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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폭력 위임한 적이 없다

2009.01.29 15:17

관리자 조회 수:1088 추천:101


[박효종, “우리는 국회에 폭력을 위임한 적이 없다,” 자유기업원, 2009. 1. 12; 미래한국, 2009. 1. 17, 4쪽; 서울대교수.]

세계적인 스캔들이 될 정도로 연말부터 시작하여 연초까지 이어져온 우리 국회의 폭력성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것은 가뜩이나 3류 정치로 일컬어져 온 한국정치를 몇 등급 떨어뜨리는 저급한 사태였다. ‘폭력국회’란 그 자체로 형용 모순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폭력을 행사하도록 위임한 적이 없다. 면책특권이라고 하더라도 국회에서의 발언에 해당되는 것일 뿐, 폭력에 관한 면책특권은 아니다.

언론에서는 국회라는 곳이 여당과 야당의 상호작용만으로 이루어지는 곳으로 보고 있으나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그곳은 입법부와 국민간의 관계라는 의미가 크다. 즉, 국회의 의석을 가진 여야 간에 합의가 이루어졌건,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건, 국민들은 언제나 두 눈을 부릅뜨고 의정 활동을 평가하고 판단을 한다.

의회는 서로 논의와 토론을 벌이고 결정을 내리고, 법과 정책을 만드는 기능을 주목적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은 물론 있을 수 없고 폭력적인 언어조차 금물이다. 국회 경위가 있다고는 하나 그들은 국회의원들 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침입과 간섭을 막기 위한 것이다. 또 국회의원들은 그 하나하나가 헌법기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폭력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이다. 국회의원들이 심의와 토론은 방송국에서 이루어지는 심야토론에 나가서 하고 정작 국회의사당에서는 폭력을 행사했다면, 모순 중에 그런 모순이 없다. 국회의사당이 방송국의 심야토론장보다 덜 엄숙하고 덜 신성한 곳이란 말인가.

영어로 ‘sacrilege’로 표현되는 ‘신성 모독’이 세속화된 민주사회에서 너무 강한 표현이라고 한다면, ‘국민 모독’이라고 해야 옳다.

다수당과 소수당이 끝내 뜻이 맞지 않다면 ‘불일치하기로 합의한다’를 해야 한다. 합의는 의견이 같은 것에 대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일치하는 데에서도 가능하다. ‘합의이혼’이 바로 그러한 전형적인 사례가 아닌가. 사실 소수당이란 국민들로부터 충분한 신임을 받지 못해 소수당이 된 것이니, 충실한 의정활동을 통해 민심을 잡아 다음번 선거에서 다수당이 되도록 노력하고 또 다수당이 된 다음 법안 개정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어떻게 자신의 뜻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세상의 종말’이 온 것처럼 이성을 잃은 광인(狂人)처럼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항의를 한다고 해도 국회의원들만이 할 수 있는 품위 있는 방법이 있다. 고전적으로는 의사진행방해발언이 그것이다. 단식을 할 수도 있고 삭발을 할 수도 있으며 또 사표를 제출할 수도 있다. 이것들은 물론 절박한 항의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평화로운 것이기에 국회의 품위를 훼손하지 않는 것으로 용인될 수도 있다.

이미 일어난 이 폭력적인 사태는 아무리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결코 좌시할 수 없다. ‘폭력국회’는 ‘폭력가정’과 같다. 폭력이 습관화되면 어떤 사태로 발전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폭력가정의 시작도 처음에는 사소한 손찌검으로 시작하지만, 갈수록 흉악해져서 살인 지경까지 이를 수 있다. 이번에는 해머와 쇠톱으로 시작했으나, 그냥 내버려두면 야구 방망이와 회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폭력의 확대재생산’이란 그런 것이다.

사실 이번 국회의 폭력성이 쇼킹한 것은 그전에는 기껏해야 국회에서 이부자리 펴들고 잠을 자는 농성에 불과했지만 이번에는 온갖 무기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국회에서 의석을 가진 정당이 되려면 해머를 사용하는 목수와 전기톱을 사용하는 전기공들을 다수 확보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번 사태를 결코 잊지 않고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한다. 또한 국민소환제와 같은 제도도 강구해야 한다. 국회윤리위원회에만 맡길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민의의 전당에서 많은 불미한 일들이 있어도 그리스인들이 ‘레테강’이라고 불렀던 ‘망각의 강’에 던져왔다. 국회에서 생사결단을 하고 포악하게 싸우더라도 여야화해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고소 등 법적인 절차를 취하해 버리고 심지어 서로 웃으며 상대방 칭찬까지 아끼지 않으니, 정말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며, 국민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이번만은 그럴 수 없다. 조폭의 폭력도 아니고, 운동선수의 폭력도 아니며, 있어서는 안 되는 금기인 입법자의 폭력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국민이 용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레테강’에 던지기보다는 그 ‘레테(lethe)’ 를 다시 살리는 ‘알레테이아(aletheia),’ 즉 그리스인들이 ‘진실’이라고 불렀던 것의 관점에서, 단죄와 책임추궁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국민들도 대의민주주의의 폭력성을 교정한다는 차원에서 직접민주주의의 주인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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