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유익한 동맹 왜 흔드나
2006.08.29 13:56
[오공단, “한국에 유익한 동맹 왜 흔드나 ,” 조선일보, 2006. 8. 7, A4; 미 국방연구원 동아시아 담당책임연구원.]
한미 동맹은 1945년 이래 전쟁 중 가장 많은 살상자를 낸 6·25전쟁의 산물이다. 1953년 체결돼 반세기가 넘는 현재까지 한국의 안보와 안정의 기반을 제공한 공신 같은 동맹이었고, 인류의 군사 동맹 역사상 가장 공고한 동맹 중의 하나로 지칭돼 왔다.
장비, 훈련, 전투경험의 모든 면에서 갓난 아기 같았던 한국군은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현대식 군으로 성장했다. 경제, 사회 발전이 눈부셔 고구마같이 뭉툭한 모토로라 휴대폰을 사용하는 내가 서울에 가면 촌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다. 평택미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과격 시위대가 전경을 두들겨 팰 정도(!)로 정치의 민주화도 놀랍기만 하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강조하는 자주국방론이 전연 생경한 개념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 '자주 국방론'을 들먹일 때마다 가슴 밑바닥이 서늘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자주 국방은 그 어느 국가도 이룩할 수 없는 공허한 개념이다. 세계 유일의 군사 초강국인 미국조차 자주 국방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유럽 연합과 나토연맹을 통해 공조를 취한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한국을 양대 축으로 동맹과 협조를 도모한다. 21세기 어느 한 나라가 자주 국방을 한다고 안간힘을 쓴다면 국제 사회가 “아, 그 나라 허비할 돈도 많고 머리도 전략적이지 못한 지도자들 밑에 있나 보다" 하고 비아냥거리감밖에 될 게 없다.
둘째, 작은 국가가 자주국방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핵무기와 핵무기를 탑재해 운반할 수 있는 단·중·장거리 미사일 능력을 확보하게 되면 다른 국가들의 집적거림이나 위협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주국방은 아니다. 일종의 고슴도치 방위 수단일 뿐이다. 대량살상 무기를 없애자는 논의가 강한 지금, 한국이 이 길을 택할 수는 없다.
셋째, 현재도 그렇거니와 통일 이후, 한반도는 정치체제와 이념이 다른 중국과 국경을 나누는 최근접 이웃이 된다. 중국의 힘이 세지면, 한반도는 자주 중국의 조공국으로 하락했다. 이런 역사를 역사기록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자주국방을 부르짖을 때가 아니라 어느 국가가 가장 영토나 문화를 침식함이 없이 한국을 지원하는 동맹이 될 수 있는가를 따져야 할 시점이다. 분명한 점은 한반도가 관련된 영토 분쟁과 전연 무관한 국가는 미국일 뿐이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해 있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은 유혈 사태를, 있기 때문에 불편한 점들과 나란히 저울질해봐야 한다.
넷째, 만일 미국이 군사 초강국이 아니었더라면, 대다수의 국제 갈등을 방치했거나 개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분쟁 개입역사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과의 동맹이 한반도의 평화에 위협을 준다고 상상하거나 믿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한반도 유혈 사례는 전혀 다른 진실을 보여준다. 극도의 수치스러운 푸에블로호 사건, 판문점에서의 북한 도끼 만행 사건, 구 소련 극동군의 미사일에 맞아 시퍼런 냉해에 처박힌 한국 민항기 사건,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미국은 한반도의 민감한 지정학적 위치, 북한이라는 극도의 힘든 변수, 한국 국내 경제 파동을 고려해서 언제나 조용한 대처를 해왔다. 오죽하면 열 받은 한국 지도자들이 미국을 ‘종이 호랑이'라고까지 비하해서 불렀겠는가?
요점은 미국은 상당히 신중한 동맹국이며, 절대로 한국의 경제와 사회를 파괴하는 정책을 독단적으로 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유익한 동맹을 왜 매도하며, 자주국방이라는 미명하에, 미국의 자존심과 능력을 저해하는 전쟁시 작전통제권 환수 계획 등을 사전에 치밀한 조사, 양국간 대화 없이 계속 거론하는가?
한국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미국과의 동맹을 주축으로 관계를 개선하고, 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인 일본과 전략적인 대화관계를 확보하며, 중국으로부터 내심 존경받는 한국이 되면 된다. 균형자 역할은 한국인의 합리적 전략적 두뇌와 정직하고 세련된 의식이 드러날 때 저절로 이루어진다.
한미 동맹은 1945년 이래 전쟁 중 가장 많은 살상자를 낸 6·25전쟁의 산물이다. 1953년 체결돼 반세기가 넘는 현재까지 한국의 안보와 안정의 기반을 제공한 공신 같은 동맹이었고, 인류의 군사 동맹 역사상 가장 공고한 동맹 중의 하나로 지칭돼 왔다.
장비, 훈련, 전투경험의 모든 면에서 갓난 아기 같았던 한국군은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현대식 군으로 성장했다. 경제, 사회 발전이 눈부셔 고구마같이 뭉툭한 모토로라 휴대폰을 사용하는 내가 서울에 가면 촌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다. 평택미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과격 시위대가 전경을 두들겨 팰 정도(!)로 정치의 민주화도 놀랍기만 하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강조하는 자주국방론이 전연 생경한 개념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 '자주 국방론'을 들먹일 때마다 가슴 밑바닥이 서늘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자주 국방은 그 어느 국가도 이룩할 수 없는 공허한 개념이다. 세계 유일의 군사 초강국인 미국조차 자주 국방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유럽 연합과 나토연맹을 통해 공조를 취한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한국을 양대 축으로 동맹과 협조를 도모한다. 21세기 어느 한 나라가 자주 국방을 한다고 안간힘을 쓴다면 국제 사회가 “아, 그 나라 허비할 돈도 많고 머리도 전략적이지 못한 지도자들 밑에 있나 보다" 하고 비아냥거리감밖에 될 게 없다.
둘째, 작은 국가가 자주국방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핵무기와 핵무기를 탑재해 운반할 수 있는 단·중·장거리 미사일 능력을 확보하게 되면 다른 국가들의 집적거림이나 위협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주국방은 아니다. 일종의 고슴도치 방위 수단일 뿐이다. 대량살상 무기를 없애자는 논의가 강한 지금, 한국이 이 길을 택할 수는 없다.
셋째, 현재도 그렇거니와 통일 이후, 한반도는 정치체제와 이념이 다른 중국과 국경을 나누는 최근접 이웃이 된다. 중국의 힘이 세지면, 한반도는 자주 중국의 조공국으로 하락했다. 이런 역사를 역사기록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자주국방을 부르짖을 때가 아니라 어느 국가가 가장 영토나 문화를 침식함이 없이 한국을 지원하는 동맹이 될 수 있는가를 따져야 할 시점이다. 분명한 점은 한반도가 관련된 영토 분쟁과 전연 무관한 국가는 미국일 뿐이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해 있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은 유혈 사태를, 있기 때문에 불편한 점들과 나란히 저울질해봐야 한다.
넷째, 만일 미국이 군사 초강국이 아니었더라면, 대다수의 국제 갈등을 방치했거나 개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분쟁 개입역사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과의 동맹이 한반도의 평화에 위협을 준다고 상상하거나 믿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한반도 유혈 사례는 전혀 다른 진실을 보여준다. 극도의 수치스러운 푸에블로호 사건, 판문점에서의 북한 도끼 만행 사건, 구 소련 극동군의 미사일에 맞아 시퍼런 냉해에 처박힌 한국 민항기 사건,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미국은 한반도의 민감한 지정학적 위치, 북한이라는 극도의 힘든 변수, 한국 국내 경제 파동을 고려해서 언제나 조용한 대처를 해왔다. 오죽하면 열 받은 한국 지도자들이 미국을 ‘종이 호랑이'라고까지 비하해서 불렀겠는가?
요점은 미국은 상당히 신중한 동맹국이며, 절대로 한국의 경제와 사회를 파괴하는 정책을 독단적으로 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유익한 동맹을 왜 매도하며, 자주국방이라는 미명하에, 미국의 자존심과 능력을 저해하는 전쟁시 작전통제권 환수 계획 등을 사전에 치밀한 조사, 양국간 대화 없이 계속 거론하는가?
한국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미국과의 동맹을 주축으로 관계를 개선하고, 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인 일본과 전략적인 대화관계를 확보하며, 중국으로부터 내심 존경받는 한국이 되면 된다. 균형자 역할은 한국인의 합리적 전략적 두뇌와 정직하고 세련된 의식이 드러날 때 저절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