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제13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 이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이제는 새로운 인센티브 패러다임으로 가야 북한을 비핵화 이후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좌파는 현재를 ‘패러다임의 전환기’로 규정하고 북한을 화해 협력과 지원의 대상, 더 나아가서는 ‘동등한 국가’이며 ‘상생의 대상’으로 새롭게 인식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
이전의 남북관계가 극도의 긴장 상태였고 북한 체제는 과거 봉건왕조 국가들처럼 왕성(王城 : 평양)과 핵심계층을 중심으로 편재되어 있어 쉽게 붕괴될 수 있는 구조도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논리가 국민을 쉽게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한반도가 전쟁의 공포를 벗어나 남북관계가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현혹하고 있다. 국민들은 평화라는 말에 혹하여 평화협정이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좌파의 논리에 설득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 북한이 말하는 평화는 과연 무엇일까? 일찍이 김일성은 “남조선 정부가 없어지는 것이 진정한 평화”라고 했다. 즉 한국의 존재 자체가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을 제거하지 않는 한 북한의 체제 보장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북한은 좌파 정권이 말하는 그 평화를 이용하려 할 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북한이 말하는 평화는 미군의 철수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평화란 한국 국민들에게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말하지만 북한에서 말하는 평화는 외세가 없는 상태 즉 미군이 없는 상태를 지칭한다. 다시 말해서 ‘미제국주의가 없는 상태’가 한반도의 평화인 것이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과의 평화협정이란 한반도에 미군이 없는 상태로 몰고 가는 것으로 주한미군의 철수를 의미한다.
북한은 핵 수단을 가지고 평화협정이라는 말을 계속 되풀이하고 이 여론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려고 한다. 마치 북베트남이 유럽을 중심으로 반전 여론을 확산시켜 미국까지 전파해 결국 닉슨의 평화협정 체결로 연결되었듯이 북한도 동일한 공작을 하고 있다. 평화협정으로 평화가 올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국민들이 너무 많은 것도 심각한 문제다. 그 동안 한미 양군이 강력하게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도 북한은 끊임없이 도발했다.
한반도의 정전협정도 평화협정의 일종이지만 만신창이가 된 대표적 사례다. <2016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협정 이후 2016년 11월 30일까지 정전협정 위반사례는 43만 건이 넘으며, 1954년 이후 현재까지 북한의 침투(1977건)와 국지도발(1117건)은 3094건에 달하고 있다.
2016년 10월 15일 문재인 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뭣이 중헌디?>라는 글을 올렸는데 “나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터잡고 사는 한반도는 전쟁을 통해 분단되었습니다. 이 분단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며 통일을 지향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숙명입니다”라고 했다. 가장 나쁜 평화라는 말과 통일 숙명론은 매우 위태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면 ‘가장 나쁜 평화’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이 ‘낮은 연방제’의 끝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한번도 가지 못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
문 대통령은 과거 김대중 3주기 추도식(2012. 8. 20)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정권교체를 통해 다음 정부 때 반드시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놀라운 일이지만 언론은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 방안으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주장했던 것인데 김일성의 고려연방제(1973)가 좀 더 느슨하게 개정된 것이다. 먼저 수 십 년 동안 유지 가능한 국가연합을 구성하고 남과 북의 두 개의 정부가 정치ㆍ군사ㆍ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가지면서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수립하는 형태를 말한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연합 각료회의, 정상회의 및 국가 명칭의 통일 등을 기반으로 하나의 국가 구실을 하는 구조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연합의 상태에서 군사적 충돌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국가 원수가 있고, 별도의 군대를 보유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전 보다 더 위험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같은 충돌 상황에서 김정은이 공격해도 내전(內戰)이 되어 미군이 개입할 수 없어 결국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북한의 적화통일의 유용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연방제의 논의는 체제가 유사하거나 경제력 격차가 없을 때나 가능한 것이고(남북간의 경제력 격차는 수 십 배에 달한다) 평화적인 성격을 가진 정부들 간에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정남 암살, 웜비어 고문 살해, 광범위한 민간인 납치, 국제적 위조지폐와 마약 유통, KAL기 폭파, 강제노동수용소 등 동족에게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러 ‘인류의 문제’가 된 북한 정권과 이런 종류의 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망상이다. 좌파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인류의 공적인 북한과 연합한 사이비 봉건전제 사회주의로 나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로운 ‘김씨 조선’의 성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한국 경제의 붕괴와 한국 좌우 지도부 숙청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수립을 위해 남북 좌파는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할 것이다. 통일전선전술이 노골적으로 진행되면서 ‘미국의 허점’이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각종 좌파 세력들은 각각의 진지별로 자주, 민주, 통일 즉 자민통(自民統) 투쟁이 시작될 것이다. ‘자주’는 미군 철수, ‘민주’는 국보법 철폐나 국정원 해체 등, ‘통일’은 바로 김씨 왕조에 의한 적화통일이다.
한국군의 사실상 무장 해제를 시작으로 좌파 정권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진행이 되는데 이 시기가 되면 한국의 국제 신용등급이 추락하면서 국제적 자본 이탈이 가속화된다. 국내 기업들도 급속히 이탈해 제2의 금융위기가 도래하면서 한국 정치경제적 혼란은 가중되고 결국 한국의 정치 경제가 붕괴되면 2∼3년 내에 김정은은 전격적 기동전으로 서울을 함락할 것이다(일부 전문가들은 3일이면 가능하다고도 한다). 실제로 베트남의 경우 평화협정 2년 만에 전쟁이 개시되고 55일 만에 사이공이 함락되었다.
베트남의 사례에서 보듯이 남북 좌파는 서로 협력할 것이다. 다만 한국 좌파들은 자신의 일정한 지분과 한국에 대한 자율권의 인정을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베트남의 경우를 보면 명확해진다. 파리협정(1973)에서 남북베트남 좌파는 남베트남 인민의 자결권에 동의했지만 사이공이 함락(1975)되면서부터는 모든 게 백지화되었다. 베트콩(남베트남 좌파)은 외국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은 물론 하노이의 간섭도 인정하지 않았다. 베트콩은 기본적으로 남베트남을 5개의 자치지역으로 구성된 하나의 연방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투쟁해 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해당한다.
그러나 하노이(북베트남)는 베트콩을 바로 제압했다. 향후 나타날 수 있는 베트콩의 권력 분할 요구를 사전에 제거한 것이다. 하노이 정권은 해방전선, 임시혁명정부 또는 평화세력연맹 등 광범위하게 존재하던 베트콩의 조직들을 단숨에 해체하여 무력화(無力化)했다. 하노이의 논리는 간단했다. 하노이는 해방전쟁의 승리에 베트콩의 역할은 없었고, 승리는 오직 하노이 공산당의 위대한 전략 전술의 승리였다는 것이다. 하노이는 베트콩 지도부를 정부와 당의 중요 요직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북한 정권은 대통령 등 남한 지도부 연금하고 북한의 흡수통일(남북통일)을 하려할 것이다. 북한은 2∼3년간 남조선에 대한 자치정부식 사회주의적 재편 실시하면서 당분간은 마치 북한 정권과 남한 좌파의 ‘밀월(蜜月) 정부’가 시작될 것이고 외형적으로는 홍콩식으로 보이도록 유도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2∼3년간 전국적 소개(疏開) 및 시도 구역 재편, 북한식 선군(先軍) 주도의 군정(軍政) 실시해 2∼3년간 남조선 지도층의 대량 소개(疏開) 및 재교육 등을 실시하고 이 과정에서 좌우를 망라한 정치인, 종교인, 지식인 등의 대량 숙청을 단행할 것이다. 경제 측면에서는 한국 경제는 이미 붕괴한 상태이기 때문에 빈곤 경제 공동체가 완성되고 북한의 남북통일은 완성된다. 이로써 김씨왕조(金氏王朝)는 영속화되면서 대한민국은 세계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지금 대한민국호는 ‘한번도 가지 못한 길’로 밀려가고 있는 중이다. 국민들이 눈과 귀를 막고 있는 사이에 일들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점검해 보자. 먼저 보수 우파 정당 및 국정원의 무력화(無力化) 되었고 5만여 명(황장엽 추정)의 고정간첩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 왔다.
긴 세월 동안 구축했던 좌파 진지들에도 봄이 오고 이들이 이제 진지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다. 민노총, 전교조 등 좌파 단체 등의 통일전선이 강화되면서 귀족 노조들을 중심으로 ‘노동자의 나라’를 만들라고 정권을 크게 압박하고 있다. 이들이 국회 기물을 파괴해도 좌파 정권은 모른 체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모습이 아슬아슬한 상태다.
한번도 가지 못한 나라로 가는 길은 ‘가서는 안 되는 길’
경제적으로는 베네수엘라의 모델을 중심으로 자유시장 경제적 구조를 약화시키는 각종 포퓰리즘 정책(무상교육, 무상보육, 무상 의료 등)을 시행하여 국가의 재정 기반을 흔들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노골적인 친중 사대 정책을 강화했다. 대북정책으로는 틈만 나면 개성공단 재개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추진하고 있고 각 분야별로 북한 정권 퍼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는 ‘복권의 수익금’까지 건드리려 하고 있다.
이제 전시작전권 전환이 공식화되어 자주국방의 명분 아래 절대무기(핵)를 가진 북한의 전격전에 대한 무방비 알몸 국방 상태로 되어갈 것이다. 다만 당분간은 미국이나 우파의 심기를 크게 자극하기 않기 위해 전술적으로 ‘침묵과 호의’로 대할 것이다. 그러나 진행 과정에 차질이 생기면 이내 돌변하여 ‘반미 연합전선’을 광범위하게 구축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종 문화예술계를 포함해 광범위한 세력들이 ‘촛불’처럼 결집해 ‘들불’처럼 미군을 몰아낼 전술을 구사할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한·미 간의 이간 책동과 더불어 북한 정권에 대해 미화 또는 간접적으로 옹호하려는 문화예술계의 광범위한 시도들도 본격화된다. 민족의 화합과 평화를 강조하는 광범위한 기획물들이 범람할 것이다. 군대의 사상적 오염 강화 및 무력화(無力化)를 시도해 궁극적으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 방안이 구체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2019년 2월 7일 트럼프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 신년 국정연설에서 “사회주의는 번영을 약속하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것은 빈곤입니다. 사회주의는 단결를 약속하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것은 증오와 분열입니다. 사회주의는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지만 언제나 과거에 암흑기로 돌아갑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회주의는 역사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무지에 기반한 슬프고 용도 폐기된 이데올로기입니다. 그것이 사회주의가 예외 없이 독재정권을 낳는 까닭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언제나 다양성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절대적인 순응을 강요합니다. 사회주의는 정의와 관계가 없습니다. 평등과도 관련이 없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것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사회주의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단 한 가지 지배계급을 위한 권력일 뿐입니다 … 사회주의는 진보라는 깃발 아래서 나가지만 그것이 결국 가져다주는 것은 부정과 착취와 부패일 뿐입니다”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베네수엘라와 미국 좌파들을 겨냥한 것이지만, 마치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묘사한 듯하다. 이제 국민은 진실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할 시점이다.
‘제논의 역설’처럼 좌파가 말하는 유토피아도 허구를 실체처럼 현혹하는 일종의 사기술로 ‘피라미드 판매’와 다르지 않다. 실체가 없는 것을 마치 생생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논리로 현혹하는 것이다. 유토피아로 가는 길조차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오직 신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길이고 그 길이 유토피아로 가는 길인지 지옥으로 가는 지는 좌파들조차도 알지 못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혼란을 거쳐 5000년 한국사를 통해 가장 안정된 궤도에 안착해 있고 처음으로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국가가 되어 있다.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세계 톱텐(TOP 10)’의 반열에 있다. 좌파는 통일이라는 달콤한 용어로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미래로 갈 수 있는 길을 두고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불확실하고 가보지 못한 길로 가는 도박을 하려 한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회의도 의심도 하지 않는 그들의 신념이 너무 위태로워 보인다.
역사의 수많은 사례들이 증명하듯이 그 도박의 끝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빛나는 하늘이 아니라 음습한 암흑의 동토(凍土)가 분명해 보인다. 통일지상주의(통일만능주의)로 민족을 암흑의 동토로 끌고 가기보다는 차라리 기다림의 미학을 발휘하도록 이들의 행태를 저지해야 한다.
우리가 실패한 좌파 유토피아의 길을 가야 하나? 그들이 실패가 분명해 보이는 ‘한번도 가지 못한 길’을 가려는 것은 민족의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영구적 권력욕에 사로잡혀 현실에 대한 판단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인 길을 두고 지금 걸어가고 있는 ‘한번도 가지 못한’ 길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오히려 지옥의 가시밭길이 대부분이었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크메르 루주가 그랬고, 모택동의 인민공사가 그랬고, 스탈린의 집단농장화가 그랬다.
지금 좌파의 행태는 일확천금을 꿈꾸며 피라미드에 뛰어드는 어린 청년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알베르 카뮈는 “진실은 빛과 같이 눈을 어둡게 한다. 반대로 거짓은 아름다운 저녁노을과 같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