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2008.10.22 10:13
[김대중, “노무현씨의 역지사지(易地思之),” 조선일보, 2008. 10. 04, A34쪽; 조선일보 고문.]
권력에서 물러난 전직 대통령의 발언에 무게를 둘 필요는 없다. 세상살이에 관한 이야기라면 예의상 들어주겠지만
현실정치에 관한 것이라면 넋두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러난 대통령 노무현씨가 지난 1일 한 강연에서 쏟아낸 말들은
그런 의미에서 넋두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의 강연은 대부분 재임시 자신의 대북정책에 대한 자랑으로 가득찼고 북한의 입장에 대한 옹호 내지 이해로 일관했다.
그리고 그 ‘잘난’ 대북정책을 승계하지 않는 이명박정부에 대한 힐난과 야유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노무현의 대북 난장(亂場)’이었다.
그래서 그의 발언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그가 더 이상 이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다.
그러나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의 발언 중 ‘역지사지(易地思之)’에 관한 부분이다. “역지사지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북한의 처지에서 생각해봅시다.” 그러면서 그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 대해,
한국의 대북 송전(送電)에 대해, 북한이 어떤 불안과 의구심을 가졌을 것인지 “처지를 바꾸어 놓고 생각해보면
사리(事理)를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다. 역지사지란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기에 갈등의 폭과 정도를 줄이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이다.
한 나라의 경영을 책임진 대통령도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약자나 불우한 계층의 입장에서 사물을 살피는 것은 대통령의 할 일 중 하나다.
그러나 국가안보와 외교의 문제에서는 누구도 역지사지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가 외교.안보의 문제에서 역지사지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위해(危害)를 가하거나 외교적 손실을 입힐 사안을 놓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제로섬 관계가 분명한 사안에서는 역지사지란 곧 양보와 패배로 직결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독도문제를 놓고 일본의 처지에서 역지사지한다면 독도를 일본에 내줄 수도 있다는 것이 된다. 불량식품 문제에서 중국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우리 국민은 병들어도 좋다는 말인가? FTA를 놓고 미국의 입장에서 문제를 본다면 우리는 FTA를 할 이유가 없다. 역지사지가 외교협상과 안보 논의에서 전술의 하나로 동원될 수는 있다. 밀고 당기는 협상과정에서 역지사지하는 척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역지사지가 외교.안보 논의의 본질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 무엇을, 왜 역지사지해야 한다는 것인가. 북한에 식량을 지원했을 때 그것이 군부로 먼저 흘러들어 가는 것은
‘선군정치’ 상황에서 불가피하다는 것을 역지사지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러나 노무현씨 말대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것을 역지사지한다는 것은
경천동지할 일이다. 북한은 우리의 잠재적 주적(主敵)이다. 노씨는 이 강연에서도 주적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DMZ에 대한민국 병력과 화력의 대부분을 포진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것이다.
북한도 남쪽을 겨냥해 장사정포 등 북한 무력의 거의 전부를 밀어넣고 있다. 우리를 침략한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북한이다. 주적은 개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북의 전쟁수행 능력 중 우리를 가장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당연히 핵무기다. 그래서 노무현정권도 ‘한반도 비핵화’까지 던져버리지는 못했다.
더구나 북은 실제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켰던 전과자다. 그런 북한에 대해, 북의 핵무기에 대해 우리가 긴장의 끈을 결코 놓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노무현씨는 북핵을 북한의 처지에서 이해하자고 했다. 제1차적 피해자가 바로 우리이고, 자칫 대한민국의 멸망을 가져올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북핵에 대한 역지사지는 우리에게 반(反)안보적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역지사지를 강조할 양이면 그는 왜 북핵문제를 한국과 한국인의 처지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그는 왜 이명박정부에는 역지사지의 혜택(?)을 주지 않는가? 대북(對北) 역지사지는 한계에 왔으며, 메아리 없는 일방적 역지사지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리고 전임 CEO가 한 약속 때문에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후임 CEO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전임의 오만은 7개월이 지나도 여전하다.
권력에서 물러난 전직 대통령의 발언에 무게를 둘 필요는 없다. 세상살이에 관한 이야기라면 예의상 들어주겠지만
현실정치에 관한 것이라면 넋두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러난 대통령 노무현씨가 지난 1일 한 강연에서 쏟아낸 말들은
그런 의미에서 넋두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의 강연은 대부분 재임시 자신의 대북정책에 대한 자랑으로 가득찼고 북한의 입장에 대한 옹호 내지 이해로 일관했다.
그리고 그 ‘잘난’ 대북정책을 승계하지 않는 이명박정부에 대한 힐난과 야유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노무현의 대북 난장(亂場)’이었다.
그래서 그의 발언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그가 더 이상 이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다.
그러나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의 발언 중 ‘역지사지(易地思之)’에 관한 부분이다. “역지사지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북한의 처지에서 생각해봅시다.” 그러면서 그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 대해,
한국의 대북 송전(送電)에 대해, 북한이 어떤 불안과 의구심을 가졌을 것인지 “처지를 바꾸어 놓고 생각해보면
사리(事理)를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다. 역지사지란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기에 갈등의 폭과 정도를 줄이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이다.
한 나라의 경영을 책임진 대통령도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약자나 불우한 계층의 입장에서 사물을 살피는 것은 대통령의 할 일 중 하나다.
그러나 국가안보와 외교의 문제에서는 누구도 역지사지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가 외교.안보의 문제에서 역지사지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위해(危害)를 가하거나 외교적 손실을 입힐 사안을 놓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제로섬 관계가 분명한 사안에서는 역지사지란 곧 양보와 패배로 직결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독도문제를 놓고 일본의 처지에서 역지사지한다면 독도를 일본에 내줄 수도 있다는 것이 된다. 불량식품 문제에서 중국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우리 국민은 병들어도 좋다는 말인가? FTA를 놓고 미국의 입장에서 문제를 본다면 우리는 FTA를 할 이유가 없다. 역지사지가 외교협상과 안보 논의에서 전술의 하나로 동원될 수는 있다. 밀고 당기는 협상과정에서 역지사지하는 척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역지사지가 외교.안보 논의의 본질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 무엇을, 왜 역지사지해야 한다는 것인가. 북한에 식량을 지원했을 때 그것이 군부로 먼저 흘러들어 가는 것은
‘선군정치’ 상황에서 불가피하다는 것을 역지사지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러나 노무현씨 말대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것을 역지사지한다는 것은
경천동지할 일이다. 북한은 우리의 잠재적 주적(主敵)이다. 노씨는 이 강연에서도 주적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DMZ에 대한민국 병력과 화력의 대부분을 포진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것이다.
북한도 남쪽을 겨냥해 장사정포 등 북한 무력의 거의 전부를 밀어넣고 있다. 우리를 침략한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북한이다. 주적은 개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북의 전쟁수행 능력 중 우리를 가장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당연히 핵무기다. 그래서 노무현정권도 ‘한반도 비핵화’까지 던져버리지는 못했다.
더구나 북은 실제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켰던 전과자다. 그런 북한에 대해, 북의 핵무기에 대해 우리가 긴장의 끈을 결코 놓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노무현씨는 북핵을 북한의 처지에서 이해하자고 했다. 제1차적 피해자가 바로 우리이고, 자칫 대한민국의 멸망을 가져올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북핵에 대한 역지사지는 우리에게 반(反)안보적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역지사지를 강조할 양이면 그는 왜 북핵문제를 한국과 한국인의 처지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그는 왜 이명박정부에는 역지사지의 혜택(?)을 주지 않는가? 대북(對北) 역지사지는 한계에 왔으며, 메아리 없는 일방적 역지사지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리고 전임 CEO가 한 약속 때문에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후임 CEO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전임의 오만은 7개월이 지나도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