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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피해자인 줄 모르는 광우병 시위 시민들



[이재교, “자신이 피해자인 줄 모르는 광우병 시위 시민들,” 조선일보, 2011. 5. 9, A31; 시대정신 상임이사.]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친구 변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대뜸 "야, 여기 광화문인데 너희 뉴라이트 많이 나왔네. 미국 쇠고기가 괜찮다고? 너희들이 이럴 줄은 몰랐다"고 소리치고 끊었다. 광우병 촛불시위에 참여했다가 이에 맞선 이른바 맞불시위를 보고 화가 나서 건 전화였다. 그는 뉴라이트운동에 성원을 보냈는데, 광우병 촛불시위를 계기로 성원을 철회했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지금도 그는 성원 철회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미국산 쇠고기에 광우병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광우병 얘기가 나오면 화제를 돌린다. 그 친구뿐 아니라 광우병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도 비슷한 태도를 보이면서 대통령과 정부에 강한 적대감을 보인다. 왜일까?

사람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특히 광우병 촛불시위와 같이 공분(公憤)으로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광화문거리를 메웠던 사람들로서는 자신이 잘못 판단했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진지하고 피끓는 열정으로 정부에 항의했는데,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지 않다면 뭐가 되는가.

작년 이맘때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오도했던 사람들이 반성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옳은 말이지만 큰 호응은 없었다. 우선 "미국소는 미친 소"라고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소용없는 얘기였다. 반성할 사람 같으면 그런 선동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상 그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반성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 언행을 낱낱이 기억했다가 이들이 다른 발언을 할 때 과거의 광우병 거짓말을 들이대면 된다.

그러면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말을 믿고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이 반성해야 할까. 이들 역시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조금이라도 먹으면 광우병으로 죽을 것 같은 으스스한 방송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초인(超人)일 것이고, "이제 16살인데 죽기 싫어요"라 쓰인 피켓을 들고 눈물을 흘리는 여중생을 보고 가슴이 아리지 않다면 심장이 식은 사람일 것이며, 협상을 지나치게 서두르는 정부를 보면서 화내지 않는다면 민주시민이 아닐 것이다. 단지 잘못된 정보를 믿은 국민들이 반성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광우병 얘기가 나오면 애써 화제를 돌리는 태도는 어떨까?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려 죽을 것이라고 증거를 조작한 사람들, 그리고 이를 적극 옹호한 전문가들에게 감쪽같이 속는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거짓선동에 속은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두려워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해서가 아니라 정부의 졸속협상에 분노하여 거리로 나왔다고 스스로 기억을 왜곡하는가 하면, 광우병 시위 때 표출했던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분노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피해를 애써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가 반성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는 있다. 피해를 당한 사실을 외면하고,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 피해자처럼 딱한 사람도 없다. 광우병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신이 피해입은 사실을 계속 외면한다면 같은 피해를 또 당하지 말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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