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에서 오늘의 반일 캠페인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치사 주제는 '민족 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이었다. 이 혁명은 2019년 하반기에 더는 얼렁뚱땅 분식할 수 없는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냈다. 외형상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의 좌우 논쟁처럼 비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할 것인가 타파할 것인가?" 하는 내전(內戰) 논리로 치닫고 있다는 게 더 적실한 설명일 것이다.
이제는 양쪽이 다 모호하고 장식적인 용어로 상황의 본질을 흐릴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고 이런 걸 하려 한다"며 정식으로 밝히고 싸우는 게 옳을 듯싶다. 어차피 언젠가는 만천하에 드러나고야 말 일이다. 이쯤 됐으면 이제는 각자 위치를 정직하고 분명하게 정의(定義)해야 한다.
한국 내전의 한쪽 선수 586 운동권은 요즘 자신들의 노림수를 전보다는 훨씬 선명하게 표출하고 있다. 커밍아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이 협력하면 일본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고 했다. 한·미·일 3각 동맹을 떠나 남·북·중 3각 연대로 가겠다는 함축이다. 이것은 민주·민족·민중·정의·평화·평등 운운하던 그간의 허울 좋은 수사학보다는 훨씬 직설적인 자기 고백이다. 투쟁 방법과 관련해서도 그들은 '죽창' '의병' '토착 왜구' 같은 격렬한 혁명적 정서를 감추지 않는다.
이런 100년 전 척양(斥洋), 척화(斥和), 부청멸양(扶淸滅洋·청나라를 받들어 서양을 멸하자던 의화단 구호)의 쇄국적 반동의 재등장 앞에서 한국 보수 정계는 뿌연 안갯속에 잠겨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무감각, 무심, 나태, 안일로 일관했다. 이게 조지 오웰이 그린 전체주의 혁명이라는 사실조차 몰랐고, 그런 혁명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기껏 "우리도 좌(左) 클릭 할게요" "이제부턴 우파 안 하고 중간파 할게요" 등등의 얄팍한 기회주의와 겁먹은 영합주의가 다였다. 이런 어정쩡함 속에서 기성 보수 야당은 2020 총선을 치르게 되었다. 그 선거에서 그들은 과연 승리는 고사하고 소수파로나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대로 가면 어림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혁명꾼들의 수(手)가 10단이라면, 기성 보수 정파의 수는 1단도 못 되는 까닭이다. 보수 야당은 의회주의·법치주의·원내중심주의만은 모범생처럼 잘 지킨다. 그러나 극렬 혁명꾼들은 그런 것을 최대한 활용은 하되 거기 머물진 않는다. 그들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반칙, 꼼수, 거짓 선동(미국 쇠고기 먹으면 뇌 송송 구멍 탁), 가짜 뉴스(정유라는 박근혜 딸), 경찰 두들겨 패기(민노총), 홍위병 폭거, 킹크랩 여론 조작, 친일 프레임 등 온갖 수법을 다 구사한다. 기성 보수는 그런 점에선 혁명꾼들의 맞수가 되지 못한다. 그저 "규정대로 선거운동이나 열심히 하면 되겠지" "다른 방법 뭐가 있나?" 하며, 죽었다 깨어나도 역동적 체질 변화는 할 줄 모른다.
우파 정계는 그래서 곧 러시아 부농(富農)들처럼 비참하게 숙청당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밀알 한 알처럼 떨어져, 죽어, 썩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고난과 부활'의 극적 과정을 제대로 밟아야 한다. 기성 보수의 관료적 타성을 뛰어넘어, 제도 속 활동에만 갇히지 말고 "혁명에는 혁명적으로 대응한다"는 3차원적 자세로, 그야말로 혁명적 변신을 해야 한다. "혁명은 직업 혁명가나 하는 것이지 우리 같은 귀족 자제(子弟)가 그걸 어떻게?"라고 한다면 그런 보수는 역사의 무대에서 닥치고 꺼지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혁명적 변신을 수행할 것인가? 출발점은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이 정말 망할 것"이라고 하는 처절한 인식을 하는 것이다. 망조(亡兆) 앞에서 진지하게 비관할 줄 아는 마음가짐만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다. "설마 망하랴…" 하는 얌체 같은 공짜 발상(發想)으로는 진짜로 망하고, 망해 싸다.
이 점에서 지난 '8·15 태극기 연합 집회'를 전후해 나온 "대한민국과 주사파,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는 호소문은 곱씹어볼 만했다. 황교안·나경원 자유한국당은 이런 근본적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황교안 대표의 광복절 담화문은 잘사는 나라, 행복한 나라를 대망했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 전에 나라가 망할 수 있다면? 지금은 그래서 장밋빛 소망에 앞서 피를 토하는 자유 레지스탕스 출정가부터 불러야 한다. 전체주의 혁명꾼들의 죽창가에 맞서.
이제는 양쪽이 다 모호하고 장식적인 용어로 상황의 본질을 흐릴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고 이런 걸 하려 한다"며 정식으로 밝히고 싸우는 게 옳을 듯싶다. 어차피 언젠가는 만천하에 드러나고야 말 일이다. 이쯤 됐으면 이제는 각자 위치를 정직하고 분명하게 정의(定義)해야 한다.
한국 내전의 한쪽 선수 586 운동권은 요즘 자신들의 노림수를 전보다는 훨씬 선명하게 표출하고 있다. 커밍아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이 협력하면 일본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고 했다. 한·미·일 3각 동맹을 떠나 남·북·중 3각 연대로 가겠다는 함축이다. 이것은 민주·민족·민중·정의·평화·평등 운운하던 그간의 허울 좋은 수사학보다는 훨씬 직설적인 자기 고백이다. 투쟁 방법과 관련해서도 그들은 '죽창' '의병' '토착 왜구' 같은 격렬한 혁명적 정서를 감추지 않는다.
이런 100년 전 척양(斥洋), 척화(斥和), 부청멸양(扶淸滅洋·청나라를 받들어 서양을 멸하자던 의화단 구호)의 쇄국적 반동의 재등장 앞에서 한국 보수 정계는 뿌연 안갯속에 잠겨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무감각, 무심, 나태, 안일로 일관했다. 이게 조지 오웰이 그린 전체주의 혁명이라는 사실조차 몰랐고, 그런 혁명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기껏 "우리도 좌(左) 클릭 할게요" "이제부턴 우파 안 하고 중간파 할게요" 등등의 얄팍한 기회주의와 겁먹은 영합주의가 다였다. 이런 어정쩡함 속에서 기성 보수 야당은 2020 총선을 치르게 되었다. 그 선거에서 그들은 과연 승리는 고사하고 소수파로나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대로 가면 어림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혁명꾼들의 수(手)가 10단이라면, 기성 보수 정파의 수는 1단도 못 되는 까닭이다. 보수 야당은 의회주의·법치주의·원내중심주의만은 모범생처럼 잘 지킨다. 그러나 극렬 혁명꾼들은 그런 것을 최대한 활용은 하되 거기 머물진 않는다. 그들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반칙, 꼼수, 거짓 선동(미국 쇠고기 먹으면 뇌 송송 구멍 탁), 가짜 뉴스(정유라는 박근혜 딸), 경찰 두들겨 패기(민노총), 홍위병 폭거, 킹크랩 여론 조작, 친일 프레임 등 온갖 수법을 다 구사한다. 기성 보수는 그런 점에선 혁명꾼들의 맞수가 되지 못한다. 그저 "규정대로 선거운동이나 열심히 하면 되겠지" "다른 방법 뭐가 있나?" 하며, 죽었다 깨어나도 역동적 체질 변화는 할 줄 모른다.
우파 정계는 그래서 곧 러시아 부농(富農)들처럼 비참하게 숙청당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밀알 한 알처럼 떨어져, 죽어, 썩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고난과 부활'의 극적 과정을 제대로 밟아야 한다. 기성 보수의 관료적 타성을 뛰어넘어, 제도 속 활동에만 갇히지 말고 "혁명에는 혁명적으로 대응한다"는 3차원적 자세로, 그야말로 혁명적 변신을 해야 한다. "혁명은 직업 혁명가나 하는 것이지 우리 같은 귀족 자제(子弟)가 그걸 어떻게?"라고 한다면 그런 보수는 역사의 무대에서 닥치고 꺼지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혁명적 변신을 수행할 것인가? 출발점은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이 정말 망할 것"이라고 하는 처절한 인식을 하는 것이다. 망조(亡兆) 앞에서 진지하게 비관할 줄 아는 마음가짐만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다. "설마 망하랴…" 하는 얌체 같은 공짜 발상(發想)으로는 진짜로 망하고, 망해 싸다.
이 점에서 지난 '8·15 태극기 연합 집회'를 전후해 나온 "대한민국과 주사파,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는 호소문은 곱씹어볼 만했다. 황교안·나경원 자유한국당은 이런 근본적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황교안 대표의 광복절 담화문은 잘사는 나라, 행복한 나라를 대망했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 전에 나라가 망할 수 있다면? 지금은 그래서 장밋빛 소망에 앞서 피를 토하는 자유 레지스탕스 출정가부터 불러야 한다. 전체주의 혁명꾼들의 죽창가에 맞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