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 좋은 것인가?
2020.12.14 18:01
그리스도인은 혁명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혁명에 대한 바른 평가와 대책은 무엇인가?
혁명이란 급격한 방법으로 기존 질서를 전복시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혁명들의 방법은 보통 비합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이다.
혁명은 옳지 않다. 폭력적 혁명은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것은 일종의 불법적 테러이다. 그것은 조직 폭력배의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비록 의도가 좋을지라도 방법이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첫째로, 혁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고의적으로 범하기 때문에 옳지 않다. 혁명은 많은 사람을 부당하게 학살한다. 집단 학살은 악마적이다. (중략) 그런 일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로, 혁명은 세속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 성도는 세속 권세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로마서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베드로전서 2: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 성도는 세속국가의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하고(딤전 2:1-2) 정해진 세금을 내며(롬 13:7) 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왕이나 세속 권세자들을 반역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경은 반역을 정죄한다. 잠언 24:21,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김효성 목사 『기독교 윤리』 中
주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는 제자들의 물음에 로마에 대한 무장투쟁을 말씀하시지 않고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중략)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로마제국의 핍박에 저항하거나 항거하지 않고 순교의 길을 걸었으며, 루터는 독일 농민 반란에 반대했고, 칼빈은 프랑스 내 신교도들인 위그노들에게 군주에게 저항하지 말 것을 권유하며 "칼을 휘둘러 복음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우리가 피를 흘리자"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혁명이 좋은 것인 줄 아는 것 같다. 특히 좌파들은 혁명을 정의롭고 옳은 것으로 미화시킨다. 자신들의 목표 즉 사회주의 낙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곧 혁명이니 더 그럴 것이다.
모택동은 조반유리 혁명무죄(造反有理 革命無罪) 즉 모든 저항에는 이유가 있고 혁명에는 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또 사람을 더 많이 죽일수록 진정한 혁명가가 되어간다고 말했다. 이유가 있는 저항이면 사람을 많이 죽여도 죄가 안된다는 말인가?
중국과 우리나라가 '의화단 운동'이라고 부르는 '의화단의 난'은 폭력과 살상행위가 동반된 야만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의화단은 극심한 잔혹 행위를 자행했는데 학살과 고문 외에도 서양 여성과 기독교를 믿는 자국민 여성을 붙잡으면 윤간을 한 뒤에 산 채로 땅에 묻어 죽였다고 한다.
특히 서양인에 대한 증오가 강했던 의화단은 서양 여성의 경우 좌용(锉舂)이라고 하여 무참히 윤간한 후 가슴과 음부를 짓뭉개는 등 각종 끔찍한 고문을 하고 죽였으며 양인 여자 1명을 죽이면 은 50냥을, 양인 아이 1명을 죽이면 은 30냥을 상금으로 주었는데 이런 상금을 받기 위해 기존 의화단원뿐만 아니라 중국인들까지 도처에서 살인 경쟁을 벌였고 서양제 성냥이나 연필을 쓴다는 이유로 일가족을 몰살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서양 남녀를 벗겨서 남성의 성기를 자르거나 여성의 음부를 짓뭉개는 좌용과, 남녀를 벗겨서 불 속에 넣어 아주 태우지 않고 익혀서 먹을 정도로 굽는 소마(烧磨), 물속에 넣고 삶아서 익혀 썰어 먹는 포팽(炮烹) 등이 벌어졌으며 그 외에도 사람을 산채로 묻어 죽이고(活埋) 팔과 다리 각을 뜨고(支解) 칼이나 작두로 머리나 허리를 자르는(腰杀) 등의 살해 방식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이 자행된 사건을 어떻게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우리나라는 '동학난'을 '동학 농민 운동'이라고 부르다가 최근에 와서는 '동학 농민 혁명'이라고 부르며 유족 수당까지 지급하고 있다.
이제는 '3·1 운동'을 '3·1 혁명'이라고 부르자는 말도 나온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9249
3·1 운동, 이름부터 제대로 부르자.
3·1 운동의 처음 이름은 '3·1 대혁명'이었다. 일제는 폭동, 난동이라 불렀다. 운동이라고 하면 자칫 '국채보상운동'이나 '문맹 퇴치 운동' 수준으로 오해할 수 있다. 1930년대 이후 민족진영에서는 '3·1 혁명'이라고 불렀고, 1944년 '대한민국 임시 헌장'에서는 '삼일 대혁명'이라고 했다. 중국 상해의 <민국일보>도 '조선 혁명 운동'이라고 했다.
선조들의 영광스러운 투쟁의 역사가 갑자기 평가절하되고 격하된 것은 친일 국회의원들(이승만도 동의) 때문이다. 해방 후 1948년 국회에서 '3·1 운동'으로 결정했다. 한심한 결의를 한 것이다. 반가운 일은 2015년에 '동학란'이 '동학농민혁명'으로 바뀐 것처럼 '3·1 운동'을 '3·1 혁명'으로 바꾸자는 의식 있는 국회의원들과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그 위상을 바르게 평가하는 타당한 주장이다. '광주 사태'라 하지 않고 '5·18 광주 민중 항쟁'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혁명은 절대 좋은 것이 아니다. 혁명에는 대개 폭력이 수반되며 많은 피를 흘리게 된다. 의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혁명은 옳은 행동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