치로 미국 제품에 대한 금수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가장 많이 타격을 받은 품목은 미국의 농산물이었다. 미국 농부들이 시장의 약 1/3을 잃게 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고 수만 명의 농부들이 파산했다. 농업의 붕괴는 이번에는 지방은행들의 도산을 불러왔다. 1929년 증권폭락을 경험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은행에 달려가 돈을 찾는 뱅크런이 발생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상황이 악화되자 후버 정부는 세금폭탄을 때렸다. 1932년 제정된 세입법으로 인해 소득세는 배로 증가했고 최고한계세율이 24%에서 64%로 증가했다. 조세감면도 줄었다. 당연히 법인세와 상속세가 올랐고 증여, 휘발유, 자동차에 대한 세금이 신설됐다.
후버 정부는 공공요금 가운데 우편 요금도 급격히 인상했다. 루스벨트는 후버처럼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인상했고 기업의 배당에 대한 5% 원천과세를 도입했다. 증세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선호한 정책이었는데 2차 세계대전 마지막 해에 최고 소득세율이 94%까지 올라 최고조에 달했다.
밀턴 프리드먼 같은 시장경제학자들은 이와 같은 잘못된 정책으로 예전 같으면 1~2년 만에 끝날 수 있는 불황을 더 심화시켰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으로 던져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렇듯 불황기에 정부가 세금을 높이고 규제를 강화했던 잘못된 정책이 대한민국에서 경제민주화와 한국형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