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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언론이라면

2011.06.03 09:40

관리자 조회 수:842 추천:64

명색이 언론이라면


[최원규, “명색이 언론이라면,” 조선일보, 2010. 12. 4, A30.]

기자로서 가장 두려운 것은 오보다. 심하면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 된다. 하물며 허위보도를 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만천하에 밝혀진다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이것이 언론을 업(業)으로 삼는 모든 사람의 생각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 믿음을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2008년 '광우병 보도'에 대한 형사적 책임문제(명예훼손)를 놓고 벌어진 재판이 끝난 뒤 MBC PD수첩 제작진은 놀랍게도 당당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정확한 보도를 했다고 무죄가 된 것이 아니었다. 명예훼손에 대한 고의(故意)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가 된 것뿐이다. 그들이 보도했던 핵심 내용은 모두 '허위'로 판결됐다. 주저앉는 소가 '광우병에 걸린 소'라고 보도한 것, 미국인 아레사 빈슨의 사망 원인이 인간광우병이라고 단정한 것,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으면 한국인이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4%라고 보도한 것 모두가 허위라는 것이다. 언론인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언론인이 허위보도를 한다는 것은 언론인으로서 기본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언론인으로서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은 재판이 끝나자 TV 앞에 서서 이런 얘기를 했다.

"저희 제작진은 미흡하지만 (판결을) 환영하는 바입니다"(송일준 MBC PD) "(검찰이) 정치적인 재판을 해왔던 것입니다"(조능희 MBC PD) 그들은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계속하겠다"고 했고, "앞으로는 사소한 꼬투리도 잡히지 않고 완벽한 보도를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말도 했다.

보도의 핵심 내용이 허위로 판정났는데도 그것을 '사소한 꼬투리'라고 한다. 그들이 했던 이 허위 보도가 2008년 광우병 사태라는 광풍을 몰고 온 직접적 원인이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당장 광우병에 걸릴 듯한 공포에 빠진 어린 학생들이 "지금 죽고 싶지 않다"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고, 주부들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시위대에 합류했다. "15살밖에 못 살았는데 죽고 싶지 않다"는 아이들이 거리로 나와 울고불고하던 그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만든 사람들이 그게 허위보도였다는 판정을 받고도 웃고 있다.
지금 미국 쇠고기는 문제없이 판매되고 있다. 이제 누가 미국 쇠고기 먹으면 뇌에 구멍 뚫려 죽는다고 말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할 것이다. 시간이 걸리지만 세상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

언론은 정부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한 존재 이유다. 하지만 그것이 허위 보도의 자유까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PD수첩 제작진은 비록 법률적 범죄 구성요건을 피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허위 보도를 한 책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PD수첩 제작진이 스스로를 언론인이라고 생각한다면 허위보도에 대해선 사과했어야 했다. 그들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나, 이번 일을 보니 최소한 언론인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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