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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로 가는 혁명


[류근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로 가는 혁명," 조선일보, 2019. 1. 22, A30쪽.]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를 만들겠다." 집권 측이 오늘의 국면을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드러낸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옳은 일'이고, 따라서 '바꿀 수 없는 것'이라 했다. 무슨 뜻인가? 상당수 국민이 이 말의 뜻을 잘 아는 것 같지 않다. 그냥 지금까지 보던 대로의 '정치'가 있는 것으로만 여기는 것 같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란 결국, 자기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혁명을 하겠다는 뜻이다. 무섭고도 어마어마한 말이다. 그러나 양상(樣相)에선 낮은 강도(强度)의 혁명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이 '별일 아닌 것'으로 느낀다. 냄비 물이 펄펄 끓을 때라야 비로소 "어, 이런 거였어?" 하고 뒤늦게 놀랄 것이다.

20세기 혁명들에는 공통된 순서가 있었다. 제1막은 선전·선동·의식화를 통해 대중의 마음을 잡는 것이다. 제2막은 공공 부문은 물론 민간 부문과 가정까지도 국가가 침투·간섭·규제하는 것, 그리고 제3막은 사회 전체를 획일화하고 국유화하고 전체화하는 것이다. 이 3막을 꽝하고 완성하는 게 바로 '최종 해결(final solution)'이다. 우리의 경우 이 과정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선전·선동·의식화는 1980년대 이래 우리 사회 곳곳에 굳건한 뿌리를 내렸다. 그 결과 자유주의, 개인주의, 한·미 동맹, 시장경제 대신 종족(種族)적 민족주의, 계급투쟁, 반미친중(反美親中), '우리민족끼리'가 교육·종교·미디어·화이트칼라·문화예술계를 쓸어갔다. 지금은 그런 진지전(陣地戰)에서 나아가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운영을 탈취하는 기동전(機動戰) 단계, 그래서 마침내 대망의 '최종 해결'을 위해 상대방을 '궤멸'시키는 단계다.

공공 부문에선 공영 미디어와 사법부까지 '촛불 국가'로 편입되었다. 교육 현장에선 부모들이 자녀들을 초등학생 때부터 '촛불 국가'에 징발당할지 모른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를 국정(國定)에서 검인정으로 바꾸겠다니 말이다. 외형상으론 물론 검인정이 '민주적'이다. 그러나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검인정인데도 실제로는 '촛불 국가'의 세뇌(洗腦) 도구로 쓰이고 있다. 앞으로는 초등학생들마저 '우리민족끼리' 구호를 부를지 모른다.

민간 부문에서도 '촛불 국가'는 모든 분야에 침투하고 있다. 우선 대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대한항공이 시범 케이스다. 삼성도 오너 기업으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법, 노조와 시민단체가 기업 이사회를 쥐고 흔드는 방법, 그리고 이른바 '사회적 기업'이란 걸 한껏 치켜세우는 방법 등 여러 가지 꼼수가 동원될 것이다.

이 틀어쥐기 과정에선 '명예훼손 의식(儀式)'이 성행(盛行)할 것이다. 다른 소리 하는 것을 '가짜 뉴스'로 낙인하고, 김태우·신재민 같은 고발 행위를 '양아치' '부적응(不適應)' '담력 없는 자' 같은 정신질환으로 몰아치는 수법이 그것이다. 구(舊)소련에서도 사하로프 박사 같은 이견(異見) 제기자들이 정신병동에 수감된 적이 있다.

이 과정이 누적되면 끝내는 '최종 해결'의 일격이 가해질 것이다. 아니, 그것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념 노조는 사업장 밖에서 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선언했다. '양심수 이석기' '위인 김정은' 지지 운동도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이 단계에 이르면 1948년 8월 15일에 세운 대한민국 당초의 대전제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이 나라를 떠받쳐 온 상징 가치들이 모조리 지워지는 판에 더 이상 대한민국이랄 게 뭐가 남아나겠나?

'최종 해결'의 마지막 한 방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그런 정황을 더 이상 인내하지 않고 주한 미군을 김정은과 '북한 비핵화' 없이 엿 바꿔 먹는 것이다. 서울에서 자신이 탄 승용차에 화염병을 던지는 한국인, 미국이 대북 제재를 하는데 전 세계를 돌며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한국, 이런 동맹국 값에도 못 가는 나라에 그가 연연할 이유는 갈수록 퇴색해 왔다. 미국이 빨리 정나미가 떨어져 손 떼게끔 밉상 부리자는 게 그간의 작전 아니었나?

문제는 이런 혁명적 과정에 대해 우리 내부의 항체가 미약하다는 점이다. 대중은 물론 고학력층까지 그저 무덤덤하기만 하다. 무슨 일이 벌어진대도 '설마 어떻게 되겠지'다. 역사의 향방을 결정짓는 건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선택이다. 오늘의 한국인들은 그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남 탓은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21/20190121034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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