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가버린 대통령을 바라보며
2007.01.14 09:51
갈 데까지 가버린 대통령을 바라보며
[사설: “갈 데까지 가버린 대통령을 바라보며,” 조선일보, 2006. 12. 22, A35쪽.]
노무현 대통령이 21일 민주평통 상임위원회에서 막말을 거칠게 쏟아 놓았다.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초 예정된 20분을 넘겨 1시간 10분간이나 대통령 이야기는 계속됐다. 대통령은 이날 두 주먹을 불끈 쥐는가 하면 연단을 내리치기도 했다. 2002년 대선 때 유세 모습 그대로였다.
대통령은 “자기들 나라 자기 군대 작전통제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것이냐. 그래서 작통권 회수하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 내고, 자기들 직무유기 아니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6·25 전쟁에 참전했던 역대 국방장관을 비롯한 국군 원로들이 전작권(戰作權) 단독행사를 고집해 한미 연합사가 해체되게 해서는 나라 안보의 밑바탕이 흔들릴 것이라 걱정돼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전작권 문제에 대해 반대 성명을 냈던 일을 끄집어내어 이렇게 노골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당시 대통령은 군 원로들의 면담을 거절하면서도 자신의 대통령 선거를 도왔던 노사모 회원들을 하루에 두 번씩 만났다. 나이 여든이 넘은 군 원로들은 대통령을 만날 수 없으니 한여름 땡볕에 나가 전작권 환수 반대 시위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나라의 안위(安危)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향해 “알고도 딴 소리 하는 건지, 몰라서 딴 소리를 하는 건지, 모든 것이 노무현 하는 것 반대하면 다 정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비웃었다. 대통령은 여기서 더 나아가 “흔들어라 이거지요. 난데없이 굴러들어 온 놈”이라는 비속어까지 끌어다 퍼부었다.
노 대통령의 말을 들은 전 연합사 부사령관이 “지금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울분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 군 원로의 말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의 이날 이야기를 전해들은 국민들도 “갈 데까지 다 갔구나” 하는 착잡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은 “미국이 ‘나 나가요’ 하면 (국민이) 다 까무러치는 판” “미 2사단이 (후방으로) 빠지면 다 죽는다고 국민들이 와들와들 사시나무처럼 떠는 나라”라면서 “(국민들이 이러는데) 어느 한국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이 미국 공무원들과 대등하게 대화를 할 수 있겠느냐”고 오늘의 한미관계 이상(異常)을 국민 수준 탓으로 돌렸다.
대통령은 또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어떤 사람은 걔 완전히 돌았어 이런다. 그래서 멀쩡할 걸 이러면 그 날로 박살이 난다”며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이러면서 “상대방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한마디로 관용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서학(西學)(천주교)한다고 수백 명씩 잡아 죽이고, 마침내 1866년경에는 8000명을 잡아 죽였지 않습니까”라고 관용이 없는 우리 전통의 예를 들면서 “우리나라 역사에서 그렇습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정부가 안보 안보하고 계속 나팔을 불어야 안심하는 국민 의식과 인식 때문에 참 힘들다”면서 “북한이 쏜 미사일이 한국으로 날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인데… 정부가 나서서 (북한이 미사일 쐈으니) 라면 사십시오. 방독면 챙기십시오라고 해야 되느냐”고 국민을 답답해했다. 대통령은 또 “장관 지명해서 국회 청문회 내보내면 ‘6·25가 남침이오 북침이오’ 묻거든요”라면서 “제가 6·25전쟁이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할 정도의 사고 방식이라는 것인데, 저는 제 정신입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미국에서 ‘큰일 났다’고 하는 사람들은 ‘노무현 길들이기’ 프로그램에 들어있기도 하지 않았겠느냐. ‘천지도 없이 겁 없는 대통령이 된 모양인데, 맛 좀 보여야지’ 이래 가지고, ‘한미관계가 나빠진다, 나빠진다’ 계속 신호 보내 가지고 노무현 기 좀 꺾어라 이거 아니겠느냐”고 미국이 대통령을 길들이려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여론조사 보니까 네 편, 내 편 할 것 없이 전부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한다. 양심껏 소신껏 뭐 하라 쌌는데 양심껏 소신껏 하면 판판이 깨진다”고 국민 여론을 비난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날의 대통령처럼 국민을 이렇게 공개적이고 노골적으로 모욕하고 비하하고 깔본 대통령은 없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날의 대통령처럼 국가 원로들을 조롱하고 무시하고 제 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짓이긴 대통령은 없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날의 대통령처럼 우방국에 대해서 확실하게 적개심을 드러낸 대통령은 없었다. 이날 대통령의 무차별 공격을 유일하게 비켜갈 수 있었던 행운아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뿐이었다. 국민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다가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