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권위주의'라는 역설의 시대
[류근일, "'운동권 권위주의'라는 역설의 시대," 조선일보, 2019. 2. 19, A30쪽.]
문재인 대통령의 기자회견 때 한 기자는 "이 정부의 자신감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통령이 "우리가 가는 길은 옳다. 그래서 정책을 바꿀 수 없다"고 하는 데 대해 물은 것이다. 원전 폐기와 소득주도 성장을 누가 뭐라던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외곬 오기. 이 우김질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비단 정책에서만 그런 "내 배 째라" 쇳소리가 나는 게 아니다. 손혜원 의혹을 둘러싼 논란, 김태우·신재민 공익 제보를 둘러싼 시비, 김경수 유죄판결문에 담긴 내용 등, 집권 측의 도덕성 문제가 걸린 시리즈물(物)에서도 이 정부는 "너희는 짖어라. 우리는 간다" 식이다. 자신감을 넘는 유아독존의 경지다. 이 일방성의 근거는 정말 무엇일까? 그건 이 정부가 이미 권위주의화(化)하고 있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권위주의? 그런 건 우 쪽에만 있고 좌 쪽엔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천만에다. 1981년, 로버트 알테마이어(Altemeyer) 하버드대학 교수는 우파권위주의 지수(指數)라는 걸 만들었다. 보수 우파는 경직되고 독단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후 루시안 콘웨이(Conway) 몬태나대학 교수가 똑같은 방법으로 좌파권위주의 지수라는 걸 만들었다. 좌파권위주의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우파권위주의 못지않게 경직되고 독단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좌우를 막론한 권위주의 증후군은 어떤 것일까? 스티븐 월트(Walt) 케네디 스쿨 교수는 2017년 7월 27일 자 포린 폴리시 인터넷판에 '권위주의 대두 10대 징표'라는 것을 제시했다. 이걸 가지고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 방식을 비판했다. 그 중 7가지는 우리 경우에도 해당할 듯싶다. 우선 미디어에 대한 협박이다. 한국의 자칭 '진보'도 구글에 몰려가 '가짜 뉴스'를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요즘엔 '중국식 사이버 검열'로 갈 것이란 걱정이 나돌고 있다.
둘째는 관료, 군(軍), 보안기관을 자기들 쪽으로 정치화하는 것이다. 한국 자칭 '진보'도 행정권과 공권력 행사는 물론 사법행위도 '촛불' 정치행위의 하나로 일원화하려는 저의를 드러냈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법정 구속되자 집권 측은 '양승태 계열 법관'을 재판에서 배제하라며, 사법부 독립 아닌 '촛불'에 의한 법관 탄핵을 겁박하고 나섰다.
셋째는 무차별 불법 사찰이다. 김태우 전 수사관은 청와대가 무엇이 저렸는지 특검의 드루킹 수사 상황을 알아보려 했다고 폭로했다. 흑산도 공항 건설에 반대한 민간위원들도 사찰했다고 했다. 운동권은 과거 자신들을 사찰하고 잡아가고 감방에 가두던 상대방을 극복한 게 아니라 그대로 닮아버린 꼴이다.
넷째는 불공정한 법 집행이다. 김태우 수사관은 청와대가 현 정부 유력인사들에 대한 비위 보고서는 묵살하면서 자기에 대해서는 공무상 비밀 누설을 적용하려 한다고 항변했다. 김 수사관 자신은 권부(權府)의 '비리'를 폭로한 것이지 '비밀'을 누설한 게 아니라고 했다. 다섯째는 대법원에 자기편 쌓기다. 이 정부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을 갖다 앉혔다. 삼권 분립 아닌 3권 총괄(總括)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여섯째는 제도를 부정(不淨)하게 조작하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김경수 피고인이 드루킹의 공범이라고 했다. 전 정권 국정원이 댓글 공작을 했다 해서 잡아넣은 이 정권 사람들이 캠프 차원에서 킹크랩을 돌려가며 여론 조작을 했다니, 1심대로라면 '내로남불'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일곱째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악마로 몰아치는 것이다. 운동권은 반대자들을 반민주-반민족-반민중-반통일-반평화-사대매국-매판자본으로 악마화하다가 근래엔 이를 '적폐'로 일괄해 '궤멸'하겠다고 했다.
'진보' 권력의 자신감이란 결국 이상 7가지 권위주의 증후군이 보인 '오만과 편견'인 셈이다. 정권 교체보다는 장기집권, 영구집권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의욕은 2020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그들에게 개헌(改憲)선을 넘는 의석을 주느냐 안 주느냐로 결판날 것이다.
자유한국당 대표 선
출은 그래서 중요하다. 상당수 유권자가 운동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지만 선뜻 자유한국당 쪽으로 넘어오진 않고 있다. 이대로라면 자유한국당은 개헌 저지선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세상은 권위주의를 넘어 전체주의로 갈 것이다. 이 최악의 가능성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자유한국당이 얼마나 적실(適實)한 리더십을 창출할 수 있을지 지켜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