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동체는 대통령으로부터 공격당하고 있다(Our republic is under attack from the president)." - 지난 10월 17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고문의 제목이다. 전(前) 미국 특전사령관 윌리엄 맥레이븐 제독이 쓴 이 칼럼은 미국의 가치와 세계적 리더십을 지켜야 하는 미국의 대통령이 오히려 그 가치를 훼손하고 책임을 방기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군부에 번지고 있는 좌절, 굴욕감, 분노와 두려움을 적시하고 동맹을 버리는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항공모함이 많아서, 경제 때문에, 유엔의 안보이사국 자리를 차지해서 세계 최강국인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 자유와 평등을 향한 이상(理想)과 약자 보호의 정신과 정의감 때문에 최강국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고문은 태평양 건너 동북아의 한 코너에서 몸부림치며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도 대통령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물음표를 떠올리게 한다.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은 나라가 어디로 이끌려 가는지, 문재인 정권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불안해한다. 문 대통령과 그의 수하들은 국민의 그런 불안을 개의치 않는다. 문 대통령은 후퇴나 재고나 재검토를 내비친 것이 없다. 속된 말로 '끝까지 고'다. 경제가 어려워 국민이 아우성쳐도, 안보가 비상식으로 흘러가 국민이 불안해해도 그는 무모하고 단호하다.
트럼프는 한국과 관련해 이해할 수 없는 '장난'을 하고 있다. 문 정부가 처음 지소미아를 파기한다고 했을 때 미국은 한·일 간에 해결하라며 시큰둥하게 대처하더니 이제 와서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저의를 모르겠다. 우리의 과거 미군 주둔비 부담 수준이 적절했는지에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단번에 5배로 올리는 저돌적 수법이 과연 세계 질서 수호자로서 걸맞은 태도인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는 북한 김정은과의 협상이 깨지지 않도록 온갖 '웃음의 배려'를 하면서 한국에는 면상에 주먹을 들이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주한 미군의 장래와 한·미 동맹이 결코 현 농도로 유지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미국은 머지않아 '나간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미국이 나간 자리에 북한이 '들어온다'고 보는 것이 대다수의 상식이다. 그것이 곧 문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그 숱한 북한 측의 모욕과 경멸을 인내(?)하며 '평화'를 구두선처럼 외어온 속사정일 것이다. 여기다가 일본이 북한과 직거래를 틀 요량으로 움직이고 있다. 아베 정권은 북한에 줄 돈(청구권 자금)도 있다. 이미 물밑으로 북한과 교섭을 시도하고 있고 북한은 평양-원산 간 고속철 얘기도 꺼낸 바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 같은 변화 내지 변화의 조짐들은 한국을 안갯속으로 내몰고 있다.
사회가 불안하면 제일 먼저 외부로 튀는 것이 자본이고 인재(두뇌)다. 자녀는 외국에 내보내고 이민도 늘고 돈도 빠져나가는 현상이 증가한다. 사립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려는 문 정부의 '평등교육' 이념이 노골화되면서 자녀를 외국으로 보내는 일은 늘어날 것이다. 한국은 이미 두뇌해외유출 지수가 2018년 조사 대상 63개국 중 최하위권인 41위로 내려앉았다.(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의 세계인재보고서) 과학기술자 1005명을 대상으로 한 어느 조사에서 국외 취업 희망자가 47%이고 "미국에서 이공계 박사학위를 딴 한국인 유학생 대부분이 졸업 후 미국 잔류를 희망했고 실제로 절반가량이 남았다"고 했다. 저마다 나가거나 내보내려고 하고 가면 돌아오지 않는 두뇌 공동화 상태에서 한국의 지적(知的) 총량은 줄어들 것이다. 한국은 어쩌면 '머리'가 빈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국민은 이 나라가 어디로 이끌려 가는지 깜깜이 신세다. 지도자의 덕목 중 으뜸은 국민의 신뢰와 희망이다. 국민이 믿고 평안하게 살며 미래에 대한 안정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나와서 국민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는 북한과의 '평화' 이외에는 어떤 것도 말한 것이 없다. 없어서 몰라서 말 안 하는 것인지, 아니면 좌파의 속내와 전략 전술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서 그러는 것인지 우리는 눈 가린 채 끌려간다.
"만일 대통령이 국내건 해외건 미국이 필요로 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백악관에 새 주인을 뽑을 때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우리 공화국(미국)의 운명이 거기에 달렸다." - 맥레이븐 제독 기고문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는 미국 군부에 번지고 있는 좌절, 굴욕감, 분노와 두려움을 적시하고 동맹을 버리는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항공모함이 많아서, 경제 때문에, 유엔의 안보이사국 자리를 차지해서 세계 최강국인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 자유와 평등을 향한 이상(理想)과 약자 보호의 정신과 정의감 때문에 최강국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고문은 태평양 건너 동북아의 한 코너에서 몸부림치며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도 대통령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물음표를 떠올리게 한다.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은 나라가 어디로 이끌려 가는지, 문재인 정권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불안해한다. 문 대통령과 그의 수하들은 국민의 그런 불안을 개의치 않는다. 문 대통령은 후퇴나 재고나 재검토를 내비친 것이 없다. 속된 말로 '끝까지 고'다. 경제가 어려워 국민이 아우성쳐도, 안보가 비상식으로 흘러가 국민이 불안해해도 그는 무모하고 단호하다.
트럼프는 한국과 관련해 이해할 수 없는 '장난'을 하고 있다. 문 정부가 처음 지소미아를 파기한다고 했을 때 미국은 한·일 간에 해결하라며 시큰둥하게 대처하더니 이제 와서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저의를 모르겠다. 우리의 과거 미군 주둔비 부담 수준이 적절했는지에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단번에 5배로 올리는 저돌적 수법이 과연 세계 질서 수호자로서 걸맞은 태도인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는 북한 김정은과의 협상이 깨지지 않도록 온갖 '웃음의 배려'를 하면서 한국에는 면상에 주먹을 들이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주한 미군의 장래와 한·미 동맹이 결코 현 농도로 유지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미국은 머지않아 '나간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미국이 나간 자리에 북한이 '들어온다'고 보는 것이 대다수의 상식이다. 그것이 곧 문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그 숱한 북한 측의 모욕과 경멸을 인내(?)하며 '평화'를 구두선처럼 외어온 속사정일 것이다. 여기다가 일본이 북한과 직거래를 틀 요량으로 움직이고 있다. 아베 정권은 북한에 줄 돈(청구권 자금)도 있다. 이미 물밑으로 북한과 교섭을 시도하고 있고 북한은 평양-원산 간 고속철 얘기도 꺼낸 바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 같은 변화 내지 변화의 조짐들은 한국을 안갯속으로 내몰고 있다.
사회가 불안하면 제일 먼저 외부로 튀는 것이 자본이고 인재(두뇌)다. 자녀는 외국에 내보내고 이민도 늘고 돈도 빠져나가는 현상이 증가한다. 사립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려는 문 정부의 '평등교육' 이념이 노골화되면서 자녀를 외국으로 보내는 일은 늘어날 것이다. 한국은 이미 두뇌해외유출 지수가 2018년 조사 대상 63개국 중 최하위권인 41위로 내려앉았다.(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의 세계인재보고서) 과학기술자 1005명을 대상으로 한 어느 조사에서 국외 취업 희망자가 47%이고 "미국에서 이공계 박사학위를 딴 한국인 유학생 대부분이 졸업 후 미국 잔류를 희망했고 실제로 절반가량이 남았다"고 했다. 저마다 나가거나 내보내려고 하고 가면 돌아오지 않는 두뇌 공동화 상태에서 한국의 지적(知的) 총량은 줄어들 것이다. 한국은 어쩌면 '머리'가 빈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국민은 이 나라가 어디로 이끌려 가는지 깜깜이 신세다. 지도자의 덕목 중 으뜸은 국민의 신뢰와 희망이다. 국민이 믿고 평안하게 살며 미래에 대한 안정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나와서 국민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는 북한과의 '평화' 이외에는 어떤 것도 말한 것이 없다. 없어서 몰라서 말 안 하는 것인지, 아니면 좌파의 속내와 전략 전술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서 그러는 것인지 우리는 눈 가린 채 끌려간다.
"만일 대통령이 국내건 해외건 미국이 필요로 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백악관에 새 주인을 뽑을 때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우리 공화국(미국)의 운명이 거기에 달렸다." - 맥레이븐 제독 기고문의 마지막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