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신년 회견에서 "북한이 ICBM(대륙간 탄도탄)을 폐기하고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해서 신뢰가 깊어지면 전체적 비핵화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한동안 들리지 않던 ICBM 얘기가 다시 나와 의아했는데 거의 동시에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궁극적으론 미국 국민의 안전이 목표"라고 말했다. 북이 미국을 겨냥한 ICBM을 폐기하면 미국은 북핵을 현상 유지 선에서 적당히 타협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북핵 위기 초기부터 제기돼온 것이다. 트럼프·김정은 2차 회담을 앞두고 그 얘기가 다시 나오는 것은 심상치 않다.
미국이 북한 비핵화의 목표를 낮추고 있다는 신호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완전, 검증, 불가역적 비핵화(CVID)'라는 국제 합의를 놔두고 FFVD란 용어를 새로 만든 것부터 이상했다. 북한이 싫어한다고 원칙에서 물러서기 시작한 첫 조짐이었다. 트럼프 입에서 '비핵화'란 말은 '북이 더 이상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로 바뀌었다.
작년 5월 트럼프는 북의 단계별 비핵화 요구에 대해 "비핵화 방식은 한꺼번에 일괄 타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일축했었다. 폼페이오도 "북한 비핵화를 잘게 세분화하면 안 된다"며 "우리는 과거에 걸었던 (잘못된) 길을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단계별 비핵화'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비핵화 오리무중'과 같은 뜻이다. 트럼프와 폼페이오는 그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던 폼페이오는 최근엔 "우리는 비핵화가 긴 과정이 되리라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다"고 말을 180도 바꿨다. 그는 "북핵과 미사일의 확장 능력을 줄이기를 원한다"고 했다. 북핵 폐기는 '먼 목적지'이고 당장의 과제는 북핵 동결이라는 것이다. 작년 한때 마치 북핵 폐기가 곧 달성될 듯이 장담하던 그 사람들이 맞느냐는 생각이 든다.
북핵 폐기가 안 되는 것은 한국과 미국이 그에 수반되는 위험을 감수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도 그렇고 국민도 그렇다. 마주 보고 달리는 두 열차의 승부에서 충돌 직전에 기수를 돌릴 측은 김정은이다. 남북한 통틀어 최고 부자(富者)에다 왕(王)인 그는 잃을 것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충돌 직전이 아니라 그 근처에만 가도 기수를 돌릴 수밖에 없다. 체제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아는 김정은이 왜 귀중한 핵을 포기하겠나.
북핵 협상에서 한·미가 번번이 당하는 것은 북이 잘나서가 아니라 선거가 없는 종신 체제이기 때문이다. 대중 인기에 좌우되는 선거는 국가 현안의 실체(實體)가 아니라 잘 포장된 이미지에 큰 영향을 받는다. 대중 정치인들은 '북이 핵 폐기에 응하지 않는다'는 실체를 어쩌지 못하게 되면 그 위에서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에 앞서 마치 무언가 진전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일을 먼저 시작하게 된다.
트럼프는 자신의 선거가 1년 10개월 남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총선이 1년 2개월 남았다. 사실상 코앞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2차 정상회담은 북 핵탄두와 우라늄 농축 시설 신고·검증과 같은 핵심은 건드리지 못한 채 ICBM과 영변 플루토늄 시설 등 지엽적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트럼프는 "믿을 수 없는 환상적 결과가 나왔다"고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 비핵화가 결정적 고비를 넘어섰다"면서 "김정은 위원장 서울 답방으로 평화가 정착된다"고 할 것이다. 실체보다 훨씬 더 멋지고 과장된 이미지를 만드는 포장 작업이다. 대중은 속아 넘어가겠지만 북핵은 그대로다. 핵 인질이 되는 것은 미국민이 아니라 한국민뿐이다.
현 정권 인사들도 '합의에 의한 북핵 폐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안다고 한다. 비핵화는 겉으로 하는 말일 뿐이고 ICBM 폐기 등으로 미국을 달래고 제재 완화로 북을 달래면서 협상을 길게 이어가는 것이 실질적인 목표라고 한다. 자연히 비핵화 성패가 아니라 지지율과 선거에 도움이 되는 남북 이벤트가 관심사다. 말은 절대 안 하겠지만 이들의 진짜 속내는 '북핵 있는 평화'다. 핵에 눌려 사는 평화가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근 들은 얘기 중에는 박한식 미 조지아대 명예교수의 말이 솔직했다. 민주당은 50여 차례 방북한 박 교수를 자신들 편으로 안다고 한다. 그래서 초청 강연회를 열었는데 박 교수는 그 자리에서 "북은 이미 핵 원료, 제조 기술, 제조 경험, 핵탄두를 가졌다. 북 당국이 인민들에게 '우리는 이미 핵 국가이고 세계 열강이 모두 이를 인정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핵은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되지도 않는다.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식으로 절대 비핵화되지 않는다. 북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에게 닥친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 비핵화에 만족하고 제재를 해제하는 단계도 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핵 보유 북한을 받아들일 것이냐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강연을 공개로 시작했다가 당황해 도중에 비공개로 바꿨다. 실체를 가린 포장지를 박 교수가 벗겨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 비핵화의 목표를 낮추고 있다는 신호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완전, 검증, 불가역적 비핵화(CVID)'라는 국제 합의를 놔두고 FFVD란 용어를 새로 만든 것부터 이상했다. 북한이 싫어한다고 원칙에서 물러서기 시작한 첫 조짐이었다. 트럼프 입에서 '비핵화'란 말은 '북이 더 이상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로 바뀌었다.
작년 5월 트럼프는 북의 단계별 비핵화 요구에 대해 "비핵화 방식은 한꺼번에 일괄 타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일축했었다. 폼페이오도 "북한 비핵화를 잘게 세분화하면 안 된다"며 "우리는 과거에 걸었던 (잘못된) 길을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단계별 비핵화'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비핵화 오리무중'과 같은 뜻이다. 트럼프와 폼페이오는 그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던 폼페이오는 최근엔 "우리는 비핵화가 긴 과정이 되리라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다"고 말을 180도 바꿨다. 그는 "북핵과 미사일의 확장 능력을 줄이기를 원한다"고 했다. 북핵 폐기는 '먼 목적지'이고 당장의 과제는 북핵 동결이라는 것이다. 작년 한때 마치 북핵 폐기가 곧 달성될 듯이 장담하던 그 사람들이 맞느냐는 생각이 든다.
북핵 폐기가 안 되는 것은 한국과 미국이 그에 수반되는 위험을 감수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도 그렇고 국민도 그렇다. 마주 보고 달리는 두 열차의 승부에서 충돌 직전에 기수를 돌릴 측은 김정은이다. 남북한 통틀어 최고 부자(富者)에다 왕(王)인 그는 잃을 것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충돌 직전이 아니라 그 근처에만 가도 기수를 돌릴 수밖에 없다. 체제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아는 김정은이 왜 귀중한 핵을 포기하겠나.
북핵 협상에서 한·미가 번번이 당하는 것은 북이 잘나서가 아니라 선거가 없는 종신 체제이기 때문이다. 대중 인기에 좌우되는 선거는 국가 현안의 실체(實體)가 아니라 잘 포장된 이미지에 큰 영향을 받는다. 대중 정치인들은 '북이 핵 폐기에 응하지 않는다'는 실체를 어쩌지 못하게 되면 그 위에서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에 앞서 마치 무언가 진전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일을 먼저 시작하게 된다.
트럼프는 자신의 선거가 1년 10개월 남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총선이 1년 2개월 남았다. 사실상 코앞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2차 정상회담은 북 핵탄두와 우라늄 농축 시설 신고·검증과 같은 핵심은 건드리지 못한 채 ICBM과 영변 플루토늄 시설 등 지엽적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트럼프는 "믿을 수 없는 환상적 결과가 나왔다"고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 비핵화가 결정적 고비를 넘어섰다"면서 "김정은 위원장 서울 답방으로 평화가 정착된다"고 할 것이다. 실체보다 훨씬 더 멋지고 과장된 이미지를 만드는 포장 작업이다. 대중은 속아 넘어가겠지만 북핵은 그대로다. 핵 인질이 되는 것은 미국민이 아니라 한국민뿐이다.
현 정권 인사들도 '합의에 의한 북핵 폐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안다고 한다. 비핵화는 겉으로 하는 말일 뿐이고 ICBM 폐기 등으로 미국을 달래고 제재 완화로 북을 달래면서 협상을 길게 이어가는 것이 실질적인 목표라고 한다. 자연히 비핵화 성패가 아니라 지지율과 선거에 도움이 되는 남북 이벤트가 관심사다. 말은 절대 안 하겠지만 이들의 진짜 속내는 '북핵 있는 평화'다. 핵에 눌려 사는 평화가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근 들은 얘기 중에는 박한식 미 조지아대 명예교수의 말이 솔직했다. 민주당은 50여 차례 방북한 박 교수를 자신들 편으로 안다고 한다. 그래서 초청 강연회를 열었는데 박 교수는 그 자리에서 "북은 이미 핵 원료, 제조 기술, 제조 경험, 핵탄두를 가졌다. 북 당국이 인민들에게 '우리는 이미 핵 국가이고 세계 열강이 모두 이를 인정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핵은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되지도 않는다.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식으로 절대 비핵화되지 않는다. 북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에게 닥친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 비핵화에 만족하고 제재를 해제하는 단계도 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핵 보유 북한을 받아들일 것이냐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강연을 공개로 시작했다가 당황해 도중에 비공개로 바꿨다. 실체를 가린 포장지를 박 교수가 벗겨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