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似而非 역사학' 가르치는 역사교과서 현대사
2020.01.07 17:20
'似而非 역사학' 가르치는 역사교과서 현대사
[강규형, “'似而非 역사학' 가르치는 역사교과서 현대사,” 조선일보, 2016. 6. 13, A34; 명지대 교수■현대사.]
최근 국사학계는 소위 재야 사학자들의 무리한 고대사(古代史) 해석에 대해 '사이비 역사학'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과도한 민족주의에 빠져' 확연한 문헌적■고고학적 증거를 무시하는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은 일리 있는 비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사 분야에선 국사학계 자신이 '지나친 민족 지상주의와 좌파 수정주의에 빠져서' 재야 사학자들의 상고사 해석보다 더 심한 수준의 왜곡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왜곡의 정도와 기간이 꽤 심했기에 역사 교과서 문제는 앞으로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큰 이슈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오늘은 세계사와 한국 현대사를 잇는 중요한 고리인 소련(러시아) 체제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얘기해보자. 우리 역사 교과서들은 대부분 소련을 2차 세계대전의 최대 피해자이자 연합군 승리의 최대 공헌자로 평가하고, 동아시아 한반도에 있어서도 해방군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해석은 거의 성역처럼 다뤄지고 있다. 소련이 2차 대전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이고 연합국 승리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대체로 맞다. 그러나 그것은 히틀러가 불가침조약을 어기고 소련을 공격한 이후의 일이다.
교과서들이 생략한 앞부분을 보면 전혀 다른 얘기가 전개된다. 공산 체제의 확산에 몰두한 소련과 그 수장인 스탈린은 2차 대전 직전에 나치 독일과 희대의 악마적 거래를 성사했다. 그게 바로 1939년 8월에 맺어진 독■소불가침조약, 즉 리벤트로프-몰로토프조약이었다. 문제는 이 조약을 체결하면서 양국이 몰래 맺은 비밀의정서였다. 독일이 폴란드의 서쪽을 갖는 대신 소련이 폴란드 동쪽을 갈라 먹고 루마니아의 베사라비아 지역 등을 추가로 차지하는 경악할 내용이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대전은 시작됐지만, 교과서가 철저히 무시하는 부분은 소련도 곧이어 폴란드를 침공했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유럽의 공산당들은 소련의 지시를 받고 나치 독일을 돕는 행동을 시작했다. 소련은 2차 대전 발발의 철저한 공범이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폴란드 동부를 점령한 소련은 폴란드 자립의 싹을 아예 없애기 위해 폴란드의 지식인■장교 등 사회 지도급 인사 2만2000명을 러시아로 끌고 가 카틴(Katyn)숲에서 모조리 학살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만행 중 하나를 저질렀다. 소련은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다가 스탈린이 비밀경찰에게 이 학살을 지시한 비밀문서가 1989년 공개되고, 1990년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이 용기 있게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 만천하에 진실이 공개됐다.
동아시아는 어땠을까. 독■소불가침조약의 혜택을 누리던 소련은 일본과도 비슷한 타협을 이뤄냈다. 1941년 4월 체결된 소련■일본중립조약으로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전선에서 마음껏 날뛰도록 방조했다. 1941년 6월 22일 히틀러가 소련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면서 소련은 어쩔 수 없이 연합국과 공조를 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그러나 아■태 전선에선 진주만 습격(1941년 12월 7일) 이후 미국 등 다른 연합국들이 일본과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혼자서 일본과의 밀월을 즐겼다. 전쟁 물자를 일본에 수출하면서 이득까지 챙겼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1945년 8월 6일)하고 승패가 결정 나자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이틀 후인 8월 8일 재빨리 대일 참전을 선언하고 다음 날 군사작전에 돌입했다. 한반도로 진주한 후엔 소련 군복에 대위 계급장을 단 김일성과 그 일파를 장래의 하수인으로 쓸 목적으로 데리고 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 교과서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전혀 혹은 거의 언급하지 않은 채 '소련=2차 대전의 최대 공헌자' '소련군=해방군'이란 거짓 프레임에 갇혀 엄청난 허구를 학생들에게 가르쳐 왔다. 동구 공산권이 무너지고 냉전이 종식되자 새로운 문서들과 사실들이 대거 공개되고 러시아도 이런 사실들을 인정하면서 현대사 해석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 사학계는 극도로 폐쇄적인 인식에 사로잡혀 이런 성과들을 거의 반영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낡은 해석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한국사를 위시한 역사 교과서들이 갖고 있는 여러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일 뿐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과연 현대사 분야의 국사학계와 고대사 분야의 재야 사학자 중 누가 더 역사를 왜곡하는 사이비 역사학인가? 국사학계가 결코 덜하지 않은 듯하다. 교과서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정치권과 정치인들은 이런 문제부터 알고 행동하는 것이 기본적인 도리가 아닐까 싶다.