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권력' 된 인권법연구회 자진 해체해야
[최원규, "'사법 권력' 된 인권법연구회 자진 해체해야," 조선일보, 2019. 1. 24, A31쪽; 사회부 차장.]
7개월을 끈 검찰의 법원 수사가 끝나가고 있다. 검찰은 추가 수사 대상이 남았다고 하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 기소로 사건은 막을 내릴 것이다. 이 사건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부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쌓여온 폐단을 해소해야 한다"며 검찰에 문을 열어준 수사였다. 그사이 법원은 동료 법관을 탄핵해야 한다는 판사들, 그런 주장을 하는 판사를 오히려 탄핵해야 한다는 판사들로 갈라져 큰 내홍을 겪었다. 미래를 열겠다고 검찰을 끌어들였는데 미래는 없고 온통 과거 얘기뿐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법원이 과거와 무엇이 달라졌는지도 알 수 없다.
굳이 변화를 찾자면 사법부 주류였던 엘리트 법관들이 물러나고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신(新)주류로 등장한 것뿐이다. 대법관·헌법재판관부터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 요직, 자문기구인 법관대표회의까지 연구회 출신들이 대거 진출했다. 연구회 회장을 지낸 김 대법원장이 대법원장이 될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촉발하고, 이어진 법원 내부 조사 과정을 주도하고, "국민과 함께 고발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 연구회 소속 판사들이었다. 검찰을 끌어들인 게 결국 사법부 주류 세력 교체를 위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눈치 빠른 사건 당사자들이 이런 변화를 놓칠 리 없다. 요즘 서울 서초동 변호사들을 만나면 "사건 의뢰인들이 판사가 인권법연구회 출신인지부터 묻는다"고 한다. 열이면 여덟 정도가 그런 말을 한다. 과거엔 판사의 학맥·인맥을 따졌는데 이젠 특정 성향부터 묻는다는 것이다. 사법부는 공정한 판결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정하게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재판에서 절차를 중시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판결에 판사 성향이 개입될 수 있다고 소송 당사자들이 느끼는 건 심각한 문제다. 누가 재판을 신뢰하겠나.
그렇다면 이 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자중해야 할 텐데 오히려 특정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재판이 곧 정치"라고 하고,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연루된 법관들의 탄핵을 청원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글을 올린 판사는 탄핵에 대한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시민의 힘으로 기적이 일어나길 기원한다"고 했다. 누구보다 여론에 휘둘리지 말아야 할 판사가 법원 내부 문제에 '외부 세력'을 끌어들이자고 나선 것이다. 사법부 독립을 해쳤다며 전임 양승태 사법부를 적폐로 몰아붙인 이들이 이렇게 완장 찬 홍위병식 언행을 하는 건 또 다른 의미의 적폐 아닌가.
이 연구회 회원은 46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엔 순수한 뜻으로 모임에 가입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회가 '사법부 권력'이 된 지금 그들의 순수성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이 연구회 출신이 현 정권 초반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됐는데 그 후임도 이 모임 출신이 될 거란 소문이 요즘 법조계에 파다하다. 그런 얘기 들으면서 판사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나. 좋은 자리 가려고 이 모임을 기웃거리는 판사가 나올 테고 결국 이 모임은 사(私)조직처럼 변해갈
가능성이 크다. 그럴수록 사법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이 연구회는 대법원에 등록된 연구 모임이다. 이들을 강제로 해산하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말 이들이 순수한 뜻에서 모임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자진 해체를 고민할 때가 됐다고 본다. 선진국 사법부에 이렇게 권력화된 특정 서클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해체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