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官製언론 김정일 평가와 대한민국 역사 교수들의 평가
2012.02.16 13:59
[사설: “北 官製언론 김정일 평가와 대한민국 역사 교수들의 평가,” 조선일보, 2011. 12. 29, A35.]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장례식 날인 28일 발행된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일이 남긴 최대 업적으로 핵무장을 꼽았다. 핵무장이 "대국들 틈에서 한(恨) 많던 약소민족의 가슴을 당당히 펴도록 해주었다"고 했다.
김정일은 길게 보면 아버지 김일성의 후계자로 추대된 1974년 이후 37년간, 짧게는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7월 이후 17년간 북한을 다스려왔다. 그 오랜 기간 혼자서 나라를 주물렀던 그가 북한 인민 손에 쥐여준 게 사실상 핵 하나뿐이란 진실이 김씨(金氏) 왕조의 사관(史官)들 눈에도 용케 들어온 모양이다.
김정일이 김일성과 북한을 공동 통치하기 시작한 74년 남․북한 경제 수준은 엇비슷했다. 지난해 남․북한의 1인당 소득은 19배 차로 벌어졌다. 김정일이 단독통치에 나선 1995년 80만원이던 북한 1인당 소득은 지난해 124만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 경제는 15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해왔다는 이야기다.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유일 통치자로 나선 94년부터 4년 동안 북한 백성 수백만명이 굶어 죽었고 수십만명은 '먹기' 위해서 고향을 등져야 했다. 그들은 지금도 중국과 동남아를 떠돌고 있다. 북한은 1945년 분단 당시 한반도 핵심 산업시설의 80% 이상을 넘겨받았다. 김일성․김정일 부자 통치 66년은 그런 나라를 수백만 국민을 굶겨 죽이는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로 바꿔놓고 말았다.
김정일이 통치해온 기간 동안 중국은 78년, 베트남은 86년부터 개혁 개방을 시작했고 소련과 동유럽은 정치적 민주화와 시장경제 체제의 길로 나아갔다. 김정일은 이런 세계의 대세(大勢)와 거꾸로 갔다. 헌법에서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공산주의란 표현조차 삭제하며 사회주의라는 문패까지 내려버리고 주체사상을 유일사상으로, 김일성을 조선의 시조(始祖)로 내세웠다.
김정일은 2000년대 들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허용하면서 들어온 돈을 핵무기 개발과 체제 유지에 필요한 충복(忠僕)들을 비롯한 북한 특수계급의 충성심을 사들이는 데 쏟아부었다. 중국 개혁 개방의 현장을 견학하며 "천지(天地)가 개벽했다"는 소감을 내놓은 것도 잠시뿐, 체제가 동요하면 배급이 끊긴 주민들이 생계를 기댔던 마지막 숨통이었던 시장을 폐쇄해버렸다. 그의 말년(末年)에는 돈이 되는 것이면 지하자원 채굴권이고 항구 조차권(租借權)이고를 가리지 않고 중국에 넘겨 버렸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의 시대는 2400만 북한 동포에겐 굶주림과 폭압(暴壓)의 시절이었고 5000만 대한민국 국민에겐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핏줄의 모습을 국경 아닌 국경 너머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통한(痛恨)의 세월이었다.
북한 관제 언론도 김정일이 북한 동포에게 물려준 최고 유산으로 핵무기 개발밖에 꼽지 못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현대사를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 시각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해온 역사 교수 가운데 상당수는 북한 관제 언론보다도 김정일의 진실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에 대한 후대(後代) 역사의 평가보다 지금 더 절실한 건 대한민국 당대(當代) 역사 선생님들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안목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장례식 날인 28일 발행된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일이 남긴 최대 업적으로 핵무장을 꼽았다. 핵무장이 "대국들 틈에서 한(恨) 많던 약소민족의 가슴을 당당히 펴도록 해주었다"고 했다.
김정일은 길게 보면 아버지 김일성의 후계자로 추대된 1974년 이후 37년간, 짧게는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7월 이후 17년간 북한을 다스려왔다. 그 오랜 기간 혼자서 나라를 주물렀던 그가 북한 인민 손에 쥐여준 게 사실상 핵 하나뿐이란 진실이 김씨(金氏) 왕조의 사관(史官)들 눈에도 용케 들어온 모양이다.
김정일이 김일성과 북한을 공동 통치하기 시작한 74년 남․북한 경제 수준은 엇비슷했다. 지난해 남․북한의 1인당 소득은 19배 차로 벌어졌다. 김정일이 단독통치에 나선 1995년 80만원이던 북한 1인당 소득은 지난해 124만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 경제는 15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해왔다는 이야기다.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유일 통치자로 나선 94년부터 4년 동안 북한 백성 수백만명이 굶어 죽었고 수십만명은 '먹기' 위해서 고향을 등져야 했다. 그들은 지금도 중국과 동남아를 떠돌고 있다. 북한은 1945년 분단 당시 한반도 핵심 산업시설의 80% 이상을 넘겨받았다. 김일성․김정일 부자 통치 66년은 그런 나라를 수백만 국민을 굶겨 죽이는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로 바꿔놓고 말았다.
김정일이 통치해온 기간 동안 중국은 78년, 베트남은 86년부터 개혁 개방을 시작했고 소련과 동유럽은 정치적 민주화와 시장경제 체제의 길로 나아갔다. 김정일은 이런 세계의 대세(大勢)와 거꾸로 갔다. 헌법에서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공산주의란 표현조차 삭제하며 사회주의라는 문패까지 내려버리고 주체사상을 유일사상으로, 김일성을 조선의 시조(始祖)로 내세웠다.
김정일은 2000년대 들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허용하면서 들어온 돈을 핵무기 개발과 체제 유지에 필요한 충복(忠僕)들을 비롯한 북한 특수계급의 충성심을 사들이는 데 쏟아부었다. 중국 개혁 개방의 현장을 견학하며 "천지(天地)가 개벽했다"는 소감을 내놓은 것도 잠시뿐, 체제가 동요하면 배급이 끊긴 주민들이 생계를 기댔던 마지막 숨통이었던 시장을 폐쇄해버렸다. 그의 말년(末年)에는 돈이 되는 것이면 지하자원 채굴권이고 항구 조차권(租借權)이고를 가리지 않고 중국에 넘겨 버렸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의 시대는 2400만 북한 동포에겐 굶주림과 폭압(暴壓)의 시절이었고 5000만 대한민국 국민에겐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핏줄의 모습을 국경 아닌 국경 너머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통한(痛恨)의 세월이었다.
북한 관제 언론도 김정일이 북한 동포에게 물려준 최고 유산으로 핵무기 개발밖에 꼽지 못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현대사를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 시각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해온 역사 교수 가운데 상당수는 북한 관제 언론보다도 김정일의 진실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에 대한 후대(後代) 역사의 평가보다 지금 더 절실한 건 대한민국 당대(當代) 역사 선생님들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안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