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급별 판사 모임인 법관대표회의는 지난달 말 최창석 부장판사를 대법관후보추천위원으로 뽑았다. 내년 3월 퇴임하는 조희대 대법관 후임을 뽑는 이 위원회 위원 10명 중 1명으로 그를 넣은 것이다. 최 부장판사는 진보 성향 판사 서클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다. 그는 2015년 '종교적 병역 거부는 유죄'라는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고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현 정권 들어 대법관후보추천위에 들어간 '비(非)대법관 판사'는 최 부장판사처럼 모두 인권법이거나 그 전신(前身)으로 평가받는 우리법연구회 판사였다. 전례 없는 일이다.
이들의 '위상'은 단순히 10명 위원 중 1명에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대법관후보추천위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이 판사들은 'A 후보는 법원행정처 출신이라 안 된다' 'B 후보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밑에 있었던 사람이라 안 된다'고 하더라" "회의에서 목소리가 제일 컸다. 다들 눈치 보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실제 '엘리트 판사'로 통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추천위 문턱에 걸려 고꾸라졌다. 대거 허들을 넘은 사람은 인권법, 우리법 출신이었다.
현 정권 들어 지금까지 대법원장·대법관 14명 중 9명이 교체됐다. 9명 중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한 5명이 진보 성향의 우리법, 인권법, 민변 출신이다. 이 '진보 5인방'은 찬반이 팽팽한 사안에선 어김없이 진보 성향 판결을 하고 있다. 5명 모두 '종교적 병역 거부는 무죄'라고 판결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A급 민족 반역자'로 공격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해선 객관적 사실과 합치돼 문제없다는 결론을 냈다. 현 정권과 비슷한 입장을 보이는 5명의 이런 판단은 '다수 의견'을 이뤄 그대로 대법원 판례가 됐다. 전국 법원 판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현 정권 임기 안에 대법관 4명이 더 바뀐다. 지금 식이라면 머지않아 대법원엔 '진보 9인방' 체제가 들어설 것이다. 좌우 대립이 있는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단은 앞으로 더 선명해지고 한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을 두고 판사들 사이에선 '문재인권법'이란 말이 돈다. 대통령의 이름과 인권법의 합성어로, 현 정권과 대법원이 점점 한 몸처럼 돼 가고 있다는 뜻이다. 일선 판사들부터 현 대법원의 권위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정권 탓만 할 수는 없다.
최근 법관대표회의 몇몇 판사에게 최 부장판사를 누가 추천했는지 물었다. 다들 "단독 후보였던 거 같은데, 누가 추천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법관대표회의가 열릴 때마다 판사들이 법원행정처 간부를 불러 하는 질문의 십중팔구는 인사 문제다. 법원이 어떻게 되든 내 인사만 신경 쓰는 판사들의 이기적 무관심이 특정 성향 연구회가 득세하게 한 뿌리이고 토양이었다.
정권과 '한 몸' 돼 가는 대법원
2019.12.16 21:03
정권과 '한 몸' 돼 가는 대법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09/20191209033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